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오늘은 행복학교에 입학한 학생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부 갈등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 분은 남편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고민이었습니다.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의견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목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서로 회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대화가 줄어요. 아이 앞에서 정답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습니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때는 티비만 보고 어색한 침묵만 흐릅니다. 앞으로 아이가 독립하고 둘만 남을 시간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숨이 막혀요. 지금부터라도 남편과 편안하게 속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괜히 노력했다가 더 멀어질까 봐 시도할 용기가 잘 생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과 대화를 잘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얘기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왜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할까’
‘남편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누겠다’라는 생각부터가 허무맹랑합니다. 지금 일상 대화도 잘 안 되면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려고 하니까 대화가 더 안 되는 거예요. 결혼도 하고 싶다고 억지로 할 수 있나요? 사람을 만나서 대화해보고 친해지면 친구가 되고, 그러다 애정이 싹트면 애인이 되고, 그러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으면 결혼을 하는 거죠. 그런데 결혼할 상대를 구하려는 의도로 선을 보니까 인연을 지속하기 어렵고, 애인을 구하려는 의도로 사람을 만나니까 오히려 친구도 되기 어려운 거예요.
남편과 둘이 있을 때 티비 앞에서 맹숭맹숭 있는 게 현실이라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커피 한 잔 같이 마시면서 ‘재밌나?’ 이렇게 물어보는 정도입니다.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당장 속 깊은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에요. 이 세상에 속 깊은 얘기까지 하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요? 질문자가 욕심이 너무 많아요. 질문자도 한 성깔 하지 않아요?”
“해요.”
“한 성깔 하는데 어떻게 갈등이 안 생기겠어요. 내가 한 성깔 한다면 갈등을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깔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성깔이 있어야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든지, 사업을 하면 돈을 벌든지 할 거 아니에요. 성깔이 없으면 사업은 잘 못 해요.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본인이 하는 사업을 딸이 돕는데, 딸이 일은 잘 하지만 성깔이 있대요. 그래서 같이 일하는데 피곤하고 동생하고 갈등이 많다는 거예요. 한 성깔 하니까 일도 잘하고 동생하고 갈등도 생길 거 아니에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은 대체로 어떤 일을 추진하는 힘이 약한 편입니다.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부드럽기 어려워요. 그런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문자가 그런 남자를 선택할 때는 제법 돈을 잘 벌겠다든지 출세를 하겠다든지 좋은 점이 있어서 선택을 했을 거잖아요. 내가 볼 때 좀 능력이 있다는 사람은 같이 살 때 반드시 갈등이 생깁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편이에요. 그런 사람과 살려면 화목한 가정에 대한 기대는 포기해야 합니다. 반대로 능력은 없어도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저 동의를 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서 살아보세요. 늘 자기가 결정을 안 하고 나한테 물어보니까 답답합니다. ‘네가 좀 알아서 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마음은 이렇게 이중적입니다. 내가 말할 때는 상대가 잘 들어주기를 원하고, 내가 귀찮을 때는 상대가 알아서 하기를 원해요. 그런데 한 사람이 그런 만능의 존재가 아니에요. 한 성깔 하는 남편하고 속 깊은 얘기를 하겠다고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남편이 무슨 말을 하거나 주장을 할 때, 그냥 ‘오케이’, ‘예스’ 이렇게 해보는 연습을 한 번 해 봐요.
‘네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그렇게 한 번 해봅시다’
남편이 무슨 얘기를 하든지 이렇게 받아줘 보는 거예요. 남편 말이 옳아서 받아주는 게 아니라, 일단 얘기를 받아줘 보는 거예요.
해보면 잘 안 될 거예요. 남편 말대로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라도 일단 ‘예’라고 해 보세요. 이것만 해도 관계가 좋아질 거예요. 남편이 ‘오늘 놀러 가자’ 하면, ‘오늘 다른 일이 있는데’ 이러지 말고 ‘그래’ 해보는 겁니다. 일단 가겠다고 먼저 얘기를 해놓고, 조금 있다가 ‘아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가기 어렵겠는데요’ 이렇게 하는 연습을 해 봐요.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지 말고, 일단 받아주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남편이 ‘소를 지붕 위에 올려라’ 하면 일단 소를 몰고 지붕 밑에 가보는 거예요. 그런 후 남편에게 ‘소를 올리려고 했는데 안 올라갑니다. 어떡하면 될까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말 떨어지자마자 ‘에이, 그거 안 돼요’ 이렇게 말이 나가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네. 해보죠’ 이렇게 말하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비굴하게 복종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일단 상대의 말을 한 번 받아줘 본다는 거예요.
