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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Oct 18. 2018

#22. 독점적 관계의 함정

나의 '관계 모델'은

초등학교 시절 첫 단짝인 G는 교실을 군림하는 여왕벌이었다. G가 특출나게 공부를 잘한 것도, 집이 부유한 것도, 힘이 세거나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닌데 교실의 질서는 G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특이점이 있다면 G가 인형처럼 얼굴이 작고 늘씬했다는 점인데, 돌이켜보면 외모가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어린 나이에 학교에서  배운 셈이다. 우연히 G와 같은 동네로 이사 온 나는 단짝으로 '간택'되었다. 지하에는 노래방이, 1층에는 슈퍼마켓이 있는 3층 건물 꼭대기에 살았던 G는 나를 자주 초대했다. 방과 후 우리는 '빨간 망토 차차'를 함께 시청했고, 인형 놀이를 했고, 배가 고파지면 간장을 뿌린 날달걀에 밥을 비벼 머리를 맞대고 먹었다. 서로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멀어졌는데, G가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에서 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건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 후 만난 단짝이 B였다. 그 시절 B와 공유했던 것은 인형 놀이나 빨간 망토 차차 같은 단순하고 납작한 것이 아니었다. B와 나는 나란히 심은 어린 나무 같았다. 매일 매일 조금씩 자라는 키만큼 우리의 세계도 함께 무성해졌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달라져도 단짝은 바뀌지 않았다. 교실이 다르고, 급식을 따로 먹어도 시험 보는 날이면 빈 OMR 용지 뒤에 편지를 써서 교환하는 것이 무언의 약속이었다. 생일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특별한 날에는 서로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기 바빴다.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도 B 덕분이었다. 손편지와 벚나무와 페이퍼와 긱스를 좋아했던 우리는 수능이 끝난 후 나란히 중고 필름 카메라를 구입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편지를 많이 썼던 시기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보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던지. 생각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발견하는 새로운 나. 나를 둘러싼 우주. 별처럼 무수한 질문들이 거기에 다 있었다.

요컨대, 나는 B를 사랑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네이트온 메신저로 안부를 나누었는데, B와 나를 이어주던 (추억의) 싸이월드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서서히 연락도 뜸해졌다. 그 후 나도, B도 삶의 터전이 여러 번 바뀌었고 어느 순간 일상의 교집합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언젠가 여행차 파리에 온 B를 만난 적이 있다. 우리 둘 다 어엿한 노동자가 되었다는 점 말고도 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내가 알던 B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한 시절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카톡 대화창 속에서 한 해의 복을 빌어 주거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정도의 사이로 남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B에게서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이 아직도 내 삶 속에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B와 구축했던 이 '관계 모델'은 오랫동안 내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코어가 되었다. 대학 캠퍼스, 동아리, 어학연수, 문학번역원, 대학원을 거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결국 찾게 되는 건 "나와 손가락이 잘 맞는" 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단짝이었던 G처럼 물리적으로 꼭 붙어 있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다만, 정서적으로 서로의 내밀함을 공유할 수 있는 '일대일 독점적 관계'를 원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주는, 사랑하는 '나의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잔뜩 몸을 사리고 나와의 궁합을 견주기 바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우르르 떼 지어 만나는 것이 싫었다. 적당히 웃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오가는 모임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 같았다. 더 솔직해지자면 그런 자리에서는 어느 정도의 진심이 적당한지 늘 혼란스러웠다. 너무 피상적이지도,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게 진심을 저울질하는 일은 어렵고 피로했다.

갖가지 이해관계와 목적과 취향과 세계관을 가진 인파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겨우 한 줌밖에 되지 않았지만, 불안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내 울타리 속에 들어온 소수의 사람이 모래 속에서 건져낸 구슬처럼 빛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관계 모델을 재고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깊이 사랑해야만 "진정한 관계"고 나머지는 무의미하다는 식의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가 자꾸만 나를 고립시키는 것 같아서다. 특히 외노자 생활을 시작하고 일 이외에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0에 수렴하면서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나와 달라, 저 사람은 나와 안 맞아 하며 사람을 가렸던 건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저 편협했던 게 아닌지. 한 줌 남은 내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언젠가 혼자가 될까. 정답인 것만 같았던 이 '관계 모델'이 실은 그냥 수많은 관계 맺기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면?

G에서 출발한 내 사회성은 B와 함께한 유년 시절 어디쯤 멈춰있는지도 모르겠다. 독점적 관계의 함정에 빠진 채 아주 오랜 시간 방치된 기분이다. 거기서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문득 J가 떠오른다. 친화력이 뛰어나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J는 트위터 상에서 동갑 여성을 모집해 여자들끼리 신나는 연말모임을 가졌다고 했다. 그 때는 이름도 정체도 묻지 않는 그 일회성의 만남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나와 달라도, 궁합이 맞지 않아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해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 속에 녹아드는 기쁨을 배우고 싶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아도, 깊이 사랑하지 않고도 누군가와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 즐거움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편견과 경계를 걷어내고 사람을 만나야지. 용기를 내어 다양한 관계를 시도해 봐야지. 뭐 그런 저런 다짐들을 해보는 요즘. 유년에 고착된 시곗바늘을 움직여 본다. 이제는 좀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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