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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ug 25. 2018

#19. 파리에서 여름 나기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손발이 뜨겁고 열이 많은 나는 여름 앞에선 무조건 지는 최약체다. 여름을 "즐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다만,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여름을 나는 것이 내게는 한 해의 과업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올해도 파리의 여름은 뜨거웠다. '덥다'는 상태보다 '뜨겁다'는 촉각이 더 어울리는 계절. 습도는 낮지만 볕이 세고 끈질기기 때문이다. 자외선 차단제가 필수라고 해도 능사는 아니다. 나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두피'가 구릿빛이 되는 경험을 했다. 게다가 하루가 너어무 길다. 정말이지 해가 징글징글하게 길고 집요하다. 패기 넘치는 한낮의 태양이 도시를 한껏 달구어 놓았다면, 오후의 태양은 느릿느릿 기울어지며 도시를 뭉근하게 끓여 놓는다. 그리고서 저녁 아홉 시가 훌쩍 넘어서야 지평선 너머로 등 떠밀리듯 사라진다. 


그래서 더위의 정점은 오후 다섯 시에서 여덟 시 사이다. 회사에서야 에어컨이 있으니 바깥 사정 따위 고굽척할 수 있을지 몰라도, 퇴근 후엔 이 절정의 온도 속으로 꼼짝없이 걸어 들어가야 한다. 한국처럼 에어컨 빵빵한 카페라도 널려 있다면 좋겠지만, 오래된 건물이 많아 냉방시설 갖추기 힘든 파리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지하철 과반수가 에어컨이 없는데 말 다 했지 모). 그렇다고 집으로 갈 수는 없다. 서향인 데다가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는 내 작은 아파트는 하루 종일 여름 볕을 끌어모아 퇴근 시간쯤 완벽한 온실이 된다. 바닥마저 나무나 타일이 아닌 모켓이니, 여름날 집 안에 있노라면 건식 사우나에서 니트를 뒤집어쓴 기분이다. 작년 여름 항복을 외치며 거금의 냉풍기를 구입했지만 집안 전체 온도를 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주로 향하는 곳은 공원이다. 강변을 따라 멀리 걷고 싶을 땐 튈르리 공원으로, 집 근처를 크게 벗어나고 싶지 않을 땐 뤽성부르그 공원으로 간다. 얼음을 엑스트라로 때려 넣은 아이스커피를 산 후, 인적이 드물고 나무가 무성한 곳을 찾는다. 잎사귀 차양 아래에 긴 의자를 끌고 와 팔자 좋게 눕는다. 그곳에서 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 보이스톡을 하기도 한다. 책도 참 다양하게 읽었다. 리디북스 앱으로 전자책을 읽기도 하고, 한국에서 조달받은 책과 프랑스 서적을 적절히 돌려가며 읽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엔 과일 쇼핑이 빠질 수 없다. 수박, 살구, 천도복숭아, 납작 복숭아, 흑자두, 청자두, 미라벨.... 발가락이 아니라 겨드랑이로 골라도 실패할 일이 거의 없는, 달고 싱싱한 제철과일을 부지런히 먹는다. 먹순이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여름 나기다. 


나뿐만이 아니다. 여름의 파리는 나와 같은 '계절 특수 노마드'로 북적인다. 밤늦도록 카페테라스에서 맥주나 찬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 잔디에 누워 태닝 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사람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두런두런 수다 떠는 사람들. 더울수록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아이러니는 짙은 녹음으로 물든 도시에 생기를 더한다. 이 활기찬 풍경에 통통 튀는 색감을 입히는 건 사람들의 옷차림이다. 빨강, 파랑, 노랑, 주황, 핑크 같은 쨍한 빛깔에, 패턴도 큼직큼직한 옷들이 거리를 수놓는다. 얇아진 옷들이 경쾌하게 하늘거리고, 맨살을 드러낸 사람들의 그을린 피부는 여름 햇살에 빛난다. 그래서 덥고 힘든 것과 별개로 한여름의 파리는 건강하게 아름답다. 


다른 계절, 특히 겨울과 비교해 유난히 여름이 활력 넘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꼭 대비 효과처럼. 여름이 물러나면서 비비드한 도시의 색감은 점점 흐려지고, 겨울이 도착할 때쯤 완연한 무채색이 된다. 특히 늘 흐리고 비가 내리는 겨울 날씨는 다운 톤의 분위기에 우울을 한 숟갈 더해준다. 검정, 차콜, 남색, 회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뼛속으로 스미는 추위에 잔뜩 웅크린 채 빠르게 걷는다 (한국의 겨울이 살을 에는 동장군의 추위라면 파리의 추위는 으슬으슬 시린 추위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면 어두운 거리에도 불빛이 그렁그렁 열린다. 칙칙한 파리의 겨울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다정하게 반짝이는 요 알전구들의 몫이다. 


해가 지고도 공기가 식지 않아 밤잠을 설치던 시기는 지나갔다. 여름에서 가을로 향하는 계절의 스펙트럼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발악하듯 내리쬐던 햇살이 누그러지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에 가을의 찬기가 묻어난다. 그늘을 찾아 헤매던 강제 노마드 생활도 슬슬 끝이 보이나 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올해의 과업 중 하나를 무사히 끝낸 것 같아 홀가분하다. 마켓에 더 이상 수박 보이지 않아 좀 서운하긴 하지만. 여름 내내 바빴던 얼음 트레이를 비우며, 끝나지 않은 여름에 이른 작별인사를 해본다. 이제 천천히 낮아질 도시의 채도에 적응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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