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4일
당신에게
오전 내내 햇살이 내리쬐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내립니다. 이곳은 아직도 우기입니다. 비오는 풍경은 수없이 봐 왔지만, 이렇게 한치의 여백도 없이 쏴아- 퍼붓는 비는 태어나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거대한 자동세차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랄까요. 창밖으로 길게 솟은 열대 나무들이 온몸으로 거센 비를 맞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빗방울보다는 물폭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마다가스카르의 우기도 언젠가 익숙해질까요.
나는 잘 지냅니다. 자가격리가 끝난 직후 이사를 했고 곧바로 출근을 했습니다. 떠나오기 전, 모두들 나의 아프리카 생활을 걱정했지만, 실은 사는 것보다 일 걱정이 컸습니다. 예상대로 처음이라 쉽지 않네요. 새로운 업무,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사람들을 파악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걱정은 마세요. 그래도 여유는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일도,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어 좋은 건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체로 바쁜 오후 두 시를 보냈습니다. 오자마자 주말 출근을 했고, 계약서 하나를 번역했습니다. 피로했지만 그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내 사무실이 있어서 좋네요. 단 한 번도 나만의 사무실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말예요. 이전 직장은 한 층이 모두 트여 있는 오픈 스페이스였습니다. 세 부서가 한데 모여 인구 밀도가 무척 높았습니다. 거기선 전화 벨소리, 파쇄기 소리, 통화 소리, 심지어 동료들이 다투는 소리까지 강제 청취 당해야 했죠.
나의 업무 중 하나는 마다가스카르의 정치 경제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것입니다. 인근 섬나라인 코모로 연합과 모리셔스 공화국의 소식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번 주만 해도 이 작은 섬나라들 안에서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니 작다는 표현은 모순일지도!) 참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태풍 피해, 개발 원조, 코로나 치료제, 석유 제품 소비량, 물가지수… 지구상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나라들인데, 이제는 그 세상에 들어와 매일 속사정을 들여다 봅니다. 역시, 인생이란 알 수가 없네요.
나의 오후 두 시는 이렇게 지나갑니다. 그곳은 어떤가요? 나는 오늘도 당신의 오후 두 시가 궁금합니다.
2022년 3월 4일
사과나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