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관계의 방정식을 풉니다

조응하는 관계를 위히여

by 사과나무

프랑스어에서는 연인 간에 I love you so much 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I love you (사랑한다) + so much (대단히) = 대단히 사랑한다’의 수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Je t’aime (사랑한다)라는 문장에 beaucoup (대단히)라는 부사를 붙이는 순간, 친구나 썸 관계에서나 쓰는 ‘좋아한다’ 는 의미로 깊이가 반감되어 버린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더하면 커지는 것이 내가 배운 산수가 아니었던가? 수식어를 갖다붙이면 내 마음이 더 크게 전달될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때때로 나는 인간관계에서 사랑한다(Je t’aime)는 말에 대단히(beaucoup)를 붙이며 더 큰 사랑을 표현하려는 류의 실수를 저지른다. ‘사랑한다’는 말로 충분한데, 굳이 뭔가를 더 하려다가 관계를 망쳐버리는 것이다. 상대가 좋아서 퍼부은 칭찬이 부담을 주거나, 한없이 베푼 호의가 상대에겐 갚아야 할 부채가 되거나, 배려의 행동이 오히려 서운함을 주거나, 더 친해지려고 덧붙인 말이 무례함으로 전달되거나, 주제넘지 않으려고 한 행동이 나를 방관자로 만드는, 그런 식이다.


억울했다. 난 잘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관계는 늘 1+1=2와 같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변수를 찾아가는 방정식 같았다. 한 사람의 방정식을 푸는 데 필요한 특정값을 맞추기위해 나는 사투했다. 하지만 천차만별의 기질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분석해 딱 맞는 답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관계를 확장하는 일이 크게 줄었다. 특정 변수가 이미 증명된 오랜 친구들만 찾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의 오답노트는 쓰고 싶지 않아서.


내 관계의 오답노트 속에는 실패한 관계가 그득그득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최근까지도 오답노트를 썼다. 몇 년 전 나는 회사 동료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일방적인 호의를 베푼 적이 있다. 실상 그에게 나는 안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회사 사람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 그를 친구로 착각했고, 멋대로 마음을 쏟으며 우정을 기대했던 것 같다. 결국 그가 퇴사한 후, 그에게 나는 더 연락할 필요도 없는 전 직장 동료가 되었고, 우정을 바랐던 것이 내내 상처가 되었다.


이 망할 오답노트 속에는 내가 참 많이 좋아했던 연인도 있다. 나는 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유니콘이라느니, 다른 남자와 다르다느니, 칭찬을 쏟아붓곤 했다.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건 내맘대로 그에게 특별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아마도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 기준에 맞춰 부단히 자신을 검열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런 나를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방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가장 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수식어를 아껴두는 법에 대해 생각한다. 프랑스어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Je t’aime 만으로 충분한 것처럼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식어를 아낀다기 보다는 그만큼의 여백을 남겨두려고 한다. 상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숨쉴 틈 없이 내 감정으로만 꽉 찬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관계란 결국 상대와 조응하는 행위인데 말이다.


어떤 사람을 어떤 변수를 넣어 풀어야 우리의 방정식이 아름답게 풀릴까를 고민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무언가를 더 넣기보다 조금 덜 채우는 연습을 해보고 싶다. 상대를 위해 남겨두는 여백, 그 여백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마음 같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 결국 관계란 두 사람이 완성하는 수식이기에. 어쩌면 좋은 관계란 서로를 향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한 걸음씩 물러나 여백을 존중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말로 다하지 않은 마음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61. 언니가 대화방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