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후면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가서 그날 저녁에 오는 남편, 남편의 부모님, 둘째와 나이가 같은 조카를 만나 8명의 대이동의 여행을 하여야 한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제안이라기보다는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동의를 구하는 그때에는 흔쾌히 그러자는 답변이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흔쾌했던 마음이 사라져 갔다.
우선은 재촉하고 불안이 높은 시부모님의 성향을 맞추는 것에 대한 부담이었다. 아래-위층으로 함께 살고는 있으나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시부모님의 성향은 알지만 때때로 이루어지는 가족모임에서는 내가 가급적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꼬박 일주일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시부모님의 연세와 더운 날씨, 나의 무계획에 가까운 여행방식은 시부모님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일정을 짜보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기 싫은 숙제를 마냥 미루는 아이의 마음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방콕에서의 일주일은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고 한 달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며 힘들었던 마음을 풀어놓고 싶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남편에게 온전히 어리광 부리며 내 마음대로, 그리고 저녁엔 맥주 한 잔 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매일 저녁 보드게임을 하는데 첫째가 내게 말한다.
"엄마가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그렇다. 남편은 아이들과 신나게 노는 편이었다면 나는 이따금 참여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놀이를 대하는 자세와 에너지에 있어서 아이들은 늘 아빠가 그리웠고 그 일주일 동안은 마음껏 아빠와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그 시간 안에 나의 행복은 또 커져나갈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 나의 기대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방콕에서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의 불편함이 더 커져가는 것이었다.
우선 결정하고 나면 나의 책임인 것이다.
나는 상황이야 어떠하든 생애 첫 해외여행을 결정하신 시부모님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 이면에는 그로 인해 발생될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기꺼이 함께 하자고 아주 가볍게 결정해 버린 것 또한 나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내 안에 드는 이러한 마음들은 내가 잘 정리해야 하는 것이고 다가올 상황에 대해서도 내가 잘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이런 복잡 미묘한 마음은 이미 남편과 통화하며 이야기 나누었고 남편은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하며 나를 다독이고,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달래려 애쓸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3일이 남기는 했으나 하루는 크라비타운으로 옮기는 것으로, 하루는 방콕으로 가는 것으로 보낼 것이기에 사실, 오늘 하루가 남은 하루의 전부이다.
어제 이야기 나눈 것은 라일레이로 들어가서 둘째는 하루종일 클라이밍을 하고 첫째와 셋째는 바닷가에서 놀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저녁, 첫째가 다시 생리를 하게 된 것이다. 아이는 그 와중에 그래도 라군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속상해했다.
그래도 함께 라일레이를 들어가자고 했는데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할 것이 뻔했다.
도저히 하루종일 있을만하지는 않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나와 둘째는 라일레이로, 첫째와 셋째는 숙소에서 둘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은 오롯한 둘째의 날이다.
우리를 도와줄 선생님은 아주 멋진 청년의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클라이밍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 이상, 하루종일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하다 보니 둘째만 하루종일이고 오전, 오후로 그룹원이 바뀌었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말했을 때 선생님은 당연하다고 답변하였고, 하루종일 그와 함께 하며 그의 누이가 한국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곳은 나도 가봤던 곳이었고 그 도시 또한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오후 어느 시간에는 본인의 조카라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너무 예쁜 아이였다. 조카의 사진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나도 저런 삼촌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이는 끝없이 암벽을 오르고 나는 끝없이 그런 아이를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았다.
아이는 암벽을 오르느라 지치고 나는 위를 바라보느라 지쳤다.
아이는 암벽을 오르며 즐거웠고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했다.
그리고 다른 그룹원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그룹원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도 가볍게 나눌 수 있었다.
유일한 청소년이었던 아이는 사람들의 응원을 많이 받았다.
처음엔 잘해서 받았고, 오후에는 힘이 빠져버린 아이가 해내지 못할 때도 그저 응원해 주는 이들이었다.
반나절만 할 때는 몰랐는데, 처음부터 암벽에 줄이 설치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선생님이 맨 몸으로 암벽을 타며 줄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의 모습은 빛났다.
