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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륜 Feb 14. 2022

맨날 삐지는 남편, 헤어지기도 그렇고 어떡하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결혼해서 살다보면 이런 저런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잘 삐지는 남편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며 남은 여생을 남편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퇴직하고 지방으로 간 지 3년이 됐습니다. 일 좀 해보겠다고 내려가서 뜻대로 되지 않자 담보대출도 받았어요. 저는 그 사실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자기 생각은 항상 옳다고 합니다. 남편은 현재 영농과 일을 조금씩 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대로 일하며 대출을 받고 있습니다. 남편은 어쩌다 한 번씩 만나면 삐져있고 아들과 갈등을 하곤 합니다. 저는 삐져있는 남편이 감당이 안 됩니다. 지금 이대로 떨어져서 살아도 괜찮은데 남편과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같이 사는 게 제일 좋은 마무리지요.(웃음) 늙어서 새삼스럽게 다른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또 구했다 하더라도 다시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 남편은 30년 동안 맞췄는데도 안 맞는데, 처음 만난 사람은 얼마나 맞추기 어렵겠어요? 남편한테는 문제가 있어서 안 맞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좀 덜 맞더라도 살던 사람과 좀 더 맞추며 사는 게 더 쉽지 않을까요? 결혼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으니까 살던 사람하고 사는 게 좀 더 쉽지 않을까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남편이 술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때리거나 바람을 피웠는데도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 사람이 ‘내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애들이 다 컸으니까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라고 하면, 저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편이에요. 결혼은 사회적인 계약이지 운명이 아니니까 헤어져도 좋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정년퇴직을 했으면 남편이 할 일은 다 했고,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같이 산 거 보면 그렇게 같이 못 살 남자는 아닌 것 같아요. 옛날 같으면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놀았을 텐데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남편이 돈을 더 벌어보려고 했겠죠. 그런데 뜻대로 잘 안 되는 건 남편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좋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게 정상입니다. 거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서 사업이 80프로는 잘 안되고 20프로 정도만 잘 돼요. 이럴 때는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도발이 잘 안 받습니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기도하면 소원이 바로 성취돼요. 시험에 열 명이 응시해서 여덟 명이 합격할 때는 기도를 하면 바로 소원성취가 됩니다. 요즘처럼 시험에 열 명이 응시해서 한두 명이 합격할 때는 부처님, 하나님한테 아무리 빌어도 안 되는 사람이 더 많아요. 남편 사업도 지금 경제 상황에서는 잘 안 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진 거예요.


돈을 좀 벌어야 애들 앞에서도 목에 힘주고 마누라 앞에서도 큰소리 칠 텐데 사업이 잘 안 되니까 집에 오면 말발이 안서잖아요. 자존심이 있으니까 고개를 숙일 수는 없고요. 아내가 그런 마음을 알아서 위로도 해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면 좋겠는데 안 그러니까 속이 상하겠죠. 이럴 때 늦바람이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평생을 같이 살아도 아내는 자기 살기 바빠서 나를 신경 써주지 않으니까요. 질문자는 남편과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남편 없이도 내가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얘기잖아요. 남편이 그런 마음을 못 느낄까요? 집에 오랜만에 와 봐도 아내가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고 너 없어도 잘 산다고 하고 살고 있잖아요. 남편이 그렇다고 돈을 팍 주면서 큰 소리 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삐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누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주면 마음이 훅 가버립니다. 사람 마음이 참 나약해요. 힘들 때 누가 옆에서 등 두드려주고 조금만 위로해줘도 마음이 확 가버려요. 출가한 스님도 한창 신심이 나서 정진할 때는 여자가 껴안아도 꼼짝 안 해요. 그런데 병이 나서 뒷방에 있는데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거나, 아무리 수행해도 진전이 없어서 낙담하고 있을 때는 누가 눈빛만 약간 줘도 마음이 그냥 싹 갑니다. 십 년, 이십 년 출가 생활을 하다가도 이런 마음이 들어 벗어던지고 가거든요.


