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잘 지내셨어요?"
32살 된 제자가 찾아왔다. 내가 24살에 가르친 첫 학생이었다. 당시 녀석은 공부도 잘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에 인기 많은 반장이자 학생회장이었다. 탐구에 집념이 있고 진중하면서도 장난가 많은 친구였다.
녀석의 대범함과 재치에 관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사교육계는 시험 기간에 엄청난 양의 숙제를 제출한다. 모범생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을 수 없는 분량이다. 늘 내 방식대로 한 장씩 교재를 넘기며 숙제 검사를 하는데 주관식 자리에 보기 좋게 숫자 '3'이 쓰여 있었다. '오호, 이 문제 답은 3번이야?'라고 물었더니 제자는 뻔뻔하게 '네!'라고 했다. 내가 한 번 더 문제를 읽으며 '진짜 3번이야?' 했더니 그제야 눈치챈 제자는 특유의 꺽꺽거리는 소리로 크게 웃었다. 예의 바르지만 초짜 강사의 으름장에는 쫄지 않는 친구였다. 덕분에 녀석의 숙제 은폐는 발각이 됐고 아이들도 신나게 웃었다. 그렇게 거침없는 친구였다.
그런 그가 불쑥 약속을 잡고 찾아온 것이다. 여자친구 문제나 진로 고민이 있을 때 종종 통화하곤 했는데 6년 차 은행원 팀장이 돼서는 뭐가 고민일까 싶었다. 들어보니 역시나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은행원이었나, 라는 고민을 한단다. 30대 초반에 겪는 인생 고민. 격하게 공감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마 누구나 그럴 거니까. 무작정 달려온 20대를 지나 문득 뒤돌아 보니 여기가 내 자리인가 싶은 30대. 그 초입에서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사실 그에게 은행원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뭔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마음에 속으로 못내 아쉬워했다. 그런데 마치 내 속을 들킨 것처럼 제자는 생각만 하던 꿈을 슬쩍 꺼내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게 너무 잘 맞는 일이라 생각해서 적극 찬성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 줬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지금이라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라고. 꿈에 관해 썼던 글에서 언급했던 강신주 박사의 꿈의 정의도 얘기해 줬다. 그렇게 평생 꿈 주변을 빙빙 도는 귀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도전하라고. 그래야 놓을 때도 후회가 없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제자는 주변의 만류를 걱정하고 있었다. 특히 나이가 문제란다. 고민을 털어놨던 친구들 대부분이 이제 자리 잡고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꾸려 할 나이에 왜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냐며 말리더란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겨우 서른 초반에 이게 무모한 도전인가? 나는 발끈했다. 그 친구들을 싹 다 찾아가 한 명씩 내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제정신이냐고. 대체 서른둘이 어디가 많은 나이냐고 면전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흥분한 감정으로 제자에게 강조했다. 마흔둘도 아니고 서른둘에 못 할 게 뭐냐고. 나는 서른넷에 대학원을 시작해 서른아홉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마흔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말해 주었다. 네가 어떤 시작을 하든 나보다 먼저 하는 거고, 몇 년 하다 실패해도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라고!
약간의 깨달음과 반성, 뭔가를 느낀 제자는 용기를 얻은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을 내려놓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무작정 뛰어드는 건 매몰 비용이 큰 일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서 내가, 그 결정을 한 나 자신이 결코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믿기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민과 방황의 시간, 결정과 후회의 번뇌들, 그런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다. 난 그 치열한 시간이 나를 만든다고 믿는다. 다만 안타깝게도 도전에 때나 타이밍은 없다. 그마저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내 모든 제자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걱정하지 말고 고민하시길, 선택했다면 후회 없게 만드시길.
Go for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