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지만, 작정하고 떠나다

- 익숙한 나의 끄라비

by 낮은돌담

오늘은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이렇게 숙소를 옮길 때마다 늘 새로웠다. 새로 갈 숙소는 또 어떤 곳일지, 주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했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홀가분하다.

숙소를 고민하다가 우리는 이곳으로 오기 전 지냈던 숙소로 다시 3일을 지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방콕으로 가기 전에는 끄라비타운에서 묵었던 숙소에서 또 1박을 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가 옮기는 숙소는 새로운 곳이 아닌 마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집과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곳 숙소에서는 화려한 외관뿐, 무언가 마음 편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피곤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지막 수영을 하고 나는 짐을 꾸린다.

그리고 프런트에 체크아웃하겠다고 미리 알렸다.

짐을 들고 프런트로 나가기에는 거리가 좀 있었기에 서비스를 요청하였고 곧 우리의 짐을 옮겨줄 골프카 같은 것이 왔다.

짐을 차곡차곡 싣고 우리도 태워주셨다.

그리고 프런트에 도착.

프런트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할 때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게 응대하였던 직원이 골프카에서 내리기도 전에 나에게 와서 뭐라고 한다.

"비치백"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호텔 로비로 이끈다.

그곳에는 호텔에서 사용했던 비치백, 슬리퍼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안내된 장식장 같은 곳이다.


'야, 좀 비싼 호텔이어서 그런가.. 비치백을 선물로 주는 거야? 둘 중에 고르라는 건가.. 나는 짐만 되는데..'


고민하는 찰나, 그녀의 빠른 태국식 영어에서 무언가 걸린다. 영어는 조금 못해도 듣기와 쓰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영어 말하기, 듣기, 쓰기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나는 스웨덴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스웨덴어로 싸우는 내 친구의 부부싸움의 이유도 다 이해할 정도로 눈치껏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내가 비치백 하나를 가져갔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찾고 싶어 하는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의 숙소 대부분은 숙소 내에 비치백과 간단한 돗자리를 구비해 두는 편이다. 바다가 바로 근처이니 투숙객이 원하다면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제 딱 한 번 그 비치백을 사용하였다.

처음 체크인 할 때 많이 어수선한 상황이기는 했다.

방준비도 늦어졌고 우리는 한 시간을 넘게 대기하였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커넥팅룸에 묵었고 들어갔을 때 한 곳은 비치백이 있었지만, 한 곳에는 비치백이 없었다.

나는 다만, 우리가 커넥팅룸이기에 비치백을 하나만 두었다고 생각했었다.

어설프지만, 나는 이런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체크인했을 때 비치백은 하나밖에 없었다. 000호에는 있었고 000호에는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했고 나는 이런 말을 세네번 더 반복했다. 무언가 개운하지는 않지만 알겠다고 했고 나에게 서명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그 종이는 내가 맥주를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여행자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비싸게 책정되어 있는 숙소 내 비치된 음료를 먹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과 하루에 한 시간 넘는 거리도 걷기를 마다하지 않기에 우리는 매일매일 편의점으로 가서 내일 먹을 간식을 사 오기도 했었다.

그 맥주에는 사정이 있었다.

둘째만 미리 씻느라고 방으로 갔던 날이 있는데, 아이는 나를 보더니 어떤 사람이 먹으라며 맥주를 주었다고 한다.

아이는 직원분이 주셨다며 먹으라고 했고 나는 재차 직원이 맞는지 물었다. 직원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니 아이는 직원이 준 게 맞다고 했다.

해외 여행지에서 낯선 이가 주는 것을 먹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 맥주는 무알콜이었고 나는 무알콜 맥주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또 이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솔직히 나는 누가 봐도 청소년인 아이에게 맥주를 건넨 숙소의 태도가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곳 태국에서는 우리 막내보다 어린 아이가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도로를 다니기도 했고, 가족이 하는 식당일 때는 능숙하게 서빙을 하기도 했고, 주류도 살 수 있는 것을 알았기에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만 하였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무언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 나는 내 생각을 비교적 정리된 언어로 잘 표현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단순히 '나는 안 먹었어.'만 하려니 정말 답답하였다. 게다가 직원은 비치백에 이은 맥주까지 개운치 않은 비언어적 메시지를 내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또 알겠다고 한다.

그리고 또 사인을 하라고 주는데, 이번엔 내가 초코바를 먹었단다.

