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즉문즉설은 질문자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한 대화입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장으로 살기 힘들어요.
질문자 “저는 4인 가정의 가장입니다. 저 혼자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요, 지금 중학생 딸, 초등학생 딸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과거 가장의 역할은 가족의 의식주만 해결하면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장들이 진짜 피가 마릅니다. 스님께서 ‘이 정도라면 가장의 역할은 다 했다고 볼 수 있다’는 선을 좀 제시해 주십시오.”(모두 웃음)
법륜스님 “예. 지금 말씀하신대로 옛날에는 먹고, 입고, 자는 생존의 문제만 해결해 주면 가장의 역할이 끝났다고 봤습니다.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왔지요. 그런데 세상이 변했습니다.
이제 여성들도 대부분 직장을 다니고 남자들이 ‘돈 벌어야 한다’는 책임이 줄어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적으로 가장의 책임’이던 것이 ‘반반 부담’이 되었고, 대신에 남자들도 가사분담, 즉 설거지를 한다든지, 애를 돌본다든지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외부적인 일만 하고, 내부적인 일은 네가 해라.’ 이렇게 전통적인 직업관에 의해서 업무가 분장이 됐던 게 이제 시대가 변해서 그 벽이 허물어졌으니까 집안일도 나눠서 해야 돼요. 그런데 다 자기 입장에서 유리한대로 생각하다보니까 여자는 남자한테 가장으로 돈 버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살림도 분담해 줘라. 다른 남자들 좀 봐라.’ 이렇게 추가적인 역할도 요구하고, 남자는 여자한테 ‘살림은 원래 여자들이 하던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추가로 직장생활도 할 것을 요구해요. 이래서 서로 어렵지요. 그런데 다 자기한테 유리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불리한 건 문제제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질문자의 부인은 직장생활을 안 한다는 거지요? 그러면 질문자는 가정살림을 좀 덜 도와줘도 돼요.(모두 웃음) 부인이 ‘왜 당신은 방청소 안 해 주느냐? 왜 설거지 안 해 주느냐?’고 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바쁘다’고 하세요.(모두 웃음) ‘그건 당신이 할 일이잖아!’ 이러면 안 되고 ‘내가 바깥 일 하느라 바빠서 그렇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세요.
그러다가도 은퇴를 딱 하면 바로 앞치마 입고 부엌에 들어가야 돼요.(모두 웃음) 아침에 일찍 부엌에 들어가서 밥 해 놓고 부인을 깨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말해야 돼요. ‘지난 30년간 밥 한다고 수고 많이 했지? 내가 그동안은 직장 다닌다고 바빠서 못 도와줬는데, 이제는 직장에 안 나가니까 부엌살림은 내가 할게.’ 이런 태도를 보이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직장 다니고 돈 버는 건 액수로 표시가 나잖아요. 그런데 가정 살림은 아무리 해도 표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너 집에서 뭐 했냐?’는 소리를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정말 표시도 안 나는 중노동을 하는데도 ‘집에서 네가 하는 게 뭐냐? 네가 돈을 버냐?’ 하는 이런 말이 부인들이 제일 상처 입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은퇴 후에 부엌살림을 하면서 ‘정말이지 나보다도 네가 더 힘들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은퇴 후에 새로 신혼을 맞을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 애가 생기는 바람에 신혼시절은 1년도 못 가져봤잖아요?(모두 웃음) 그래서 애를 빨리 가지면 안돼요. 애가 생기면 여자는 딱 엄마가 되어서 애한테 집중하게 되니까 남편은 완전히 왕따가 되거든요. 그래서 어떤 남자는 쫀쫀하게 애한테 질투하고 그러잖아요. 잃어버린 신혼시절을 되찾는다는 마음으로 은퇴 후에 딱 부엌에 들어가세요.
질문자가 지금이라도 직장생활도 하고 부엌에도 들어가 주고 그러면 좋겠지만 질문자가 그렇게까지 하기 너무 힘들다면 안 해도 돼요. 그런데 ‘그건 네 일이잖아!’ 그러면 싸우게 되니까 ‘미안해, 여보. 내가 바빠서 그래.’ 하면서 빌면서 안 하고 살면 돼요. 대신 은퇴하면 바로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들어가세요.”
“예.”
“꼭 ‘나는 가장이니까 돈을 벌어야 된다!’ 하는 건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한 30년 전의 일인데요, 그때는 주로 남자가 직장을 다니고 여자는 직장을 안 다니던 시대였는데, 부부들을 그룹 지어서 부부상담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청년들을 데리고 정토회를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정토회에 아직 부부문제에 대한 상담이 별로 없을 때였어요. 그런데 각해보살님이 계시던 부산 성불사에 부부들이 많아서 그분들을 데리고 수련을 했는데, 제가 거사들만 모아놓고 ‘아내가 당신한테 뭘 제일 원하는 것 같으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1번이 돈이었어요. 이구동성으로 ‘우리 마누라는 돈을 원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그게 부담이지요.