‘세상은 정이 있는데 절에는 너무 정이 없다. 사람이 옆에서 아프든지 죽든지 살든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렇게 깨달으면 뭐하냐."


질문자가 이대로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남편도 '아이고, 까짓것 뭐 내가 같이 살 필요 있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지금 바람이 났는지도 몰라요. (웃음) 질문자도 남편이 바람나면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특별히 나쁜 행동을 해서 사람 마음이 떠나는 게 아닙니다. 힘들 때 누가 옆에서 약간만 보듬어줘도 마음이 가버려요. 그래도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지 못하는 건 이혼하고 따로 살림을 차리고 하면 자식이나 부모 보기도 그렇고 친구 보기도 그렇고 복잡하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중생활을 하는 겁니다. 윤리적으로 보면 나쁘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본인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마음이 이렇다 보니 죄의식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 삐지는 걸 나쁘게 보지 말고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 남편이 직장 다닐 땐 그래도 돈이라도 번다고 큰소리치고 살았는데 이제 직장도 그만두고 사업도 잘 안되니까 기가 죽었구나. 내가 그 마음을 위로해주지 않으니 좀 삐쳤구나.'


다 큰 아들 하나 뒀다 치는 거예요. 남편이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반겨주고 등도 두드려주고 안아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해보세요.


‘그동안 당신 고생 많이 했어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요. 힘들면 정리하고 집으로 와요’


이렇게 하면 비록 남편과 계속 떨어져 살더라도 관계가 좋고, 다시 같이 살더라도 화목하게 살 수 있어요. 어려울 때 도와주면 정이 새로 납니다. 혹시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갔다 하더라도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훨씬 높아져요. 질문자가 남편을 따뜻하게 대해주면 아이들이 보기에도 엄마가 훌륭해 보입니다. 만약 이혼하게 되더라도 애들이 누구랑 사냐로 많이 갈등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유리해요. 현재 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유리하고, 돌아오면 같이 지내기도 유리합니다. 지금처럼 삐져 있는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금방 갈등이 생기기 때문에 떨어져 사는 것보다 더 못할 수 있어요. 지금 남편 마음을 풀어주면 돌아오면 돌아와서 좋고. 따로 살아도 좋아요. 만약 헤어지더라도 자기에게 유리합니다. 질문자는 무슨 일이 생겨도 떳떳하고 남편은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이래도 유리하고 저래도 유리한 길을 가세요. 아이가 시험 떨어져서 기죽어 있을 때 위로해 주듯이 남편을 위로해주는 거예요. 나한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해보면 어떨까요? 남편이 자기 퇴직금 받아서 사업 한 번 해 본 건데 그 정도면 잘하는 거죠. 집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가져가지 않는 것만 해도 훌륭한 사람이에요. 자식들 다 키울 때까지 직장 생활하고 퇴직해서 조금 더 벌어 보려고 하다가 잘 안 된 거잖아요. 자기가 받은 퇴직금으로 도전해본 거니까 그걸 부족하다고 볼 순 없어요. 남편은 문제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문제가 없는 사람도 내 마음에 안 들면 같이 살기 어려워요. 그래도 제가 말한 대로 한번 노력을 해보고 어떤 결론을 내면 질문자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런데 옛날부터 잘 삐지는 성격이었어요. 삐질 때마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뭐 때문에 삐지는 게 어디 있어요? 삐지는 성격이니까 삐진 거죠.


'우리 남편은 원래 별 일 아닌 걸로 잘 삐지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고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남편이 매일 술 먹으면 '매일 술 먹는구나.' 하고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화를 불끈불끈 잘 내든, 잘 삐지든 '아, 성격이 저렇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돼요. 왜 삐졌는지 그 원인을 하나하나 분석하지 마세요. 안 삐지던 사람이 삐지면 원인을 분석해야 하지만, 늘 잘 삐지는 사람은 분석할 필요가 없어요. 성질이라고 인정하고, 삐지는데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대신 다독거려 줘 보세요.”


