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2일
당신에게
이곳은 안타나나리보에 위치한 한 호텔입니다. 저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보내는 첫 오후 두 시를 보내고 있습니다. 남반구의 한 아프리카 섬에서 맞는 오후 두 시라니. 눈 앞에 보이는 풍경만큼 참 비현실적입니다. 호텔 문을 나서면 편의점과 식당이 즐비한 익숙한 풍경이 펼쳐질 것 같은데 말이죠. 마음에는 여전히 서울의 잔상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탓에 비행 편이 많지 않아 평소보다 긴 여정이었습니다. 인천에서 암스텔담으로, 암스텔담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안타나나리보로 두 번의 환승을 해야 했죠. 경유지와 도착지 모두 한국보다 시차가 늦은 나라들이었습니다. 21일 새벽 인천을 출발해서 안타타나리보에 내렸는데도 21일이더군요. 경유까지 합쳐 24시간이 넘는 시간을 지겹게 보냈는데도 말이예요. 오늘에 영원히 갇혀버린 것 같은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이곳의 오후 두 시는 평화롭습니다. 자가 격리를 위해 호텔에는 이틀 간 머물러야 합니다. 태풍 경보가 내려서 창밖으로 바람이 거세고 이따금씩 비가 사선으로 내립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만, 아직 제게 마다가스카르는 직사각형 창문 속에 담긴 풍경일 뿐이네요. 바래진 도시의 빛깔 사이로 잎이 넓은 열대 나무들이 솟아있습니다. 거리에는 낡은 간판을 단 가게들이 있고, 저 멀리 언덕 위에 갈색 지붕과 건물들이 따개비처럼 붙어있네요. 분명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겠지요.
지난 밤 입국절차를 마치고 처음 공항을 나왔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이곳의 깨끗하고 둥근 밤공기를 나는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밤이었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고, 머리 위로 별 한 점 보이지 않는 먹색의 하늘이 있었죠. 마다가스카르의 첫 인상은 내게 그렇게 각인되었습니다. 살다보면 당연한 풍경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처음은 특별하니까요. 나를 찬찬히 응시하던 여자들의 선한 눈길도, 호텔로 향하던 낡은 봉고차도, 앞으로의 고생을 알리는 느린 행정도, 아마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겠지요.
가만히 호텔방에 앉아 있으니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아지네요. 새로운 직장과 동료들, 새로운 집과 새로운 일상은 어떨까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오늘은 이만 쓰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쉬어야겠습니다. 빨리 여독을 풀어야 생활도 수월해질테니까요.
당신의 오후 두 시도 평안했기를 바랍니다.
2022년 2월 22일
사과나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