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나무 Aug 03. 2018

#09. 여행 '안' 가는 자의 변(辯)

여행, 꼭 가야만 하나요?

아무래도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까지도 여행을 '안'가는 게 아니라 '못'가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체류 기간 동안 나는 프랑스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다. 남들은 열한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유럽인데 대체 그동안 뭐 했냐고 많이들 묻는다. 생활에 지쳐서 여행 다닐 여유가 없다고 웃고 말지만, 정말로 여행을 좋아했다면 몇 번이고 넘을 수 있었던 국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디든 가야 할까? 하는 의문과 언젠가는 가야 할 것 같은 근원 모를 부채감이 찜찜한 뒤끝을 남긴다. 꼭 여름 내내 방학 숙제를 미뤄 놓은 것처럼. 그 누구도 내게 여행을 숙제로 부여한 적이 없는데 참 이상하다. 여행을 떠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여행을 떠나지 않을 자유나 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거 아닌가.


이 이상한 의무감은 아마도 보편적으로 여행에 부여되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은 항상 '자유', '도전', '새로운 시작', '발견', 배움' 같은 새롭고 젊고 유익하며 희망찬 이미지로 소비되곤 하니까. 일상에 갇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여행은 '권장'된다. 항공사 광고는 이국적인 장면을 비춰주며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힐링할 수 있다고 유혹하고, <꽃보다> 시리즈 같은 각종 여행 예능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용기가 얼마나 빛나는지 보여준다. 각종 블로그에는 바라나시나 산티아고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이야기로 넘쳐난다. 매체에서 쏟아지는 여행 콘텐츠를 보면 꼭 나 혼자만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 같고, 어디라도 가야 할 것만 같아 조급해진다. 마치 이 좋은 것을 누리지 않는 것은 곧 '자유롭지 않고', '도전하지 않고', '식견이 좁으며' '늘 그 자리에 고여 늙어가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세상이 놀라울 정도로 여행에 호의적이니 가끔은 여행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장'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행 = 모두가 좋아하고 꿈꾸는 것'이라는 기본값을 장착하는 분위기는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끔 있는 회식 자리에서 여행은 가장 만만한 주제다. 그 자리에 둘러앉은 그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모두의 귀를 잡아 끄는, 거기다 정보도 건질 수 있는 영리한 주제다. 잦은 출장에 익숙한 나의 상사들은 대부분 휘황한 여행 경력을 자랑하는 프로 여행러들인데, 어떤 여행지에서 무슨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또 어떤 험지에서 얼마나 높은 산에 올랐는지를 맛깔나게 늘어놓곤 한다. 그들의 (일부는 이미 여러 번 듣기도 한) 무용담 타임이 끝나면, 그럼 이제 너의 이야기를 해봐 타임이 시작된다. 어디 먼 곳으로 떠난 적 없냐는 질문에 딱히 들려줄 이야기가 없는 나는 이제 슬슬 다녀야죠, 하고 또 웃고 만다. 그러나 곧 불어닥치는 정적을 견디는 건 모두의 몫이 되고 나는 본의 아니게 눈치 없는 맥커터가 되어 버린다.


여행에 호의적인 태도는 언제나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걸 가장 시리게 체감하는 건 소개팅 자리에서다. 여중, 여고, 여대, 여자대학원의 프리미엄 비구니 코스를 수료한 나는 꽤 많은 소개팅 자리에 불려 나갔다. 면식이라곤 1도 없는 저 이름 모를 별에서 온 아무개와 밥을 먹고 대화를 끌고 가야 하는 고난의 시간에 여행은 자주 구원자로 등판해 뻘쭘한 시간을 하드캐리 하곤 했다. 그렇게 여행을 즐기는(것처럼 보이는) 태도를 보이고 나면 상대는 언제나 나를 밝고 씩씩한 인상으로 기억해 주었다. 반대로 나의 친언니는 결혼 전 어떤 선자리에서 소위 까임을 당했는데, 주선자가 '여행 싫어한다, 피곤하고 관심이 없다는 대답이 너무 성의 없게 들려 불쾌했다더라'는 험담을 전해왔다 (믿기지 않는데 실화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행에 냉담한 태도가 무성의하고 불쾌한 인상을 줄 수 있다니. 물론 세상은 케바케 닝바닝이니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에 한한 이야기다.


나도 여행을 자주 떠나던 때가 있었다. 무색무취 덩어리 시절의 교복을 벗고 가열하게 자아를 빚었던 스무 살 초중반까지는 국내외 가리지 않고 용감하고 부지런하게 떠났다. 그 후 공부를 하느라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는데, 길고 긴 학생 시절이 끝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여행을 '안'가게 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는데 드는 품과 비용, 서칭과 예약의 번거로움, 긴 여정 끝에 몰려오는 육체적 피로, 낯선 언어와 소통의 두려움, 다른 화폐 단위로 인한 현실감 없는 소비,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서로 다른 사회적 규칙에 대한 스트레스 등 아주 사소한 이유들이 따라붙었지만 사실 그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맛보는 기쁨이 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면, 그 어떤 수고와 피로도 무릅쓰고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내겐 그리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여행 스타일로 따지자면 문명파보다는 자연파에 가까운 나는 (건축 같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들에 큰 감동을 받지 못한다. 당장 휴양이 필요하지도 않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별로 없는 천성도 한몫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을 떠난 이후 줄곧 장기 여행자의 심정으로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서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보다 '언제쯤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를 더 자주 생각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하고 안온한 것들 속으로 파고들게 되는 것 같다.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세계에 몸을 던지는 일은 일상을 깨는 신선한 자극이 아니라, 동그라미 속에 네모인 몸을 끼워보는 불편하고 고단한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생활의 공백이 늘 집이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채워지는 이유, 항상 여행을 떠나지 않을 자유를 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여행의 미덕을 찬양하는 세상 속에서 뭐야 나만 여행 별로야? 하며 스스로가 왕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경쟁하듯 여행 경험을 늘어놓는 무리 속에서 사회생활을 위해서라도 여행을 가야 할까? 싶을 때도 있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꼭 가봐야지, 라는 말이나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TOP 10' 같은 건 여행을 숙제로 만드는 주범인 것 같다. 여행에 냉담한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그러니까 여행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나를 '무기력한 집순이'로 낙인찍지 않으면 좋겠다. 집단 속에서 '이야깃거리가 없는 지루한 사람'이나 소개팅 자리에서 '무성의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휴가 혹은 휴일이 지나고 복귀했을 때 어디 안 가고 뭐했냐, 는 질문도 (매번, 정말 매번 안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젠 그만 받고 싶다. 또 모를 일이다. 여행이 숙제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오면 나도 끈 떨어진 연처럼 훌쩍 떠나보고 싶어 질지도.



작가의 이전글 #08. 프랑스에서 시 읽는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