“남편이 밖에서는 굉장히 인자하고 인정이 많아서 주변 사람들이 참 좋아해요. 그런데 집에만 오면 반대거든요. 어떤 것이 진짜 성격일까 궁금할 때가 많아요.”


“삐지는 게 진짜 성격이죠. 밖에 가서 자기 성질대로 다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잖아요. 밖에서는 긴장을 해서 행동하고, 집에 오면 그 긴장이 풀어지니까 자기 성질이 나오는 거예요.


'저게 밖에 가서는 좋은 소리 듣고 집에 와서는 삐지네.'


부인 입장에서 섭섭할 수는 있지만. 집에서도 삐지고 밖에서도 삐지는 것보다는 밖에서라도 안 삐져서 남한테라도 좋은 소리 듣는 게 낫지 않아요? 집에 와서도 화내고 밖에 가서도 화내는 거 보다야 밖에서는 화를 안내는 게 낫잖아요.


'세상 사람도 욕하는 남자하고 사는 것보다 내가 좀 힘들어도 세상 사람은 좋아하니 다행이다. 그래도 밖에 나가서는 좀 참고 자기 관리라도 하니까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야죠.”


“네.” (웃음)


“집에서 삐지듯이 밖에서도 잘 삐져서 세상 사람도 싫어하는 그런 남자하고 같이 사는 게 나아요, 그래도 밖에서라도 좋은 소리 듣는 남자 하고 사는 게 나아요?”


“스님 말씀 듣고 보니 후자가 낫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안 그렇죠? 남편이 평소에 내 짐은 하나도 안 들어주고, 차문도 안 열어주잖아요. 그런데 친구 부인한테는 차 문도 열어주고 짐도 들어줘서 친구 부인이 ‘네 남편 진짜 신사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속으로 기분이 나쁩니다. ‘이 남자는 남의 여자한테만 잘해준다’ 하고 섭섭해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밖에서라도 잘해서 좋은 소리를 듣는 게 낫습니다. 꼭 친구한테서 ‘네 남편은 진짜 예의가 없더라’ 이런 소리를 듣는 게 낫겠어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죠.”


“밖에 가서 잘하듯이 집에 와서도 잘하라는 요구인데, 그건 질문자의 욕심이에요.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다 잘하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집에서 잘 못하더라도 밖에 가서라도 잘하니 다행이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해요.”


“남편은 본인이 항상 옳다고 생각해요. 이런 태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남편의 생각이 항상 옳다고 인정해 주면 되죠. 그게 무슨 큰 문제예요?” (웃음)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참 많았거든요.”


“당신이 옳다고 해줘도 자기 고집대로 할 것이고, 당신이 틀렸다고 해도 자기 고집대로 할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한 번 비교해 봅시다. 당신이 옳다고 해줘서 남편이 자기 고집대로 하다가 잘 안 되었을 때는 일이 제대로 안 되어서 기분이 나쁜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당신이 틀렸다고 해서 결국 남편의 일이 잘 안 되었을 때는, 첫째, 남편과 싸워서 기분이 나쁘게 되고, 둘째, 일도 제대로 안 되어서 또 기분이 나쁘게 됩니다. 어느 게 더 낫습니까? ‘거봐라. 너 내 말 안 들으니 잘 안됐지?’ 이걸 질문자가 증명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남편은 항상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것도 인정을 해주라는 거예요.


‘그래, 당신은 항상 옳아. 나한테 물을 게 뭐 있어. 어차피 당신 마음대로 할 거 그냥 해요. 내가 밀어줄게.’


이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게 누구한테 좋다고요?”


“저한테요.”


