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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폰더 Jan 31. 2023

나이맞이

    내가 기억하는 한 아마 중 2, 3학년 때쯤이었을 거다. 누구나 그러하듯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 기댈 곳 없는 어린이는 그저 일찍 죽고 싶었다. 마흔 때쯤에 죽으면 딱 좋겠다 생각했다. 당시 기대 수명이 60 ~70살쯤 됐으니 절반 정도 살다 가면 적당하다 여겼다. 곧잘 죽음을 상상했고 내가 없이도 잘 돌아갈 지상의 일들과 내가 아는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곤 했다. 괴상한 취미였지만 덕분에 서른둘에 뇌종양을 진단받았을 때 꽤 덤덤했다. 바라던 게 이루어지나 했다.


    얄궂게도 인간의 생명력은 내 상상보다 훨씬 질기고 견고해서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마흔둘이 되었다. 여전히 죽음은 두렵지 않다. 철부지 시절 바라던 일이 갑자기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없다. 다만 이제는 늙어가는 게 두렵다. 배움에 게을러지고 빠르게 변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게 요절하는 것보다 무섭다. 그렇게 못난 모습으로 천천히 늙어가며 누군가가, 사람이든 AI이든, 내 자리를 대체하는 모습을 두 손 놓고 바라만 보게 될까 봐 마음을 조린다.


    점잖고 멋지게 늙는 게 일찍 죽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멋지게'라는 단순한 표현에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마흔이 넘어서 알았다. 몇 가지 나열하자면 운동으로 적정한 피지컬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체력 관리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말 그대로 '멋지게' 늙으려면 탄탄한 몸매는 필수였다. 또 배움을 놓지 않고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했다. 마흔 때쯤 되면 대부분의 제반 사항이 준비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가진 능력을 갈고닦지 않으면 현재의 자리도 유지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해 자기 관리라고 불리는 미용과 패션에도 부지런해야 했다. 건강을 위해 정기 점진도 빼먹지 않아야 하고 적정한 부를 축적하면서도 인간관계에서 씀씀이가 인색해선 안 됐다. 두루뭉술하게 얘기해도 이정도다.


    넋 놓고 마흔을 맞이한 본인의 얼굴은 다행히도 나이보단 젊어 보인다. 피부과에 돈 들인 보람이 있다. 그런데 다른 것에 들인 노력의 결과는 어떨까? 운동, 커리어, 자기 관리, 건강, 저축. 모든 게 봄 되면 녹아버릴 살 얼음 같다. 무엇 하나 견고한 것이 없다. 인간은 불안정한 동물이라 평생 변화하는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이렇게 힘든 작업을 앞으로 적어도 30~ 40년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다. 올해부터 물리적 나이를 도입해 한 살을 안 먹는다고 해도 즐겁지 않은 이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주는 중압감과 책임감은 피할 수 없다. '나답게'보단 '나이답게'가 먼저인 사회에서 정말 이 숫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게 가능할까? 나 역시 남들이 보기엔 나이보다 젊게 도전적으로 갓생을 산다고 하지만 실제는 겉보기 보다 팍팍한 프리랜서 번역가일 뿐이다. 나에게 매겨지는 숫자를 잊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에 갇히거나 안주하게 될까 걱정한다. 젊진 않아도 점잖은 사람이 되고 싶고 게을러도 배움엔 부지런해서 곱고 멋지게 늙고 싶다. 다만, 청춘과 나이의 그 간극이 슬플 뿐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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