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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Aug 04. 2019

#28. 바르셀로나 여행 일기

2019년 2월 셋째 주의 기록

얼마 전 스페인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바르셀로나 저가 항공 티켓을 질렀다. 뭐에 홀렸는지 가격도 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일정이었다. 금요일 밤 퇴근하고 출발해서, 일요일 점심에 돌아오는 주말여행이었다. 숙소는 시내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평점이 좋은 곳이었다. 예습과 서칭의 여유가 부족한 주말 여행자에게 적합한 일일 가이드 투어도 예약했다. 가우디 작품을 중심으로 도심을 걷는 워킹 투어였다. 처음부터 ‘갈까 말까’가 아니라 ‘간다’ 고 생각하니 모든 게 빨랐다. 파도타기처럼 결제 컨펌 메일이 차례차례 도착했다.
 
금요일 여섯 시. 퇴근 시간에 딱 맞춰 회사를 나와 근처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짐은 백팩 하나였다. 노트북, 세면도구, 잠옷, 속옷, 면 원피스가 전부인 단출한 짐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하늘색 블라우스, 검은 스커트, 조금 이른 트렌치코트를 걸친 나는 아직 직장인 페르소나를 벗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을 시각이었다. 어쩌면 샤워를 하고 침대에 기대 예능을 보며 맥주를 마셨을지도 모른다. 귀갓길의 궤적이 달라진 것만으로 일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깨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를 느끼며, 생활인과 여행자의 경계에 선 이 기분이 싫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방 속에는 배쓰밤과 레몬향 마사지밤도 있었다. 최근에 배운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다. 향긋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마사지밤을 부드럽게 녹여 바른 후, 청결한 침구에 누우면 녹진한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내내 우울하고 무기력한 겨울이었다. '운동- 회사 - 마트/산책 - 집'의 루트를 반복하다가 서서히 운동도 산책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사람도 싫고, 활자도 싫고,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없는 매일이 반복되었다. 쓰레기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욱여넣고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은 채로 잠이 들면 외로움과 자기혐오로 범벅이 된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내가 나를 방치한 채로 한 계절이 지나갔다.
 
그렇게 늦은 시각에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 한 시간 사십 분의 짧은 비행 끝에 내린 바르셀로나의 밤공기는 파리보다 사뿐하고 부드러웠다. 낮 동안 내려앉은 지중해의 햇살이 잔상처럼 공기 속에 남겨진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들어와 체크인을 마치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옷차림 때문인지 택시에서도, 호텔에서도 내게 ”국제 모바일 콩그레스”에 참석하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주말여행을 온 거라고 대꾸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그랬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여행지에서는 내가 누구든 마음껏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어 진다.
 
다음 날 아침, 투어 집합 장소는 설렘으로 가득한 여행객들로 와글거렸다. 우리는 시원한 미소의 가이드를 따라 도심 속을 걸었다. 카사 비센스, 카사 바치오, 카사 밀라. 보물찾기 게임이라도 하듯이 모래색, 점토색의 건물 숲 속에서 굽이치는 가우디 작품을 찾아다녔다. 구엘 공원을 호젓하게 거닐기도 했다. 공원 구석구석에 감춰진 가우디의 천재성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감동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괴랄한 모양새에 불호를 외쳤던 순간이 더 많았다. 관광지의 돈벌이로 후손들에게 이용되는 수많은 천재 중 하나라고 냉소하는 순간도 있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대도, 환상도 없던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일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섰을 때, 눈 속에 담긴 풍경은 글자 그대로 충격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숭숭 뚫린 구멍처럼 흉하기만 했던 수많은 창이, 실은 온갖 빛깔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입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창을 뚫고 깊숙이 들어와 사방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공기가 색색의 빛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걸어 빛으로 물든 공기 속을 유영했다. 알록달록한 허공을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성당을 가득 채운 빛 속에서 내가 느낀 건 신의 현존이었다. 신이... 거기에 있었다. 가우디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벅찬 마음이 느껴졌다.
 