‘예. 일리가 있네요. 한 번 해보죠’
일단 해보고 안 되면, ‘이거 잘 안 되는데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나는 처음부터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하라 해서 했다’ 이렇게 책임을 묻거나 따지지 말고, 일단 해보는 겁니다. 해봤더니 안 되면, ‘어, 잘 안 되네. 그다음에 어떻게 하면 되느냐’ 이렇게만 접근해도 대화가 저절로 됩니다.
질문자가 지금 해야 할 연습은 ‘일단 남편의 말을 받아주기’입니다. 정토회 행자들이 처음 연습하는 명심문은 이거예요.
‘예 하고 합니다.’
얼핏 보면 노예가 되라는 건가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일단 받아주고 거부는 한참 있다가 하는 거예요. 출가해서 사는 자식에게 부모님이 집에 좀 오라고 하면, 일단 ‘네 어머니. 알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다음에 어머니가 전화 와서 ‘왜 안 오니?’ 그러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일이 있어서 못 가게 됐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안 돼요! 못 가요!’ 이러지 말고, 먼저 한 번 ‘예’ 해보는 겁니다. 이걸 연습해보면 남편과 대화가 좀 될 거예요. 속 깊은 이야기에 욕심 내지 말고 그 정도로도 만족을 해야 돼요. 그럼 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은 우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로 가면 됩니다.
기지도 못 하면 먼저 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기어 다닐 수 있으면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일어서 지면 걷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걷다 보면 뛰는 연습을 하고, 뛰다 보면 나는 연습을 해야 해요. 이렇게 순서를 밟아야지 처음부터 날려고 욕심을 내면 포기하게 됩니다. 질문자가 ‘시도하고 싶어도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욕심을 내니까 당연히 안 되죠. 어떻게 속 깊은 얘기를 해요. 속 깊은 얘기를 하려면 열 단계는 거쳐야 하는데 과정은 다 건너뛰고 결과만 얻으려고 하니 안 되죠. 일단 남편의 이야기를 받아주고 들어주는 연습을 해보세요. 속 깊은 얘기는 안 해도 괜찮아요. 신뢰가 쌓이면 저절로 속 깊은 얘기가 나옵니다. ‘남편과 속 깊은 얘기를 하는 관계를 만들겠다’라는 생각이 허무맹랑합니다. 서로 신뢰가 쌓이면 저절로 자기 속 얘기를 하게 돼요.
신뢰는 내가 믿을 때 생깁니다. 상대가 믿을만한 행동을 해야 신뢰가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내가 믿으면 신은 계신 거예요. 자꾸 상대에게 나를 믿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를 신뢰하는 마음을 내고, 내가 먼저 받아주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먼저 내 마음이 밝아져요.
보통 세상은 나한테 좋은 일이 상대에게는 손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공부는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에요. 나한테만 좋고 상대에게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산을 보고 ‘산이 좋다’라고 하면 산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바다를 보고 ‘바다가 좋다’ 하면 바다가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꽃을 보고 ‘꽃이 예쁘다’ 하면 꽃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내가 좋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해요. 아무 손해날 일도 없어요. 그렇게 하면 내가 좋아요. 그런데 그 사람한테도 좋아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먼저 받아주기’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자가 한 성깔 해서 잘 될까 모르겠어요 (웃음). 연습이 잘 되면 옛날 표현으로 관상이 바뀌고 사주가 바뀌고 운명이 바뀌는 일이 일어납니다.”
“아닙니다. 잘 받아들이겠습니다.”
“상대가 옳다고 인정하라거나 내가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상대가 말하면 따지지 말고 일단 받아줘 봅니다. 받아주고 나서 자기가 우려되는 것은 나중에 얘기해주세요.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얘기한다. 항상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일단 받아주는 연습을 해 봅니다.
‘알겠습니다’
‘네’
일단 말부터 먼저 ‘예’ 하는 연습을 해봅니다. 못 해줄 때는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미안합니다’라고 하면 돼요. 그럼 나중에 ‘네는 말만 한다’ 이렇게 비판을 받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말도 못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돈 안 드는 말로도 못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네, 제가 말이라도 잘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웃으면서 넘기면 돼요. 그래서 질문자는 말부터 먼저 ‘예’ 하는 연습을 해봅니다. 뭐든지 ‘알겠습니다’, ‘해 보죠’ 이렇게 한 번 받아주는 연습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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