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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ug 19. 2018

#18. 프랑스어와 나

기호의 바깥에서

외국인인 나에게 프랑스어는 늘 어렵고 낯선 기호다. 나는 남의 나라의 기호를 빌려 생필품도 사고, 음식 주문도 하고, 업무도 하며 생활을 꾸린다. 낯선 땅에서 살기 위한 생존 수단인 셈이다. 사람들은 내게 "그럼 불어를 잘하시겠네요?" 하고 자주 묻는다. 그럴 땐 "아니요, 저 불어 잘 못 해요"하고 손사래 치지만, 이건 어쭙짢은 겸손이나 위선이 아니다.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일도 하고 있지만 나는 불어를 잘 모르겠다. 아직도 못 알아듣는 것이 많고,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많으며, 아직도 모르는 표현투성이다. 언어 자체의 광범위한 속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호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떠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기도, 소멸하기도 한다. 그래서 외국의 기호를 익히는 일은 더디고 막막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밑이 없는 독에 끝없이 물을 채워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미술사에 재미를 붙인 나는 불어 원서가 읽고 싶어 '기본 프랑스어' 수업을 들었다. 언어의 신비로움이라든지, 음성적 아름다움 같은 판타지는 솔직히 쥐똥만큼도 없었다. 3학년이 되던 해 불문과로 전과를 했지만, 그때까지도 불어는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기본 불어를 떼고 겨우 불문과생이 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열등생이 되었다. 외고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학생들 틈에서 고학번 전공 수업을 따라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다. 속수무책으로 4학년이 되었고 나머지 공부반에서 깜지 쓰는 심정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마르세유와 함께 제 2도시로 꼽히는 리옹이라는 중소도시였다.  


리옹에서 보낸 1년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불어가 '공부를 위한 수단'에서 '공부 그 자체'로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미술사에 흥미를 잃어가는 중이었고, 졸업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리옹의 한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프랑스인 부부를 만났다. 아시아 문화, 특히 문학에 관심이 많다던 부부는 김영하의 <검은꽃>과 황석영의 <손님>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신기했다. 한국어라곤 기역도 모르는 외국인 부부와 한국 문학을 주제로 대화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번역'이 하고 싶어졌다. 출발어의 기호를 벗기고 도착어의 기호를 입혀 인종도 문화도 역사도 다른 두 언어권에 다리를 놓고 싶었다.  


그러려면 불어를 잘해야 했다. 어학연수 초기에 초급반이었던 나는 떠나올 때쯤 중급반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불어는 내게 학습 '해야 하는' 기호였고, 그런 의미에서 '의무'를 지우는 기호였다. 남들보다 뒤늦게 외국어를 배웠다는 열등감이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통번역 대학원을 다닐 땐 "역대 가장 실력 없는 학번"이라는 뼈 때리는 팩트 폭행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은) 다했다. 기호라는 미로에 갇힌 채,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빚을 갚는 것 같았다. 졸업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씩 불어가 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건 실력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잘해야한다는 생각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외국어란 (모국어가 지닌 언어적 직관이 없다면) 평생에 걸쳐 배워도 모자라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 같다.


짧은 프리랜서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살고 있어도 불어는 여전히 남의 나라 기호다. 음식을 주문할 때나 전화가 걸려올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긴장하고 집중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불어는 내게 '의무'를 지운다. 학습 '해야 하는' 의무일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 사용 '해야 하는' 의무. 빵 한 조각을 사는 데도, 우편물 하나를 받는 데도 불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휴식 시간에 프랑스 매체를 보거나 듣는 한국 사람들이 마냥 신기하다. 내게 휴식은 이 기호의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다. 평생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 불편한 기호로부터 달아나 포근한 모국어의 품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더 이상 내 프랑스어가 늘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때였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기호바깥길'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기호의 바깥에 있는 길이라니. 그 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대학원 시절 어떤 교수님은 "평생을 받들어 모셔야하는 게 외국어"라고 했다. 이제 번역을 업으로 삼지도 않는 마당에 나는 정성을 다해 받들어 모시기 보다는 자유롭고 싶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 낯선 기호의 안과 바깥을 넘나들고 싶다.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불어 공부를 쉬고 있다는 죄책감도 버리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버리고. 내 의사를 적당히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불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렇게 느슨하고 싱거운 마음으로 기호와 동거동락하다보면, 언젠가 구멍난 독에도 찰랑거리며 물이 차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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