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조금씩 내려놓기
맏이로 태어나 띠게 된 색채일까. 내가 띠고 있는 색채 중 강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어느샌가 '책임감'이라 답하게 되었다. 나에게 책임감이란 '왠지 이래야만 할 것 같은 것'을 의미한다. 왠지 딸이라면, 왠지 언니라면, 왠지 선생님이라면, 왠지 부장이라면, 왠지 친구라면, 왠지 여자친구라면 등등 그 역할에 걸맞은 이상적인 모습을 멋지게 그려놓고는 그에 내 몸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크고 작은 배역들이 적지 않아 나는 여러 모습에 나를 맞추느라 바쁘고 고단하다.
책임감의 사전적 정의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 어떤 자리든 간에 맡아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소홀히 했을 때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나 수습이 따르기 마련인데, 책임이나 수습은 개인의 범주에서 끝날 때도 있지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이에 대해 예민한 사람, 그러니까 자신이 져야 할 책임 및 수습과 그것이 미칠 영향에 대해 느끼고 분석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책임감의 사전적 정의에서 '중히'에 무게가 중히 실린다. 그 무게를 짊어져 내느라 애쓰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벽히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일지 모른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기란 어렵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어려운 일을 내게 바라게 되고, 다해내지 못하면 실망하고, 질책해 왔다.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역할을 다해내고자 애쓰는 편이었기에 주변인들은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었다. 나는 또 그 시선에 갇혀 나를 이상적인 역할에 가두고, 나의 몸을 그 모양에 맞게 맞추며 괴로워했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고단하다. 특히, 유독 책임감을 갖추어야 하는 자리에 앉을 때면 나는 스스로를 더욱 옥죄곤 했다.
나의 욕심, 주변인의 기대, 사회가 만들어 낸 틀과 기준 등은 자양분이 되어 내 안에 '책임감'이라는 존재를 무럭무럭 키웠다. 뭐든 적당하면 좋았으련만 그것은 몸집이 점점 커져서 때때로 나를 휘청이게 하기도 했고, 힘이 세진 탓에 내 의지와 달리 나를 움직이게 만들기도 했다. 책임감에 조종당한 나는 종종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잊고, 완벽하고 멋진 말과 행동을 내밀며 그것에 취해 그 모습이 진짜 나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게 내 마음일 때도 있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솔직한 내 마음을 뒤로한 채 나의 배역에 맞는 말과 행동을 앞세우는 이유는 결국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그렇다. 수많은 어른들을 보며 책임을 진다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워질 수 있는지 또는 한 없이 가벼워질 수 있음을 배웠기에, 이왕이면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은 어른이기 이전에, 주어진 여러 배역이 있기 전에 '내'가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아야 한다. 역할을 다 해내느라 나를 조금씩 잊어버리고 지우면 결국 남는 건 '내'가 없는 너덜너덜한 껍데기뿐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