그런데 보살들만 모아놓고 ‘남편이 당신한테 뭘 해 줬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럼 1번이 ‘돈’이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어요. ‘어떻게 무시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냐?’고 물었더니 ‘애들 보는 앞에서 네가 뭘 아느냐고 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애들한테는 왕이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애들 앞에서 부인한테 ‘네가 뭘 아느냐?’고 한다는 거예요. 그게 부인들이 가장 모멸감을 느끼는 말이라는 거예요. 숫제 혼자 있을 때 그러면 괜찮을 텐데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자기 혼자 있을 때 사장이 야단치는 건 괜찮은데 부하직원이 많은 데서 야단치면 좀 모멸감을 느껴요, 안 느껴요?”
“(대중들) 느껴요.”
“그러니까 애들 앞에서 부인에게 ‘네가 뭘 아느냐?’고 하니까 엄청난 모멸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인한테 뭐라고 할 때는 애들 있는 데서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따로 불러서 ‘여보, 이런 게 좀 문제다’라고 얘기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여러 가지 조사를 해 보면 남자들은 ‘우리 마누라는 나한테 이것만 원한다. 그래서 이것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부인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소기업 하다가 망하거나 중간에 은퇴하거나 이런 남자들은 경제적인 문제가 너무 부담되니까 바로 집으로 못 들어가고 어디로 갑니까? 빈 가방 들고 출근하는 척하고 서울역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아이들까지 다 불러 모아서 ‘현재 아빠가 직장을 잃게 되었다’, 아니면 ‘월급이 줄게 되었다. 그래서 생활비를 이렇게 줄여서 써야 되겠다’며 가족회의를 통해 의논을 해야 돼요.
항상 집안 식구들을 ‘멤버’라고 생각해야지, ‘내가 혼자서 다 책임 진다.’ 이러면 본인도 힘들고, 아이들도 그런 아빠를 원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같이 나눴을 때 아이들이 성장을 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아이들이 충격을 받는 면도 있지만 아이들이 성장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족은 역할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돈만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면 부인과 같이 못 삽니다. 그렇게 살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이사 가는 날 조심할 일이 생기는 거예요.(모두 웃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돈만 벌어주면 된다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도 벌고, 다른 일도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예, 사실은 저희 집에서 제가 설거지하면 옆에서 집사람은 청소기를 돌리고 그럽니다. 제가 얼마 전에 출근하면서 집사람한테 ‘나는 출근한다. 집에서 수고 좀 해 줘.’ 그랬거든요. 그때부터 집사람 얼굴이 더 펴진 것 같더라고요.”(모두 웃음)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여러 거사님들, 괜히 일하러 간다고 뻣뻣하게 굴면 더 욕먹습니다.(모두 웃음) 그냥 ‘여보, 당신도 집에서 수고 좀 하게. 나도 나가서 일하고 올게.’ 그러면 집에서 더 편안해질 겁니다. 고맙습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보세요. 정토회 다니니까 굉장히 변하잖아요.(모두 웃음) 여러분들이 절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사회적인, 민주적인 의식으로 변하고, 회사에 가서도 권위주의에서 평등주의로 변하고,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평등하게 대하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자세도 바뀌고, 이러면 우리가 앞서 가게 되는 거예요. 괜히 목에 힘주고 똥고집 피우고 그러지 말고 좀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노후에 공덕이 있어요. 목에 너무 힘주면 늙어서 천시 받습니다.
여러분들, ‘시어머니는 모시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아버지 모시기보다는 쉬워요. 시어머니는 집에 있으면 설거지라도 거들고, 방청소라도 하고, 급할 때는 밥도 하고 시장도 좀 봐주는 등 일손을 덜어주잖아요. 그런데 시아버지는 밥상 따로 차려줘야지, 치워줘야지, 방에도 이불을 깔아줘야지, 그러니까 집에 있으면 불편한 거예요. 시아버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거예요. 시아버지의 바로 그런 태도, 밖에서 돈 좀 번다고 목에 힘주고 그러다가 몸이 굳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가정에서도 천대받는 거예요. 남자 수명이 짧아서 일찍 죽어서 그나마 다행이지요.(모두 웃음) 여러분들이 ‘마누라가 어쩌네, 저쩌네.’ 해도 마누라가 있으니까 지금 대우를 받지, 마누라 없이 홀아비로 있어 봐요. 대우받을까요? 마누라 같은 사람 없습니다. 나이 들면 진짜 마누라 고마운 줄 알아야 돼요. 요즘 신세대 자식들 하는 거 보세요. 어림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무조건 쫓아내거나 관심 끊고 부부가 같이 지내고, 은퇴 후에도 부부가 같이 놀아야지, 애들한테 너무 신경 쓰는 건 아무 도움이 안돼요. 여러분들이 좋으나 싫으나 ‘내 짝’이 제일이에요. 그러니까 다들 ‘내 짝’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사는 게 좋습니다. 그게 싫으면 절에 오는 게 제일이에요.” (모두 웃음)
‘나만 따라와? 우리 함께 가!!’
식구들은 인생의 멤버, 함께 평등하게 역할을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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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18.6.19. 스님의 하루
http://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79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