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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ug 14. 2018

#16. 파랑새는 없다

프랑스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집안에 벼룩이 창궐했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놈들의 서식지가 된 매트리스와 침대 받침대를 시에서 회수하도록 집 앞에 내놓아야 했다. 아무리 근력부심이 넘치는 나이지만, 퀸사이즈의 매트리스와 원목으로 된 매트리스 받침대를 7층에서 집 앞 횡단보도까지 혼자 옮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건물 관리인에게 도움이라도 청해보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사무실에는 토요일 오전마다 현관을 청소하는 흑인 청년뿐이었다. 급한 마음에 청년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선뜻 나를 따랐다. 키도 한참 크고, 덩치도 좋은 청년 덕분에 무거운 집기를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고 그에게 사례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혹여 실수라도 한 걸까 싶어 돈이 불편하면 밥을 사겠다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돌아오는 토요일에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그는 주중에 내게 전화를 세 번이나 걸었다. 약속 당일까지 전화를 걸어 우리집 문 앞에서 보면 되겠냐며 물어왔다. 나는 기겁하며 건물 앞에서 보자고 했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는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내게 무릎을 부딪히며 불쾌한 스킨십을 시도했고, 애인을 만드는 것을 도와줄 수 있겠냐는 둥, 외롭다는 둥 개쌉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토할 것 같은 식사 자리에서 얼굴을 붉히지 않고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거짓말뿐이었다. 나는 애인이 있고, 이번 가을에 결혼할 것이며, 곧 웨딩드레스를 맞추어야 하니 샐러드를 먹을 것이며(거기 피자 맛집이었는데...), 지금은 혼자이지만 곧 애인이 파리로 온다고 정중하게 이야기해야 했다. 식사가 끝난 후, 그는 고집스럽게 돈을 지불하려고 했는데, 아마도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것을 데이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쓸데없이 디테일한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그걸 데이트라고 여겼다면, 어쩌면 애인의 유무와 관계없이 '동양 여자'인 내게 원하는 것이 따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한번 '이 식사는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초대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했다. 그리고 'L'addition(계산서)'을 기다릴 틈도 없이 카운터로 뛰어가 식사 값을 지불했다. 그날 이후 그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받지 않고 버티다가 곧 번호를 차단했다. 도움을 받았고 감사함을 표했으니 이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두려웠다. 그가 우리 집을 알고 있다는 것이 두려웠고, 내가 혼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게 두려웠고, 그가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젊은 남성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고백하자면 아직까지도 나는 그와 마주칠까봐 토요일 아침 운동을 피한다. 슬픈 것은 토요일 오전에 나가지 못하는 이 공포와 답답함과 억울함이 낯설지 않다는 것인데, 아마도 구남친들에게 '안전 이별'을 보장받지 못했던 기억 탓일테다.


이제나 저제나 '여성'으로서의 나의 삶은 안녕치 못하다는 이야기다. 몰카와 강간과 추행과 가부장과 여혐과 이중잣대의 왕국에서 한동안 고백과 폭로와 미움과 증오의 피바람이 불 때, 이 꼴 저 꼴 안 보고 떠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여성'에 '아시안'이라는 딱지가 붙어 더욱 악화되었다면 모를까. 언어교환 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 남자들이(차암 신기하게도 열이면 열 남자만 연락 옴) 하나같이 한국어에는 1도 관심이 없었던 건 그저 우연이었을까? 내가 유난한 것일까? 테이블 아래로 무릎을 부딪혀오는 몸집 큰 남자를 무서워하는 내가, 홀로 공원에 갈 때면 따라붙어 말을 거는 노인네들 찐따들에게 이젠 대꾸조차 하기 싫은 내가, 치마를 입은 내 다리를 눈으로 훑고, 행사장 소파에 기대 졸고 있는 내 모습을 몰래 폰카로 찍는 동료가 소름 끼치게 싫은 내가 유달리 예민한 걸까?


일터에서의 코르셋도 여전하다. 칭찬이랍시고 내게 "예쁘게 생겼지? 맏며느리 같이."라고 모두의 앞에서 얼평하는 상사는 귀여운 수준. 어이없이 몸으로 후려치기를 당했던 일도 있었는데, 큰 우산과 작은 우산을 두고 "넌 나보다 덩치도 크고 살도 많으니까" (쓰면서도 믿기지 않지만 워딩 그대로임)라고 말하며 내게 큰 우산을 내민 동료년도 있었다. 그때 이후로 충격을 받고 조용히 운동을 시작했는데, 차라리 (J의 표현을 빌려) "쥐었다 버린 개떡 같이 생긴" 게 어디서 후려치기냐며 화를 냈어야 했나 싶다. 프랑스에 와서 한동안 사라졌던 '체중 강박'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내 몸이 크든, 작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내가 예쁘든, 추하든 왜 누군가의 평가나 비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 바퀴벌레 같은 엑스맨들은 왜 프랑스까지 쫓아와 끝끝내 내 몸을 검열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달랐던 경험은 있다. 꽤 오래 만났던 프랑스 연인과의 일이다. 우여곡절을 겪다가 그에게서 도망치듯 헤어지게 되었는데, 이별 후 나는 쏟아지는 그의 전화와 문자, 메일에 응하지 않았다. 더는 할 말이 없었기에 침묵했던 내게 그는 연이어 긴 편지를 보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 통의 편지 중 마지막 편지였다. 요약하자면, <회사 앞에서 너를 기다린 적이 있다. 결국 너를 만나지 못했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의 결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앞으로 이렇게 회사 앞에 찾아와 너를 놀라게 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마지막 편지에 담긴 그의 마지막 말은 '나를 놀라게 할 수도 있었던 것에 대한 사과'였다.


놀랍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나는 3n 년 만에 처음으로 헤어진 연인에게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선택에 대해 숙고하고, '나에게 위협이 될만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일정한 거리를 지키는 그에게서 나는 처음으로 안전함을 보장받는 것 같았다. 연인 관계를 떠나 모든 관계에서 너무도 당연한 이 '거리'와 '존중'이 이토록 신선하게 느껴지는 나를 보며, 지금껏 내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왔고,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 이후 데이트를 했던 다른 프랑스 남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지 않다고 의사를 밝힌 나에게 초콜릿을 보내온 적은 있어도, (마치 소유물을 되찾으려는 사람처럼) 집 앞에서 기다리며 겁을 주거나, 문자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언을 보내는 경우(거의 십 년이 다 된 일인데도 치가 떨린다)는 없었다. 요컨대, 이곳에서 처음으로 '안전한 연애'라는 것을 경험한 셈이다.


왜 프랑스로 가게 되었냐고 물어올 때, "여기엔 파랑새가 있을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곳에서 나는 늘 한국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고 찾아다녔다. 분명 다른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기에 그 감각으로 살며 발생하는 충돌도 당연히 되풀이되었다. 요즘 1층 청소부를 피해 다니며 슬슬 현타를 느끼는 중인데, 내게 필요한 건 파랑새를 찾는 게 아니라, 파랑새가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이건 내가 찾던 게 아니라고, 이런 건 싫다고 도망치고 피하는 게 아니라, 원치 않는 접근에 꺼지라고 소리 지르고, 몸으로 후려치는 주변 사람에게 뻐큐를 날리는 게 필요하다는 그런 저런 생각들.... 한국이든, 프랑스든 삶의 배경과 관계없이, 그 어떤 엑스맨들 사이에서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여성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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