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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Sep 12. 2018

#21. 식사의 의미

잘 먹고 잘사는 1인 가장 되기   

열아홉 살에 혼자 상경하면서 나는 1인 가구의 수장이 되었다.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불행히도 유능한 1인 가장은 되지 못했다. 즉각적 욕구에 늘 지고 마는 어리석은 소비 패턴도 문제지만, 식생활 면에서 각별히 무책임함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요리 쪽으로 재능이 (몰빵 아니고) 몰살 당한 것과 별개로, 극단적 게으름과 충동적 성실을 오가는 나의 식습관 때문이다. 극단적 게으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파리에서 2주간 필터링 없이 내 생활을 목도한 J는 나의 식생활을 '채집 생활'이라 명명했다. 여기엔 '줏어 먹는 생활'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유인즉슨, 집에서 끼니를 챙길 때면 시리얼, 유탕 스낵, 비스킷, 초콜릿, 젤리, 사탕으로 가득 채운 찬장에서 '산나물 채집하듯' 과자를 꺼내 먹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돌아가던 날, J는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을 '줏어 먹지 말고', 제발 물기가 있고 화기가 닿은 음식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퍼붓고 떠났다. 


화려한 채집 생활은 J가 떠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 생활을 떠받쳤던 건 칠 할이 귀차니즘이었다. 식사도 일(事)이라고 때맞춰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 것도 내게는 '노역'이었다.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식욕을 지닌 나지만 (입 짧은 게 뭔지 모름), 게으름 앞에서는 늘 지고 만다. 라면마저 유통기한을 넘기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내 모습을 보고 J는 진심 어린 찬탄의 눈빛을 보냈다. 에너지(음식)를 충전하기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요리, 뒷정리) 사용해야 하는 아이러니. 공장에서 만들어 준 고열량의 달고 짠 과자와 사탕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나머지 삼 할은 입맛이다. 밥이 있으면 잘 먹지만, 굳이 찾진 않는 나는 "밥심"이 아니어도 그럭저럭 잘 산다. 비스킷 한 박스와 과일만으로도 행복한 나의 입맛은 한편으로 외국 생활에 최적인 셈이다.  


이 생활을 청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올해 봄부터다. 아침 운동을 시작하면서 거울에 자주 몸을 비춰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체형이 변했다. 허리가 짧은 대신 배가 납작한 나는 아무리 살이 쪄도 뱃살이 튀어나오는 체형은 아니었다 (그냥 덩치가 커짐).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옛날 말이었다. 배꼽 아래로 둥근 둔덕을 그리는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아랫배뿐만이 아니었다. 두툼해진 뒷구리살과 넓어진 등판까지. 고열량, 고지방에 색소와 각종 화학 첨가물로 범벅된 식습관의 부메랑을 내 몸이 처맞고 있었던 것이다. 큰맘 먹고 과자 찬장을 싹 비웠다. 한동안이지만 시리얼도 끊었다. 하지만 편의점만 가도 김밥이나 도시락처럼 영양가 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샐러드나 샌드위치는 금세 질렸고 식당 밥은 비쌌다. 결국 나는 요리로 회귀해야 했다. 


혼자서 식사를 만들어 먹는 일이 새삼 낯설었다. 1인 가장으로서 참 많은 끼니를 혼자 겪었을 텐데, 채집생활 이전이 어땠는지 까마득했다. 그제서야 내가 혼자서 먹을 때, 딱히 '식사를 한다'고 의식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내게 식사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동료와 점심을 같이 먹거나, 주말에 사람들을 만나 식당에 갈 때,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서 요리를 할 때 그건 분명히 식사였다. 식탁에 마주 앉아 상대와 눈을 맞추고, 함께 음식의 맛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식사 시간. 집에 혼자 있을 때는 가장 간편한 방식으로 그저 위장을 채우기 급급했다. 달고 짠 주전부리에 집착한 것도 사실은 자극 없는 일상과 빈집의 고독과 허기를 채우고 싶어서였다. 요컨대, 식사는 내게 둘 혹은 셋 이상의 일(事)이지 혼자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니 나 하나만을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썰고 익히는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고 귀찮을 수밖에. 


그래서 억지로라도 재미를 붙여보기로 했다. 요리 채널이나 먹고 사는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 같은 것을 보기 시작했다. 영상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위해 기꺼이 음식을 만들고 예쁘게 식탁을 차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열심히 다이어리의 한쪽에 레시피를 받아적었고, 영상으로 영감을 받으면 장을 잔뜩 봤다. 하지만 실컷 장을 보고 돌아와 기력이 달려서 시리얼에 우유를 말고 마는, 그리하여 냉장고에서 재료가 썩어가는 날들도 반복되었다. 시행착오 끝에 찾은 타협점은 주말에 일주일간 먹을 음식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밤사이 현미를 불려 놓았다가 흰 쌀과 섞어 4-5인분의 밥을 미리 해 놓는다. 상추나 고추 같은 채소도 씻어 지퍼백에 보관한다. 참치캔 같은 것을 곁들이면 밸런스 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콩나물밥, 카레, 떡볶이, 소고기 토마토 스튜 따위를 한 솥 가득 만들어 놓거나, 감자와 고구마를 잔뜩 쪄 놓는 날도 있다. 


건강한 1인 가정을 이끄는 건 여전히 부친다. 칩스와 쿠키를 와그작대며 게으르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 욕구와 유튜브 영상에 혹해 식재료를 쓸어 담으려는 충동 사이에서 매번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벌어진다. 다행한 건 일요일에 요리하는 일을 꽤나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북적이는 일요일 아침 시장. 좌판에 진열된 신선한 야채와 고기.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다듬는 콩나물 더미. 손질을 마친 매끈한 채소. 보글보글 국물 끓어 오르는 소리. 압력밥솥 증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밥 냄새. 모두 식사에 담긴 풍경이 되었다. 이제는 나도 '식사를 한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이 다긴 하지만. 테이블보를 깔고 식기에 데운 음식을 담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놓는다. 비로소 식사의 의미 속에 '내'가 중심이 된 기분이다. 이 여세를 몰아 모범 가장까지 노려보려고 한다. 혼자서도 척척, 능숙하고 건강하게 생활을 진두지휘하는 장면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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