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작정하고 떠나다

- 안녕, 나의 끄라비

by 낮은돌담

끄라비타운으로 숙소를 옮겼다.

우리가 끄라비에 와서 둘째날에 묵었던 숙소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곳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불만을 참아내던 그곳이다.

그런데 머물며 알게 되었다.

이곳은 우리에게 딱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곳으로 숙소를 정했다고 했을 때 정말 좋아했다!

익숙하게 체크인을 하고 익숙하고 우리의 빨래를 맡겼던 빨래방을 찾아가 반갑게 인사하고 빨래도 맡겼다.

점심을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뷔페형 샤브샤브집을 발견하고는 머뭇거린다.

1인당 10,000원가량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첫째는 다른 곳을 가자고 하고 둘째는 먹고 싶다고 한다.

그래, 마지막 날이니 먹자!

특이하게 1인 1 냄비를 준비해 준다. 각자 원하는 육수를 고르면 회전초밥처럼 야채, 고기 등이 올라가 있는 접시가 돌아다닌다.

원하는 것을 가져와 개인 냄비에 넣어 먹으면 된다.

신기한데 맛있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배불리 먹었다.

이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집이 있다. 카페라기보다는 테이크아웃 전문으로 골목 귀퉁이에 자그마하게 있는 곳이다.

거기서 내가 늘 먹었던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야시장에 가기로 했는데 야시장을 갔더니 오늘은 안 하나보다.

그럼, 다시 숙소 앞 시장으로 가서 먹고 싶은 과일을 샀다.

아이들은 그 사이에 과일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둘째는 클라이밍 하는 날, 어느 한국 사람이 나눠준 작은 사과 같은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한다.

셋째는 어제 숙소에서 20여분을 걸어갔던 과일가게에서 손님이 권해주신 용안을 먹고 싶다고 한다.

첫째는 처음에는 작은 파인애플이 뭔지 몰라 먹지 않았지만 먹어보니 정말 달고 맛났던 미니파인애플을 먹고 싶다고 한다.


오랜 시간, 걷고 이야기 나누고 지내지 않았으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많이도 걸었고, 많이도 지루해했고, 많이도 웃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날을 맞이했다.


다음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이곳, 끄라비에 작별을 고한다.

안녕, 나의 끄라비.


그렇게 우리는 시부모님, 조카, 남편, 그리고 우리 네 명이 만나 8명이 되었다.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더하고자 노력한 날들이었다.

시부모님은 더위를 힘들어하셔서 대부분 실내에서 보내야 했고, 이건 내가 생각한 끝맺음이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신랑이 말한다.

"우리, 한번 더 오자."


지금, 제주에 온 지 열흘가량이 지났다.

지금도 문득 끄라비 어느 곳의 시간이 잔상처럼 떠오른다.

그렇게 길게 다녀오고 나면 자꾸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았는데 그 마음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간다.

나는 아마도 다시 떠날 듯하다.

물론, 지금의 현재를 또 충분히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도 경제적인 부분도 다시 준비하고 만들어서 훌쩍 떠날 것이다.


제주의 하늘, 제주의 바다는 참으로 푸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창 밖에는 새 한 마리가 내려앉아 열매를 먹고 있는 자연을 마주한다.


끄라비와 제주가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내가 끄라비에서 내내 좋아했던 풍경, 자연들이 제주에 비해 훨씬 더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다만, 낯선 공간이 좋았던 것 같다.

낯선 공간, 공기, 언어들 속에서 나는 일상의 순간들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익숙함을 찾았고 나를 믿었다.


첫째와 둘째는 제주에 오자마자 바로 회의를 참여하며 또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셋째는 밀린 방학숙제를 하며 얼른 개학하면 좋겠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일상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그렇지만, 다시 낯선 어딘가를 향하는 나의 걸음 또한 사랑한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

룸피니공원에서 악어같은 왕도마뱀을 보고 있는 어머님, 조카, 둘째, 남편, 셋째, 아버님. 그리고 이 장면을 담고 있는 나와 내 곁의 첫째. 방콕에서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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