“그래요. 그렇게 하는 게 나한테 좋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현명한 사람이에요. 자기 고집을 끝까지 하는 사람이 고집이 세요? 고집 센 사람을 끝까지 말리려고 하는 사람이 고집이 세요? 전자는 고집이 센 사람이고, 후자는 고집이 센 사람을 꺾으려는 사람이니 고집이 더 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훨씬 고집이 센 사람이에요. 남 고집 센 것만 알고 자기 고집 센 것은 모르니 큰일입니다. 교회에 다녀요?”


“아니요.”


“교회에 좀 다니세요. 질문자는 교회에 가서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에 대들보는 못 본다’ 하는 성경 구절을 좀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내일부터 교회에 좀 나가세요.” (웃음)


“제가 행복학교를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됐는데 어쩌면 이 문제 때문에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문제를 푸는 게 현명할지 생각하면서 마음공부를 시작했는데, 법륜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내가 이기적으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남편을 잘 보듬어서 노후에도 같이 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사람 되어가는 소리를 하네요. (웃음) 행복학교를 다니게 된 게 남편 덕택이니 그것 하나만 해도 남편은 고마운 사람이에요.


자기 고집대로만 살아온 사람이 더 고집 센 남편을 만나서 고생하다가 행복학교 문을 두드리게 됐다는 것만 해도 남편의 공로가 아주 큽니다. 남편을 볼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당신 때문에 제가 행복학교와 인연이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운 사람이 집에 왔으니까 밥 한 끼 따뜻하게 해 주고, 등 좀 두드려주고, 위로 좀 해주면 어때요? 고마운 마음이 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고마운 마음이 전혀 없고 불만만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겠다고 아무리 결심을 해도 꼬락서니를 딱 보면 안 되는 거예요. 남편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식당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손님에게 친절하려고 해도 잘 안 돼요. 손님을 정말로 친절하게 대하려면 이런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저분 중에 누군가는 내 옷을 만든 사람이고, 누군가는 내 신발을 만든 사람이고, 누군가는 내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다.'


의식주가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다 만들어졌잖아요. 내가 이렇게 따뜻하게 먹고살 수 있도록 해 준 은인들이 식당에 오셨다고 생각한다면 돈을 받지 않고도 음식을 줘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돈은 받더라도 '따뜻하게 한 끼 드시고 가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저절로 친절해져요. 친절해야 된다는 예절교육을 아무리 배워봐야 손님이 조금만 불평하면 얼굴 표정이 바뀌어 버립니다. 그러나 고맙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으면 손님이 뭐라 해도 '이 정도는 고마운 사람이니까 해줄 수 있다' 하고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 줄 수 있어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내어 보면 좋겠어요. 다른 건 모르겠고 행복학교에 인연을 맺게 해 준 것만 해도 엄청나게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남편이 뭐라고 하면 ‘무조건 당신 말이 옳습니다’ 하고 연습해 보세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그 자리에서는 일절 반대를 하면 안 됩니다. 나중에 반대하더라도 일단은 곧바로 당신이 옳다고 인정해주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런 건 일본 사람들한테 배워야 해요. 일본 사람들은 딱 부르면 바로 ‘하이!’ 이러잖아요. 한국 사람은 무언가를 부탁하면 먼저 ‘아니!’라고 거절부터 해놓고 나중에는 해줍니다. 말이 떨어지기 전에 거절부터 먼저 하는데, 나중에 안 해 주는 게 아니고 또 해 줘요.


상담을 해보면 자기 딸이 부모 말을 안 듣는다고 저한테 온갖 욕을 해놓고는 또 금방 ‘스님, 우리 딸이 좋은 데 시집가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봐요. 저는 그런 질문을 들으면 기가 찹니다. 자기 엄마도 싫다는 처녀를 어떻게 좋은 곳으로 시집을 보냅니까? (웃음)


딸에 대해 욕을 실컷 해놓고는 딸이 시집갈 걱정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런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일본 사람을 좀 배워야 됩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면 ‘네, 당신 말이 옳습니다’ 하고 나서 좀 있다가 텀을 둔 후 ‘여보, 그런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해보라는 거예요. 일단 그걸 먼저 해봐요. 잘 삐치거나 고집이 센 사람은 처음에 그 마음을 바로 받아줘야 성질이 팍 나오지 않습니다. 연습을 한 번 해봐요.”