그 어떠한 장비도 없이, 심지어 슬리퍼를 신고서 휙휙 가서 척척.
하루종일 함께 하니, 또 새로웠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국에서 온 청년 두 명을 만났다. 장비를 직접 다 가지고 와서 암벽등반을 하는데 우리가 제주도에서 왔다고 인사하고서 아이가 잠깐 다닌 실내클라이밍장 이름을 대니 그곳을 알았다. 한국에서도 전국의 실내클라이밍장을 다니냐는 나의 질문에 클라이밍이 너무 좋아서 라일레이까지 왔으면 한국에서의 클라이밍장은 가능한 거의 다 가볼 정도라고 한다.
또, 중년의 한 그룹을 만났다. 그들 또한 장비를 다 가지고 와서 클라이밍을 하고 있었다. 사진 찍기 좋은 암벽도 안내해 주는 중년의 그룹은 우리에게 과일도 나눠주며 그들의 일정을 즐겼다.
오전에는 잘하는 그룹원들이 조금 잘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오후에는 조금 못하는 그룹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선생님은 현장의 다른 선생님에게 아이를 부탁했다.
그분은 암벽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데 도인과 같은 분위기였다.
마치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면 그 암벽 아래서 잘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암벽등반을 하기 전 줄을 묶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줄을 아이에게 건넨다. 내가 웃으며 아직 못한다고 하니 줄을 매어주는데 무심한 듯 하지만 단단하게 해 주신다.
아이가 그 선생님과 함께 한 벽은 아주 어려운 암벽이었다.
입구에서조차 올라가기가 쉽지 않아 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였다.(아이가 웃으며 입구컷이라고 한다.)
우리의 선생님은 보면서 아이가 힘들어하면 어느 곳을 밟으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몸으로 당겨주는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줄로 지탱만 해줄 뿐 어떠한 조언이 없다.
아이는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채 홀로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꽤 시간이 흘렀고 진전은 없다.
다른 바위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순간 손과 발은 바위를 잡아내지 못하고 아이는 그대로 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흔들거린다. 그러면 다시 자신의 힘으로 바위 쪽으로 향하여 버텨야 한다.
그래도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계속해서 실패다.
우리의 도인 같은 선생님은 우선은 쉬었다가 하는 것을 권했고 아이도 그러겠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다시 만날 시간을 정한 후 아이와 점심을 먹는데, 그렇게 힘을 썼는데도 아이는 영 먹지를 못한다.
나 또한, 너무 덥고 지쳐 음식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우리는 식당에서 음식을 남기고 나오지 않는 편이다. 가능한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을 주문하고 입에 조금 맞지 않더라도 그릇을 비우는 편이었다.
아이는 음식이 맛없는 것도 아닌데 먹기 힘들어하였고 곤란해한다.
아이에게 오늘은 어쩔 수 없음을 충분히 공감하며 음식을 남겨두고 나왔다.
오늘 이곳에 오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고 클라이밍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잠깐 나와 어느 벤치에 앉아 잠을 잤다.
아이는 피곤하지만 웃으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한다.
오후에도 계속하고 싶은지 묻자 그러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잠깐 잠을 잤다.
혹여 그만하고 싶다고 하면 그럴 생각이었다.
나는 아이가 실패를 마주하고, 포기할 줄 알며, 자신의 선택이 때때로 잘못되었었음을 스스로 느끼기를 바란다.
잘못된 선택이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 순간 포기하였다면 우리는 큰 금액의 절반을 버리는 셈이고 아이는 그 부분에 대해 미안해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힘든 마음, 선택했기에 끝까지 해야 하지만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는 속상함,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기에 충분히 이해받을 수 있음을..
오후에 하면서 아이는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직전에 포기한 코스를 다시 도전했지만 아이는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입구컷을 당했다.(첫 도전에서는 옆에서 보던 삼촌들이 아이를 올려주어서 입구는 넘어갈 수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두 번은 온전히 실패하였다.
그 시간들 안에서 아이는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온 힘을 쏟아부은 것이다.
지쳐하며 앉아있는 아이에게 어느 삼촌은 지나가며 주먹을 맞부딪히며 응원해 주었고 아이는 부끄러운 듯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