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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ug 01. 2018

#07. 나는 빠리의 똥차 콜렉터

12개월 차 비연애 상태를 맞이하며

대략 12개월 차 비연애 상태를 맞았다. '대략' 12개월로 어물쩍 헤아린 이유는 나의 마지막 연애가 공식적인 종언 없이 유야무야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상대편의 일관된 침묵을 관계를 끝내자는 나의 제안에 대한 암묵적 동의 정도로 받아들였다. 이별에 관한 표면적 합의가 없었다 뿐이지 짧은 순간 끓었다가 서서히 식어 없어지는 보통 연애의 수순이었다. 그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날들이 오랫동안 이어졌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그가 없는 여름을 보냈고, 그가 돌아온 후 굳이 소식을 묻거나 하지 않았다. 사실상 작년 초부터 쭉 그는 내 인생에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홀로 라이프는 1년 반이 넘었다 해도 무방하겠다. 그를 떠올리면 항상 병약하게 (어디 아픈 곳이 없는데도) 누워있는 모습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아마도 그런 무기력하고 애쓰지 않으면서 어딘가 항상 손길이 필요한 모습에 끌렸지 않았나 싶다. 그게 '나에게' 무신경하고 '우리 관계에' 노력하지 않으며 나의 손길에 '화답할 줄 모르는' 화살이 되어 돌아오리라곤 꿈에도 몰랐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올 때 나는 여러 베리에이션으로 대답하곤 하는데, '노력이나 희생이란 게 뭔지 평생 모를 사람', '내 인생에 1도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 '만나는 동안 밥 한 끼 제대로 산 적 없는 사람'이자 '나를 집 앞에 단 한 번도 바래다준 적이 없는 사람'으로 설명하곤 한다. 미움과 원망이 뚝뚝 묻어나는 설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참 많이 좋아했다. 아마 그는 나를 좋아한다는 자기기만에 빠져있거나 가엾게도 누군가를 아끼고 걱정하고 기쁘게 하는 법을 모르거나 둘 중 하나였을 거라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수많은 베리에이션 중 선호하는 표현은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만난 똥차'다. 그는 내게 똥차의 새로운 조건을 업데이트해주고 아직 오지 않은 다음 연애에 강력한 비전을 제시해준 (그러니까 반면교사 삼게 해 준) 꽤 임팩트 있는 구 남친이지만, 그를 '내 인생 최악의 똥차'로 꼽을 수 없다는 사실은 좀 서글픈 일인 것 같다 (눈물 좀 닦고).


30대 초반인 나는 적지 않은 연애를 했지만 그중에는 말 못 할 똥차가 대부분이었다. 내게 꼬박꼬박 택시비를 타 갔던 11살 연상의 지지리 궁상이나 이별의 순간에 "네가 돈을 잘 써서 참 좋았다"는 최악의 멘트를 남긴 찌질이는 그래도 귀여운 편에 속하는 것 같다. 일방적인 헤어짐을 인정하지 못하고 온갖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었던 새끼(내게 안전 이별이라는 트라우마를 남긴 부동의 똥차 1위이자 똥차 챔피언. 일베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의 모멸감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가끔 살아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어디서 객사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한국에 오래된 애인을 두고 연수 온 내게 양다리를 건 쓰레기나 술에 취해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던지고 부수는 미친놈도 있었다. 나의 험난한 연애사를 꾸준하게 지켜본 J는 나에게 <나는 빠리의 똥차 콜렉터>라는 제목의 원고를 써서 본인 잡지에 기고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에 나는 간만의 장기 비연애 상태를 맞아 지난 연애사를 톺아보고 앞으로 찾아올 삼십 대의 연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이십 대는 비연애 상태보다 연애 상태가 훨씬 길었다. 항상 곁에 누군가를 두어야 하는 의존적 인간은 아닌데 돌아보니 그렇게 살고 있었다. 자발적 비연애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지금도 무척 만족스러운 홀로 라이프를 즐기는 나이지만, 이십 대의 나에게 연애는 '기쁨과 환멸의 단짠단짠으로 삶의 권태를 격파하는 자극제'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던 탓도 있다. 이번 연애가 끝나면 머지않아 다음 연애가 찾아왔고, 이 사람을 떠나 저 사람에게 가는 식이었다. 지금에 와서 진단을 내리자면, 내 연애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온통 똥차 파티인 것은 이런 '신중함의 결여'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선택은 늘 비이성적이고 즉각적이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돈, 마음을 쓰는 일에 인색함이 없었다.


나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아는 J는 영 다른 진단을 내린다. 지난가을 3주 간 우리 집에 머물렀던 J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내게 "똥차 메이커"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떠났다. 말인즉 내가 지나치게 이해와 봉사를 베풀기 때문에 종국에는 그 누구든 '받는 게 당연한 똥차'가 된다는 것이다. 나의 베풂에 대해 최소한을 돌려줄 줄 아는 '선순환의 염치'가 있는지 조용히 주시하는 나로서는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는 진단이지만. 그래도 연애 대상을 고르는 내 선택이 늘 구린 데는 과도한 포용력과 자비력(혹은 호구력)이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주절주절 길게 썼지만 막말로 보는 눈이 낮고 수많은 하자와 결격사유를 관대하게(호구처럼) 떠안고 똥차만 골라 만났다는 한심한 이야기다.


똥차가 아니었던, 돌이켜보면 정말 좋은 사람이었던 몇 안 되는 구 애인들을 떠올리면 아득한 현타가 찾아오기도 한다.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지만) 연애를 자주 권태의 돌파구로 찾았던 내가 어쩌면 그들에게는 최악의 똥차였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처럼 똥차 질량 보존 법칙 같은 게 있나 싶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이제 내 인생에 그런 법칙은 적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책과 요리와 운동과 무위와 무쓸모의 취미 생활로 알차고 충만한 홀로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굳이 지금의 삶에 한 명을 더 보태야 한다면, 사랑과 존중과 염치와 배려가 수반된 긍정적이고 건강한 관계가 가능한 사람이면 좋겠다. 나와 비슷하고 또 다른, 이야기 마를 날이 없는 좋은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더불어 그 누구에게도 똥차가 되지 말자는 다짐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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