“네, 알겠습니다.”


“30년을 같이 살아놓고 남편의 성질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것은 질문자가 게으른 사람이든지 머리가 모자란 사람이든지 둘 중에 하나예요. 며칠만 같이 지내보면 ‘저 사람은 성질이 어떻구나’ 하고 파악한 후 싹싹 맞춰줄 수 있어야죠.”


“네, 제가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질문자는 불평만 하지 연구를 안 해요. 많은 사람들이 ‘스님은 결혼도 안 해보고 애도 안 키워보고 어떻게 저런 걸 다 아느냐’ 하고 묻습니다. 심지어 몰래 해본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러분과 저의 차이점은 연구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일이든 ‘왜 저렇지?’, ‘무엇 때문에 그렇지?’, ‘이래서 이런 현상이 생겼구나!’ 이렇게 연구를 해야 해요.


비굴하게 상대의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 나사를 조일 때 끼워보고 안 맞으면 성질부터 내지 않잖아요. 나사를 빼서 다른 나사를 끼워보고, 안 맞으면 또 다른 나사를 끼워 보듯이 인생도 그렇게 살면 된다는 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자취생활을 했는데, 옆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늘 연탄불을 자주 꺼뜨렸어요. 매일 연탄 한 장만 불붙여 달라고 찾아오곤 했거든요. 연탄불을 오래 피워보면 불이 얼마나 갈지 예상을 해서 연탄불이 꺼질 때가 되면 미리 번개탄을 넣는다든지 조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연구를 안 해요.



밥을 할 때도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면, 미리 쌀을 물에 불린다든지, 뜸을 들인다든지, 묵은쌀인지 햅쌀인지에 따라 물의 양을 조절한다든지, 이렇게 연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절에서도 행자님들이 밥 하는 모습을 보면, 늘 밥을 태웠다가 삼층밥을 했다가 죽밥을 했다가 하는 사람이 있고, 처음엔 잘 안 되지만 세네 번 하고 나면 밥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 뭘 하라고요?”


“연구요.”


“지금까지 내가 해온 방식으로만 하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오늘부터 생각을 딱 바꿔 보세요.


예전에는 남편의 말을 바로 받아쳤다면, 오늘부터는 ‘예’ 하고 해 봅니다. 그렇게 해봐도 결과가 안 좋으면 거꾸로 다시 받아치기도 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거예요. 결혼생활이란 본래 나와 맞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아니고 서로 맞춰서 사는 겁니다. 30년을 같이 살아놓고 아직도 남편에게 못 맞추고 있다는 것은 질문자의 연구 부족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저는 늘 맞는 말만 해요.” (웃음)


“저는 제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남편보다 고집이 더 센 것 같아요. 앞으로는 남편을 큰아들처럼 품어서 노후를 편안하게 살 수 있게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오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네, 큰 아들 하나 잘 키워놓으면 노후가 편안해져요. (웃음) 남의 여자 남편인 내 아들보다는 내 남자이면서 내 아들인 남편이 조금만 잘 이해해주면 훨씬 나한테 잘합니다. 내가 낳아서 키운 내 아들이 잘할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 뒤에 다른 여자가 붙어있기 때문에 쉽지 않아요.


질문자가 어리석은 겁니다. 내 남자에게는 무관심하고 남의 남자한테 맨날 신경 쓰다 나중에 뒷발로 차여서 원수가 됩니다. 좀 늙었더라도 내 남자를 챙기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결혼을 안 해봤지만 옆에서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훤히 보이는데 그걸 못 보거든요.


질문자는 자기가 잘한다는 생각에 빠져있고, 마지막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자기가 못한다는 생각에 빠져있어요. 둘이 반반 섞어서 다시 나눌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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