나는 또 먹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짜증이 났겠지만, 나도 정말 불쾌하여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체크인 할 때 당신들은 너무나 어설펐고 나를 많이 기다리게 했다. 나는 그런 당신들의 신속하지 않은 응대에도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방에 들어갔을 때 수건조차 인원수대로 없어서 내가 요청해서 받았다. 그러니 내 생각에는 내가 체크인할 때 우리 방의 미니바를 잘 챙기지 못한 것 같다. 이후 청소를 하러 왔을 때 비어있으니 채웠고 그래서 내가 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일은 당신들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겠냐. 이런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나도 지금의 상황이 불쾌하다.'


이런 마음의 소리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지금 생각해도 하지 말걸 후회가 되는 어설픈 하나의 문장이었다.


"I go to 000(편의점 상호명) everyday!"


내 마음의 소리를 대변하지조차 못하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첫째가 시간이 길어지니 내 곁으로 왔는데 초콜릿이라는 단어가 왔다 갔다 하니 아이는 내게 "초콜릿?"이라고 하였고 그녀는 아이에게 "Do you have?"라고 하는 상황까지..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직장인으로서의 그녀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눈치 빠른 아이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고 "No"라고 답변하였다.

그렇게 답답하고 짜증 나고 찝찝한 체크아웃이 끝났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 공간은 이제 내게는 화려한 외관조차도 무의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랩이 안 잡힌다. 돈을 두배로 주는 것을 선택해도 잡히지 않는다.

이성은 프런트로 가서 택시를 잡아달라고 해야 한다고 하는데 다시 그녀와 말 한마디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이들도 인내심의 한계다.

언제 가느냐고 보챈다. 나는 긴 시간을 여러 감정과 노력으로 보내서 지쳤지만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지루한 기다림으로 보냈다.

우리는 모두 지쳤다.

어쩌겠는가. 나는 엄마이고, 아이들의 수고를 안다.

나 혼자였다면 짐을 끌고 한 시간이라도 걸어 나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그럴 수는 없다.

그녀는 나라는 인간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의 일을 했을 뿐이고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럴만했다. 물론 조금 더 다정하고 친절한 태도였다면 좋았겠지만 그녀의 근무태도까지 평가할 이유가 나에게는 없다. 다정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았지만 무례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무의미한 행동에 의미를 담아 내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이었다.

다시 프런트로, 그리고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를 옮겼다.


덧붙이는 이야기) 이 에피소드를 쓰고 있는 지금, 왜 이리 구구절절이 쓸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 어떤 에피소드보다 상세히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머릿속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손가락은 날개가 달린 듯 움직인다. 나는 여전히 의심받았던 그 순간을 명백히 해명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제주에 와 있는 나는 그럴 수 없음을 안다. 이 길고도 상세한 이야기는 그저 내 마음이 아직은 이러하다는 것일 뿐.


그렇게 옮긴 이곳은 다시 내 마음을 녹인다.

평범했지만, 친절하게 느껴지는 직원의 태도.

그리고 익숙한 나의 거리들..

조금 외진 곳에 있었기에 그간의 빨래는 다 모아두었고 우리는 제일 먼저 빨래방을 찾았다.

지난번에는 빨래를 맡겼지만, 오늘은 셀프빨래방에서 직접 세탁기를 돌린다.

그리고 밥 먹을 곳을 찾는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지체하여서 밥시간이 애매하지만 다시 발걸음 가볍게 걷는다.

그리고 발견한 국수 맛집!!

블로그에서 여러 번 봤던 그 국수집이 문을 열었다.

우리가 다닌 시간이 맞지 않아서인지 한국어로 "여기서 메뉴를 주문하세요."라고 써있는 그곳은 늘 문이 닫혀있었다.

셋째에게 국수를 먹이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먹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맛있는 한 끼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빨래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숙소로 들어갔다.

빨래를 개서 정리하고 아이들은 수영을 가고 나는 곧 대가족이 함께 할 방콕에서의 일정을 위해 이런저런 검색을 한다.

그리고 저녁, 우리는 우리의 야시장으로 향하고 늘 먹었던 것을 먹는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이곳, 여행지에서의 평범한 일상.

제주에서 지금의 생활은 낯설고 여행자로서의 일상이지만, 긴 여행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상.

평범해서 평화로운 하루를 마무리한다.

사실, 아이들은 낯선 상황도, 환경도 때로는 짜증나는 기다림마저도 잘 보낸다. 그 안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의 오르내림을 겪는 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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