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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폰더 Feb 01. 2024

멘탈이 건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고백 타임

    어릴 땐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기준이 분명치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름의 잣대가 있었다. 집이 가깝다고 해서, 같은 반이어서, 책상을 나눠 쓰는 짝이라고 다 친구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조별 활동이나 과제를 함께 하면서 몇 마디 나눠보면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 이 아이와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 아직 머리가 성숙하지 않아 가치 판단의 기준은 정립돼 있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나와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알았던 것이다. 옳고 그름은 잘 몰라도 좋고 싫음은 어려도 아니까 말이다.


그렇게 선별된 나의 친구들은 공통적으로 내 기준에서 다 나보다 나은 이들이었다. 물론 물질적 비교에서 집이 더 잘 사는 친구도 있었지만 난 그런 환경적인 것보다 개인의 특질에 쉽게 매료되는 편이었다. 신체적으로 나보다 뛰어나거나 지성이 훌륭하거나 멘탈이 건강한 그런 것들 말이다. 이 세 가지에 유난히 취약했는데 그중에서도 멘탈이 건강한 사람에게 늘 반하곤 했다. 진화론적으로 건강한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남성이 가임기 여성을 냄새로 알아본다는 이론처럼 (Anja & Karl,1999) 나는 늘 멘탈이 훌륭한 사람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래서 속된 말로 '꽂히는 일'이 잦았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줄곧 앞자리에 앉았던 내가 고등학교 때 맨 뒷줄에 있던 Y양과 친구가 된 것도 그래서였다. 17년을 살며 당시 내가 겪었던 보통의 키 큰 친구들은 작은 아이들을 상대적으로 무시하고 본인의 폭풍 성장을 과시하는 면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반에서 제일 작은 친구와 쉬는 시간마다 대화를 하고 사람을 가리지 않았으며 누군가 구석에 혼자 있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었다. 애민 정신이 투철하다고 할까? 본성이 사람을 좋아하는 따뜻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학기 초 3월, 수줍음 많은 같은 반 친구 정도로 나를 알고 있는 그녀에게 교환 일기장을 쓰자고 제안하며 Y양과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25년을 넘게 알고 지낸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멘탈이 건강하고 깨끗한 사람이다.


이런 일은 유년기 시절로 끝나지 않았다. 대형 어학원에서 교수부장으로 일하며 낮에는 대학원 공부를 했던 때 같은 기수의 대학원생과 교수님이 점심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옆도 아니고 꽤 먼 곳에서 누군가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학술적인 내용도 아닌 일상 대화를 하는데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 나를 붙잡았다. 알맹이가 꽉 찬 K선생님의 목소리는 당차고 올곧았다. 식사를 하고 일어날 때 난 본능적으로 그녀 뒤를 따라갔고 인사를 나누며 내 신분을 밝히고 우리 학원 파트 강사로 일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알게 된 지가 10년이 넘었고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자존감이 높고 신의를 중요시하는 멘탈이 안정된 사람이었다.


친구만이 아니라 이성을 만날 때도 정신 건강은 내게 중요한 매력 포인트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Robert & Naomi, 2018) 인간은 상대의 표정만으로 그 사람의 정신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253명의 성인 남녀에게 부분적으로 합성된 정면의 인물 사진을 보여주고 점수를 채점한 결과 심리검사 점수가 낮은 그룹과 높은 그룹이 일치했다. 우리말에도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연구 결과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거울 앞에 서게 된다. 내 얼굴은 어떤가? 내 목소리와 말투는? 내 정신 건강이 나를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가? 아니다. 이런 정신머리로는 내가 나를 봐도 어디 하나 마땅치가 않다. 마흔이 넘으면서 피부가 부쩍 신경 쓰였는데 지금 피부과를 드나들 때가 아닌 듯싶다. 새해는 밝았고 벌써 1월도 다 지났는데 계획한 일은 지지부진하고 오춘기랍시고 기한도 없는 방황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90세가 되어도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다. 그러려면 내 기준에서는 멘탈이 건강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예상치 못한 일에도 '그럴 수 있지' 하며 생각이 유연해야 한다. 다름에 인색하지 않고 타인에게 너그러우면 더 좋다. 보는 눈과 생각하는 방식이 편협하지 않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런 사람이 되기에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사는 그날까지 매일 조금씩 노력하면 얼추 그 비슷한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바라본다. 멘탈이 건강해서 반짝이는 사람이길 희망한다.



* 멘탈 건강에 좋은 책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기시미 이치로

자존감 수업 - 윤홍균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예민함이라는 무기 - 롤프 젤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김수현


* References


Anja Rikowski, Karl Grammer. 1999. Human body odour, symmetry and attractivenes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Robert Ward, Naomi Jane Scott, 2018, Cues to mental health from men’s facial appearance.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75 (2018) 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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