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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Oct 04. 2019

#29. 사진과 나

우리는 서로의 앨범이야

카톡으로 고등학교 동창 K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사진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시절의 평범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집-학원/독서실-학교의 무한 루프에 갇혀 있었다. 햇살이 충분히 닿지 않아 파리하게 하얬고, 머리 끝은 귓불을 겨우 스칠 정도로 짧았다. 웃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어정쩡한 얼굴은 카메라 아래의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카메라 앞에 자신감 없는 눈빛과 얼굴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학창 시절의 나는 사진 찍히는 것이 싫었다. 2차 성징 후, 내가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사춘기를 지나며 부쩍 불어난 체중과 그때부터 시작된 (이십 대 내내 나를 괴롭힌) 엄마의 코르셋도 한 몫했다. 사진으로 예쁘지도 않은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내게는 학창 시절의 사진이 별로 없다. 지금처럼 화질 좋은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사진을 찍던 시절도 아니었다. 굳이 원치도 않는 카메라 앞에 설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진이 좋았다. 사진사였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외가에는 사진이 많았다. 앨범을 골라 열면 흑백으로 찍힌 "진짜 옛날 사진들"이 있었다. 어디 기록물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과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모르는, 엄마와 할머니와 이모들의 지나간 시간을 엿보는 게 재밌고 신기했다. 그때 페이퍼라는 잡지를 모았던 것도 팔 할이 사진 때문이다. 핀이 나간 풍경, 흐린 색감으로 찍은 계절, 상상 속으로 그리던 인터뷰이의 얼굴과 표정, 독자들이 보낸 소소한 추억의 순간들.... 페이퍼에는 그런 사진들로 가득했다.


수능이 끝난 후, 처음으로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는 모아둔 용돈으로 카메라를 샀다. 학교 앞 사진관에서 단짝 친구 B와 나란히 구매한 중고 필름 카메라였다. 둘 다 초보적인 조작 밖에 못하는 기계치였지만, 그래도 그 카메라를 들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사진 찍기는 계속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사진을 찍고 B에게 편지를 썼다. 다른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던 B는 메아리처럼 사진으로 답신을 보내왔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잎, 나른한 빈 강의실, 시험 기간 쌓여 가는 레쓰비 캔 같은, 소소하다 못해 짐짓 하찮아 보이는 그런 사진들이었다. 그런데도 그게 좋았다. 내가 볼 수 없는 B의 평범한 오늘이, 그 애의 눈에 담긴 세상이 거기에 있었다. 그 사진들을 기숙사 책상 앞에 붙여놓고 오래 들여다보는 날들이 많았다.


현생이 바빠지면서 B와의 교류가 뜸해지고, 카메라를 만지는 날이 서서히 줄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필름을 현상하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고, 가격도 비쌌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다니면서도 카메라를 들지 않게 되었다. 풍경은 눈으로 볼 때 가장 아름다웠고, 순간의 추억은 누군가가 핸드폰으로 담아주었다. 그즈음의 나는 여전히 사진을 좋아했지만, 그보다도 눈과 마음에 담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여행지에서 팔짱만 끼고 있는 내게 사진 안 찍어? 하고 물으면 빈기카(*빈이의 기억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웃었다. 파리로 삶의 터전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빈기카 하나만을 달랑 들고 파리에 왔다.


귀국을 앞둔 지금은 그게 가장 아쉽다.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둘 걸, 후회가 많다. 근사한 파리의 풍경이나 예쁜 “인생 샷”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곳에서 보낸 한 시절을 언제든 꺼내 뒤적이고 싶어서다. 지긋지긋했던 이십 대를 빠져나와, 서른으로 건너가는 과정을 이곳에서 겪었다. 오 년 전의 내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거리니, 동료들이 찍은 내 사진들이 꽤 있었다. 여전히 나는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줄곧 외로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혼자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고, 그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나를, 나의 어떤 순간을 바라봐주었다. 그 사실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사진이 좋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담긴 사진이 보고 싶다. 핸드폰 사진첩에 없는, 지난 오 년 간의 내 모습이 알고 싶다. 그건 아마 사람들만이 기억할 것이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 내 곁에 머물렀다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 말이다. 파리라는 풍경 속에서 한 시절의 내가 어떻게 웃었는지, 어떤 표정으로 말하고, 어떤 눈빛으로 세상을 보았는지, 그들은 보았고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어떤 사람들의 한 시절을 지켜보았고,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사진처럼. 이제 내게 사진이란 그냥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앨범인 셈이다.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제라도 만나 마음껏 뒤적이고 싶다. 내가 포착한 당신의 어떤 순간을, 당신이 간직하는 한 시절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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