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작정하고 떠나다

- 오늘은 너의 뜻대로

by 낮은돌담

마치 여행을 끝나고 집에서 잤을 때처럼 잘 잤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다시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지만, 여행 중에는 나의 방에 눕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두번째로 찾은 숙소는 마치 여행을 마치고 집에 가서 나의 침대에 누운 것 같다.

배정받은 방은 달랐지만, 익숙한 구조들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첫째는 라일레이의 자연암벽을 등반하여 라군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둘째는 그 라군은 물이 깊지 않아 재미가 없다며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셋째는 무엇이든 좋다고 한다.


둘째는 유난히도 깊은 물을 좋아한다. 깊은 물을 향해 뛰어드는 것도 좋아하고 깊은 물을 향해 유영하는 것도 좋아한다.

본인이 본 라군은 물의 깊이가 당연히 낮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지만, 라군에서 다이빙을 했다는 블로거도 있다.

그리고 내일은 둘째가 원하는 암벽등반을 하기로 한 날이다. 아이는 하루종일 암벽등반을 하고 첫째와 셋째는 바다에서 놀며 나는 왔다 갔다 하기로 한 것이다.

라군의 깊이가 아닌 하루를 온전히 둘째의 욕구에 맞추는 날이므로 오늘은 첫째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난다.

오늘은 너의 뜻대로 하자!!


그렇게 우리는 라일레이로 들어갔다.

라군을 가고 암벽등반을 할 테니 우리의 짐도 물놀이가 아닌 암벽등반과 약간의 물놀이에 맞추어서 짐을 꾸렸다.

두번째 오르는 암벽은 조금 더 쉽게 느껴졌다.

사실, 절벽과 같은 곳을 줄 하나에 의지하여 가야 한다는 것이 보기에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어느 곳은 구멍 같은 곳으로 몸을 넣어 그 아래로 향해야 하는데 내 키가 165cm정도인데 다리를 아무리 길게 뻗어도 내 발이 닿는 곳이 없어 매달린 채로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힘겹게 내려가도 다시 내 무거운 몸을 내 힘으로 끌어올려 그곳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멈추게 된다.

그런데 해 보면 안다.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줄에 의지 하지 않고 바위에 의지하여 내려가는 것을 택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만진 바위는 반지르르하여 내가 어디를 만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운동신경이 둔한 나도 할 수 있으니 사실 그것이 보는 것만큼 어려운 곳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는다.

나 또한, 처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어 온몸에 힘을 가득 주어 올라갔다.

가뜩이나 무거운 내 몸은 내가 힘을 주니 더 무거워져 나의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두번째로 해보니 알겠다.

이 것은 할 만한 일이라는 것을.

물론 세네 명은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포기하기도 했다.


나는 무언가와 비교하여 상대의 상황을 위로하거나 견딜만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싫다.

어릴 적 수학 성적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수학이 유난히도 어렵게 나온 시험이 있었다.

나는 대략 30점 정도는 떨어져서 속상했었다.

수학을 어려워하던 나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성적이 떨어졌다며 속상해했고, 나는 시험이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며 나도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내게 수학점수를 물어보았고 나의 대답을 들은 친구는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의 성적에 비하면 내 성적은 높은 편이었는데 그것을 떨어졌다고 말하는 내게 화를 낸 것이다.

성적의 하락폭은 내가 훨씬 높았다. 단순히 성적이 더 낮아져서 속상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사실, 나는 늘 수학에서는 높은 성적을 유지하였고 그 친구는 늘 낮은 성적을 유지하였다.

우리는 서로 친했으니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화를 내니 나는 낮아진 내 성적을 위로받을 길이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우리는 같은 일을 겪더라도 저마다 개인의 경험 안에 그 일이 주는 심리적 상처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깊이를 재단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는 것이다.

그곳만 넘어서면 멋진 절경이 펼쳐지지만, 넘어설만한지 아닌지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그곳까지 온 것이 그들의 최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두 번째로 오는 나는 그래도 처음보다는 할만했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펼쳐지는 풍경이 더 경이로웠다.

아이들은 벌써 도착하여 라군에 몸을 던졌다.


물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셋째와 나는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앉아서 간식도 먹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라일레이에 들어가기 위해 이용하였던 선착장은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그 숙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그 숙소에 머물며 좋아했던 식당이 바로 선착장 입구 근처라는 것!

그래서 점심은 가져간 간식으로 대충 넘기고 라일레이를 나가서 그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이들이 나오고 우리는 다시 암벽을 넘어가기로 했다.

둘째와 셋째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런데 첫째는 라군에 들어갔다 나온 후로 몸이 날카롭게 베인 듯 아프다는 호소를 하였다.

그러더니 그 베인 듯한 감각이 오로지 발에 집중되어진 듯 걷는 것을 힘들한다.

가져간 비치타월로 발도 닦고, 신발을 닦아도 조금만 걷다가도 아프다며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발도, 신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심지어 발에는 조그마한 상처도 없다.

아마, 물벼룩에 물린 듯하다.

그리고 라군의 바닥에도 암벽의 돌과 같이 모난 돌들이 많아서 발바닥의 통증을 참아가며 논 것 같다.

그 모든 감각이 더 예민해져서 힘들어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이가 몸을 더 닦을 수 있도록 기다리고 신발도 살피고 발도 살핀다.

아이도 안다.

신발도, 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했다.

아마도 물벼룩으로 따가웠던 것들이 너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아이는 이해는 하지만, 베이는 듯 느껴지는 기분 나쁜 고통을 토로한다.

그럼 다시 천천히 이야기하고 장난도 치고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려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절벽 앞에서 누군가가 힘들어한다.

줄에 매달려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길은 하나이니 그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분을 응원하게 되고, 또 언제면 우리는 갈 수 있나 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보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 둔감해지더니 참을만해졌다.

그분은 돌아가는 선택을 하셨고, 우리도 돌아가는 중이었으니 그분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생겼다.

그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아오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고 있었다.

우리의 단골 식당이었던 곳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다며 맛난 저녁을 먹었다.

지금도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누군가가 암벽에서 자신이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는 시간 덕에 알 수 없었던 기분 나쁜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라군,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로워 마음의 위안을 주었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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