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즉문즉설은 질문자의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한 대화입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늦가을이 지나면 곧 겨울이 옵니다. 봄은 싹이 트고, 여름은 자라고, 가을은 결실을 맺고, 겨울은 침묵하는 계절입니다. 겉으로 보면 겨울은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없어도 되는 한 철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겨울은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 한해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성과는 없지만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 즉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다음 해가 작년보다 못하거나, 작년과 같거나, 작년보다 나을 수 있어요. 긴 겨울을 났기에 봄의 새싹은 힘 있게 솟아나는 것입니다.
겨울을 단순히 쉬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아야 합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무엇인가? 지난 해 어떤 좋은 점들을 계승해서 내년에 더 발전시킬 것인가? 지난 한 해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것을 내년에 어떻게 시정해서 개선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올해를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유배되거나 감옥에서 수십 년을 보낸 사람들 중 성인과 같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손발이 묶인 감옥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밖에서 수십 년을 열심히 뛴 사람보다도 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요? 갇혀 있는 내내 원망하고 몸부림치고 괴로워한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폐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승화시킨 사람들, 즉 충분한 자기성찰을 하며 훗날을 대비해 많은 것을 준비해놓은 사람은 밖에서 열심히 뛴 사람보다 더 큰 일을 합니다.
수행도 그렇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은거하며 내면을 충분히 성찰하고 준비가 된 사람들이 교화를 해도 크게 합니다. 작은 재주를 가지고 열심히 해도 그것은 마치 작은 바가지로 아무리 많이 퍼도 큰물을 퍼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긴 시간 침묵 속에서 자기를 성찰하여 큰 바가지로 만드는 것이 짧은 시간 푸더라도 많은 물을 풀 수 있어요.
인류 문명이 시작되고 발달한 지역을 보면 시련이 없는 지역이 없습니다. 사시장천 초목이 무성하고 꽃이 피는 열대지역에 문명의 꽃이 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년 내내 겨울이거나 겨울이 아주 긴 동토 지역처럼 환경이 너무 열악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의 발상지는 고대에는 초원지역이나 건조지역처럼 물이 귀하기 때문에 ‘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과제가 있는 지역이었어요. 철기문명이 일어난 뒤에는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 즉 겨울이 있는 지역에서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겨울이라는 시련이 있어야 우리가 충분한 준비를 갖출 수 있고, 겨울이라는 고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점검받을 수 있습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타성에 젖은 한 해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올 한 해도 소홀함이 없는 마무리를 해서 한 달여 남은 시간들을 알차게 보낼 것인가?’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년은 물론 우리 인생과 세상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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