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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Jul 29. 2018

#05. 규칙과의 전쟁

 "정말로 그렇게 되어 버리지" 않으려면,

규칙에게 감정이 있다면 분명 그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성실하게 규칙을 준수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계획과 질서를 고집하는 인간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계획을 세웠다가도 언제든 뒤집어버리는 기분파이고 주변은 언제나 무질서하며 '객관적 필요'보다는 '즉각적 욕구'에 충실해 피로와 질병 따위를 곧잘 얻곤 한다. 그런 내가 지금껏 규칙의 최애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나는 눈에 띄거나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이 극도로 싫다. 나의 이상은 어떤 집단에서든지 너무 우월하지도, 너무 열등하지도 않은 평균보다 약간의 상위에서 모난 데 없이 자연스럽게 유영하는 것이다. 그냥 그냥 괜찮은 애, 조용히 평균 이상은 하는 애 같은 느낌.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존재감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 포인트라면 포인트겠다.

 

그 이상을 실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유순하고 성실하게 집단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그것이 규칙이든, 문화든, 분위기이든 같은 방향으로 조용히 흐르는 것. 내향형 인간의 완성에 도달했던 급식 시절 학교에서 습득한 생존 방식이었다. 입사 이후 그 방식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수습기간 3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잘릴 거라 믿었던 첫 직장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있는 나를 보면. 급식이었을 때는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고, 야자를 빼먹고 도망가거나, 교복을 줄이고 염색을 하는 '일탈'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교무실로 끌려가는 애들을 보며 왜 굳이 '눈에 띄는 짓'을 해서 인생을 귀찮고 피곤하게 만들까, 생각했던 것 같다. 학업적 성취와 더불어 성실한 순응의 대가로 인정과 편애라는 달콤한 수혜를 누렸다는 사실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별천지에 맨몸으로 떨어졌고 시골 고등학교보다 만 배쯤 확장된 대학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이며 새로운 눈이 뜨였다. 폭넓은 교양과 다양성에 처음으로 노출되었던 이십 대는 말 그대로 '개안'의 시기였는데 안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심이 있으면 주변이 있다는 것, 주류와 평균의 세계가 항상 옳은 것도, 절대 진리도 아니라는 것, 현상의 뒷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나 다수의 그늘 속에 존재하는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늘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입체였고 그 속에서 '나'에 대한 정의는 매 순간 새롭게 쓰였다. 쓰고 지우고 쌓고 무너뜨리며 나의 세계가 차곡차곡 구축되던 시절이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프랑스 생활은 진로를 결정하게 된 터닝포인트이기도 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던 우주가 와르르 해체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언어, 인종, 역사, 문화, 사회 완벽하게 새로운 맥락에 놓이게 되면 내가 누구인지 생경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이가 '어린' '아시아인' (그것도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한국) '여성'인 나, 정부의 체류 허가를 얻어야 하는 '외국인'인 나, 유학 경비를 아끼고자 교외(banlieu)로 이사하는 나, 가톨릭 자선 단체의 무료 수업을 듣는 나. 따뜻한 호박색 불빛이 환하게 켜진 창 큰 집들을 지나쳐 5평 남짓한 내 작은 아파트로 돌아오는 밤이면 이 사회에서 나의 계층은 어디쯤일까 생각하곤 했다.  


나 개인이 부서지고 성장하고 확장되는 동안에도 나는 항상 성실한 사람이었다. 학칙은 물론이고 출석과 학점에도 성실했고 몇 번의 입학시험에 합격했으며 쉽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졸업했다. 성실한 내가 규칙 앞에서 혼란을 겪기 시작한 건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엄격한 계급 체계 위에서 생존을 볼모로 만들어진 이 규칙이 나의 인권이나 존엄, 가치관과 충돌할 때 내 안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곤 한다. 눈에 띄고 싶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 나와 의심과 질문을 멈추지 않는 '개안'한 내가 충돌하며 일으키는 화학 작용이다. 조직의 효율과 안정된 운영을 위해 존재하는 규칙이 개인에게 늘 합리적일 수는 없다지만, 규칙 자체가 잘못되거나 규칙을 이유로 ("지시"를 "불이행"할 시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식의 협박조의) 인권을 말살하고 폭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상사가 있을 때는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 진다.


구차하고 거지 같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하나는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욕구 이면에 '생존'이 인질처럼 붙들려 있다는 점이다. 그 두려움이 규칙과의 불화를 어거지로 삼키게 한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직장 생활이란 규칙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먹고살기 위해 몸을 구겨 넣는 일. 많은 사람들이 미생이니 혐생이니 하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할 때 나도 덩달아 쓰게 웃는다. 생존도 생존이지만,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규칙의 최애로 살았던 '성실한 나 자신'이다. 나를 그냥 그냥 괜찮은 애로 만들어 주는, 가끔은 달콤한 대가를 안겨주기도 하는 순응에 길들여져서 규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다 알면서도 착실하려는 내가 있다. 잘못된 규칙에 대한 분노에 앞서 그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동료가 거슬리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진다.


옆자리 P는 내게 자주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상기해 준다. 모의 교도소를 만들어 피실험자들에게 죄수와 간수라는 역할과 그에 맞는 규칙을 주었는데, 거기에 지나치게 몰입된 나머지 실험을 조기 종료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상황과 환경이 인간 심리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다. 이곳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낸 P는 내게 직장에서의 역할과 규칙을 경계하라고, 여기는 우주가 아니라고, 너무 몰두하면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린다"라고 경고한다. 터져 나오는 규칙과의 불화를 꾹꾹 누르며 온순하고 근면하게 흐르는 내가 P의 눈에도 염려되는 모양이다. 사무실에 조용히 앉아 오늘도 나는 질문을 한다. 저 인격 없는 규칙으로부터 어떻게 나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어느 지점까지 순응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no라고 말해야 할까. "사무실 도비"나 "1월에 태어난 몸종 일월이"로 자칭하며 낄낄대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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