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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Sep 01. 2018

#20. 상상력에 관하여

타인의 삶을 내 시야에 가두지 않는 힘 

"빈씨는 프랑스에 계속 있을 생각이에요?" M이 내게 물었다. 지금의 노동 공간에서 '평생직장' 같은 것은 꿈꿔 본 적도 없지만 (꿈에서라도 싫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평생 늙어 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니요, 한국 가야죠."라고 대답했다. M이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아니, 이제 한국 가서 뭐 하려구요? 공무원 시험 보시려구요? 결혼 말고는 할 게 없잖아요."  


롸...?  


황당했다. 워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손을 내저으며 공무원은 시켜줘도 못할 것 같다고 대답했고,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요? 뭐라도 하겠죠, 하고 돌아섰다. 황당도 황당이지만 적잖이 놀랐다. M의 어마어마한 '상상력 부재'에 놀랐다. 첫째, 삼십 대 초반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둘째,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의 노동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 셋째, 내가 비혼주의자이거나 독신주의자일 가능성. 넷째, 내가 이성애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나를 둘러싼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M은 완벽하게 무지했다. M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과는 다른 존재 방식이 있을 거란 가능성에 대해 '상상조차' 못했다는 것. 그래서 자기 삶이 절대적 모델인 양 나의 인생을 악의 없이 속단했다는 것. 그뿐이다.  


M의 질문은 <한국 가서 뭘 할지 생각해둔 게 있어요?> 정도의 단순하고 포괄적이며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내용이 될 수도 있었다. '나이가 꽉 차서' '공무원'을 해야 할지, '다른 노동 시장'으로 편입할지, 적극적으로 선을 봐서 '결혼'에 매진할지, '비혼'으로 살지, 결혼 말고 '다른 대안'을 찾을지는 질문하는 너의 몫이 아니라 대답하는 나의 몫이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경험에 따라 가치관이라는 창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본다. 편협해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읽고, 소통하며 창틀의 높이와 너비를 확장해 나가야 하는 이유다. 시야의 바깥은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은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짐작하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상상한다. '경상도에서 5인 가정의 둘째(딸-딸-아들)로 태어나 오른손잡이에 비장애인이지만 심한 근시가 있는 표준 신장과 체중의 30대 헤테로(아마도?)이자 미혼의 한국 여성으로서, 빚 없이 인서울 4년제 여대를 나와 석사를 마치고 4대 보험 없는 외노자로 파리에서 사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한다. 그러니까, 나를 규정하는 것들의 밖에 있는 기분, 내가 존재하는 방식으로는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을 감히 짐작해 본다. 그'가능성'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더듬다 보면 이해의 범위가 넓어지고 상대를 배려하는 섬세함도 생겨난다. 물론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도 분명 발생할 것이다.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M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무례를 범하거나 악의없는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상상력을 뻗어 본다. 아주 조심스럽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고 어두운 틈새까지 닿길 바라며.

   

누군가의 상상력이 내게 닿을 때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J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눈 밝은 취향으로 고른 몇 권의 시집과 살뜰히 담은 주전부리 위로 긴 편지가 있었다. J는 얼마 전 독일에서 오래 계셨던 분을 만났다고 했다. 너무나 외로웠다고 울먹이는 그 분을 보며 나를 떠올렸다고. 던킨도넛이나 베스킨라빈스같은 체인점 맛이 그립다고 말하면, 혀가 백종원급이라고 놀렸던 J는 "언니에게 힘든 게 던킨이나 베라가 없는 것만은 아닐 텐데. 언니가 사려 깊게 감추었던 어떤 이면을 본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고 썼다. "화려하고 멋져보이는 삶에도 자신만의 무게와 1인분의 고독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고. 보이지 않는 나의 등 뒤로 상상을 뻗어 내 그림자를 매만지는 J의 말에 나는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햇살이 닿은 설벽(雪壁)처럼.


나 역시 먼 곳의 J를 상상한다. "여자들을 우겨넣고 자르고 늘이며 맞추려는" 세상의 틀과 온몸으로 싸우는 J의 마음을 더듬어 본다. 환한 해바라기 같은 얼굴과 여름볕처럼 쨍쨍한 목소리 뒤에 감춰진 J의 혼란과 되풀이되는 환멸과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도 그려본다. 그러고 보면 결국 상상력은 타인을 사랑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삶 속에 내재된, 밝고 어두운 수많은 가능성을 헤아리려는 노력이니까. 힘세고 품이 아주 넉넉한 상상력을 갖고 싶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내 좁은 시야의 틀에 그를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둡고 축축한 이면까지 쓰다듬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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