증축 중인 성당을 보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지금까지 성당이나 왕궁 같은 건축물을 보는 건 수 세기 전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지나간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경험.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나씩 세워지는 탑을 보자니, 당장 눈앞에서 쓰이고 있는 역사를 관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늘 역사란 과거의 것, 내가 존재하기 전의 어떤 것으로 생각했는데. 성당 앞에 있으니 나도 흘러가는 역사 속에 있구나, 지금 이 순간도 사실은 역사의 한 부분이겠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내부를 봐야 한다는 결론을 얻고, 투어 중 지나쳤던 카사 바치오를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해가 지고 있었다.
 
카사 바치오는 물결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푸른 계열의 타일 조각이 온 벽을 뒤덮고 맑게 일렁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꽂고 헤엄치듯이 건물 안을 돌아다녔다. 건물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전체적 기능을 고려한 설계, 문고리 하나까지 사용자의 편의를 생각한 섬세함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으며... 가우디가 도달하고자 했던 완벽함에 경악하며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카사 비센스와 카사 밀라도 그 내부가 궁금했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투어에서 만난 언니와 약속한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련을 줄줄 흘리며 보케리아 시장으로 향했다.
 
언니와 나는 과일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들고 미로 같은 시장을 누볐다. 지천으로 널린 신기한 향신료들, 주렁주렁 걸린 하몽, 얼음 더미 속에 꽂힌 과일 주스와 길거리 간식들. 정신을 쏙 빼놓는 시장의 산란함이 좋았다. 우리는 포장마차처럼 즉석에서 해산물과 고기를 조리해주는 한 간이식당에 앉았다. 종일 걸었더니 허기가 몰려왔다. 크고 싱싱한 오징어 몸통을 살짝 구워 레몬을 뿌린 요리와 꼴뚜기 튀김을 시켰다. 맥주로 시작한 저녁 식사는 샹그리아로 이어졌고, 들뜬 목소리로 카바 샹그리아를 추가할 때 나는 내일이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뜨자 피로인지 숙취인지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몰려왔다. 잔뜩 취해서 정신없이 돌아온 지난밤이 떠올랐다. 파리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래도 바다는 보고 떠나야 할 것 같아서 꾸역꾸역 일어나 씻고 서둘러 체크아웃을 했다. 구시가지에서 추로스와 핫초코를 사들고 벨 항구로 향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산책로를 걷다 보니 정신이 좀 맑아졌다. 선착장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추로스로 해장(?)을 했다.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배낭을 베고 벌러덩 눕자 환한 아침 햇살이 눈꺼풀 위로 어룽거렸다.
 
도시를 등지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아직 볼 것도 먹을 것도 숙제처럼 잔뜩 남아있었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시 와야 하는 이유가 즐비했으니까. 그게 언젠가 다시 갇힌 일상으로부터 나를 꺼내 줄 테니까. 돌이켜보니 빛으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성당 안을 채운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카사 바치오의 반짝이는 물결, 노란 알전구가 그렁그렁 열린 시장통, 도시의 건강한 햇살과 눈부신 바다. 좋은 날, 퀴퀴한 방구석을 벗어나 빛으로 가득한 거리를 오랫동안 산책한 느낌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송승언 시인의 <사랑과 교육>을 떠올렸다. 신이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사랑과 교육/ 송승언


좋은 날이야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정말

어느 날의 잠에서 깨어나 떠올린 기억이

어느 날의 산책이 아니라

산책 없이 헤어진 날 들었던 너의 목소리라면 그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거리

모두 사라진 이 거리를 산책하며 쏟아지는

이상한 빛을 바라본다는 것

빛의 좋음 때문에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휘감기고 있다면

그것은 신의 사랑일 것이다

불타는 이 도시의 꼴이 신의 교육이듯이


산책하며 익히는 건 걸음걸이

세계 불타는 것 중요하지 않고

내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걷고 있구나 하는 정도

그리고


좋은 날에 걸으면 반드시 죽고 싶다는 것

죽지 말라고 할 사람 죽어야 할 이유


더는 없는데도 몇 번씩이나

살면서 그러라고 누가 가르쳐준 것처럼


<현대시학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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