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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륜 Aug 21. 2018

“진심으로 공감하는 척 하는 내 자신이 싫어요.”


질문자 “저는 옛날부터 영화, 시, 노래만 들어도 잘 울컥하여 사람들이 저를 굉장히 감수성 넘치는 사람이라 평가했고, 저 또한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위로도 곧잘 해줬어요. 하지만 제가 말만 번지르르했지, 타인의 마음까지 공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누군가 울면 ‘이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해 줘야 마음에 들어 할까?’ 했지,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쁜 일도 그냥 축하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축하해줬지, 진심으로 기뻐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며칠 전 넘어진 할머니를 부축해드린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냥 가서 도와드렸을 뿐 다리를 절뚝거리며 가시는 모습엔 그다지 안타깝진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타인의 상황에도 진심 공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법륜스님 “너무 욕심이 많아요.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극히 정상이에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래도 누가 고민을 얘기하면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뵐 때면 연민을 느끼는 사람도 드물게 있구요.”


“그런 사람도 드물게 있지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그렇게 안 생겼는데 어떻게 그렇게 돼요. 질문자가 백인을 보면 ‘나도 얼굴이 하얬으면 좋겠다’, 흑인을 보면 ‘나도 얼굴이 검었으면 좋겠다’, 여자를 보면 ‘나도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건 될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럼 저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모두 웃음)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어요.


“이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얼굴이 하얘도 검어도 남자라도 여자라도 문제가 없듯이 지금 질문자의 상태는 사람으로서 아무 결격사유가 없어요. 할머니가 넘어진 걸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질문자는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드렸잖아요. 하지만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돼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꼭 ‘좋다’고 할 수도 없고요. 그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죽을 지경일 테니까요. 남편이란 사람이 계속 남의 일만 돕는다면 집안이 어떻게 되겠어요? (모두 웃음)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게 꼭 좋다 나쁘다 말할 수도 없어요. 또 반대로, 누가 넘어지거나 구걸해도 돕기는커녕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걸 보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10명 중에 1명이라면 관심 없는 사람도 10명 중에 1명이에요. 그 사람이 특별한 걸까요?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렇게 생겼을 뿐이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쪽 끝도 저쪽 끝도 아니고, 중간이에요. 보통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스님의 말씀은 정말 잘 알겠는데, 그것 때문에 제가 자괴감이 들고 힘든데...”


“그게 욕심이라는 거예요. ‘내가 얼굴이 하얘지고 싶은데 얼굴이 너무 검어서 자괴감이 든다’ 고 말할 순 있어요. 그런데 그 자괴감이라는 게 얼굴이 검기 때문에 온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얼굴이 하얘지고 싶다는 것도 정상이고, 하얗게 되지 않는 것도 현실인데, 그 둘이 부딪치면 자괴감이라는 게 생겨요. 그럼 자괴감이 안 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얘지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수술해서 하얗게 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고, ‘하얘지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면 자괴감이 없어져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막 가슴이 아파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버리면 질문자는 자괴감이 안 생겨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는 거로...” (모두 웃음)


“질문자가 볼 때 간호사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를 보면 막 가슴이 아프고, 어떻게든 살려주려고 애달아할 것 같아요? 아니면 그냥 할 일을 할 것 같아요? 물론 그분들 중에는 환자를 마치 자기 가족처럼 치료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은 10에 1명도 안돼요. 반대로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도 10에 1명이에요. 나머지 다수는 어떤 때는 잘하다가 어떤 때는 또 지쳐서 귀찮아하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질문자 같은 사람이 다수라는 말이에요. 그러니 문제가 전혀 없어요.”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해 보세요.”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걸 너무 좋아해서 알고도 모른척해야 하는 일들까지 잘 안다는 듯이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공부하면서 별로 힘들지도 않았는데 만나는 사람들한테 ‘죽겠다, 죽겠다’ 하는 제가 약간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착한 척, 아는 척, 공부 열심히 하는 척하는 걸 그때그때 알아채면 안 그럴 텐데 꼭 일주일이나 한 달 뒤에 깨달으니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지극히 정상이에요. (모두 웃음) 아무 문제가 없어요. 누구나 다 그래요. (청중들에게) 칭찬해 주면 좋지요?”


“(청중들)예.”


“오늘 제가 법문이 끝난 뒤에 ‘스님, 법문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고민도 해결이 됐습니다.’ 하고 박수를 우레와 같이 쳐주면 저도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청중들) 좋아요.”


“좋긴 한데, 그래도 좀 사람이 겸손해야 하는데, (모두 웃음) 제가 막 계속 아는 척만 해대니까요.”


“괜찮아요. 젊은이가 그 정도 잘난 척하는 건 괜찮아요. 큰 문제 아녜요. 늙어서까지 그러면 좀 주책이지만요.”

“늙어서 안 그럴 걸, 지금 안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요?”(모두 웃음)


“남한테 잘 보여서 뭐할 건데요?”


“뭐한 다기 보다 당장에 입이 먼저 막 나불대니까요.” (모두 웃음)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 삼고 있지 않나요? 


“그게 사람마다 갖고 있는 성질이라는 거예요. 성질은 고치기가 어려워요. 질문자가 어릴 때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아서 부모님한테 잘 보이려 애썼던 상처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 걸 ‘사랑고파병’이라고 해요. 그래서 칭찬받고 싶고, 내가 뭘 하면 남이 알아주길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병이 없게 하려면 부모는 아이가 3살 때까지는 극진히 사랑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랑고파 병이 덜 하지요. 그런데 어려서 엄마한테 자랑하거나 어리광 피우다 내쳐진 기억이 있는 아이들은 마음이 안 채워져서 커서도 이 고파병에 시달려요.


질문자는 지금 사랑고파병이 있는데, 그게 반복되다보면 여자한테까지 사랑을 구걸하게 돼요. 다행이 여자도 호감을 주면 연애하게 되지만, 그 여자도 사랑고파병이 있어 껄떡거리게 되면 서로 안 채워져 헤어지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나기를 반복하는 거예요. 대개는 다 그런 병이 있는데, 질문자가 자꾸 그런 얘기를 하니까 질문자가 조금 지나치다고 볼 순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치료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에요. 지극히 보통사람이고 정상이에요. 


그런데 두 가지 질문을 듣고 보니, 질문자는 ‘안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강해요. 그러다 보니까 정상인임에도 자꾸 비정상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니 ‘안 그러고 싶다거나 잘못됐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냥 ‘아, 내가 좀 사랑고파병이 있구나. 내가 남을 좀 의식하는구나.’ 그러고 마세요. 그래야 자괴감이 안 들어요.


뿐만 아니라 질문자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용서도 못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더 훌륭한 사람이고 싶기 때문에요. 질문자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아요. 키도 인물도 괜찮고, 사랑고파병도 자비심도 그 정도면 됐어요. (모두 웃음) 넘어진 할머니를 진심이든 아니든 부축해 준 걸로 됐어요. 요즘 젊은이 중에 노인이 차를 타면 일어나기 싫지만 남 눈치 봐서 일어나주는 것만도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대중들) 괜찮아요.”


“그게 진심인가 아닌가 이런 건 따지지 마세요.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려고 하네요.”


“네. 감사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만 버리면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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