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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Jun 16. 2022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현관문을 여니 집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실과 방마다 장난감과 옷가지들, 기저귀들로 하루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피곤하고 허기진 몸으로 들어서는데 짜증이 몰려왔다. 이렇게 티를 내나 괘씸하기까지 했다. 종일 떨어져 있던 딸아이를 꼭 안고 얼굴을 비볐다. 그제야 아기 곁에 있던 남편이 보였다. 가슴이 덜컹했다. 그이는 아침에 비해 얼굴이 반쪽이 돼 있었다. 무엇보다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이다.     


 “밥은 먹었어?”

 “아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왜... 뭐라도 먹어야지...”     


 한 생명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놀아주는 것은 드라마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끊임없는 노동이 뒷받침돼야 했다. 노동이란 의례 나의 자유에 반하는 것들이다. 나는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고, 씻고 싶을 때 씻을 수 없고, 자고 싶지만 잘 수 없다. 나가서 걷고 싶은데 나갈 수 없다. 피라미드 바닥에 있는 나의 기본욕구는 철저히 무시됐다. 아기를 풍선처럼 품고 있던 임신 시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육아서와 육아 선배들의 못 자고 못 먹고 하는 이야기들은 그저 하루 이틀인 줄 알았다. 이렇게 낳은 순간부터 주야장천 자유가 구속되는지는 몰랐다. 어렵고 버거웠는데 함부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그럼 내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엄마로 보일 거 같았고 우리 아기의 안위를 걱정할 거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구나...인류가 멸종될까봐...! 그렇게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낳아보면 안다는 말을.     


 “자격증 공부, 마저 해야겠어.”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을 올해도 놓칠 수는 없었다. 세 과목 중 한 과목은 이미 패스해놓은 터라 마무리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은 누구보다 충분히 이해해줬고 매주 토요일 학원에 다니는 것에 적극 찬성해줬다. 아침 8시에 현관문을 닫고 나오니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내 사지육신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꼈다. 마음은 금세 평화로워지고 예전의 세상을 만나는 기분은 짜릿했다. 오로지 아기에게만 향해있던 시선으로 멍하니 버스 창밖을 내다볼 수도 있다. 해방감에 죄스러움을 느꼈다. ‘시험은 핑계였을까’ 사실 잠시라도, 정당하게 아기와 떨어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이와 입장이 바뀌어보고 싶었다. 종일 아기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이가 느껴봤으면 싶었다.       


 나는 2년을 매일같이 아기만 보고 있는데, 그이는 고작 하루를 혼자서 아기를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울음이 터질 거 같은 네 살짜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면을 끓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9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지만 근처 식당에 갔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육아가 제일 힘들었어요.’라는 얼굴로 고기를 구웠다. 온종일 저지레에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했다던 아기는 태연하게도 방긋방긋 웃었다. 그런 아기를 보는 남편은 배신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아기는 저러다가도 금세 변신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울어서 기어코 우리의 식사를 종료시키겠지. 아기와 함께하는 식사는 언제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대충 삼켰다. 에너지로 빨리 환원되기를 바라며 씹었다. 우리의 얼굴을 읽으셨는지 서빙해주시던 이모님은 아기가 이쁘다며, 아빠는 왜 이렇게 힘이 없냐며 친절하게 고기를 구워주셨다. “그래도 그때가 제일 이뻐요~”라는 말씀과 함께. 그 말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울컥하고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올라왔다. 그이는 말없이 내게 휴지를 주었다. 눈물을 닦으니 초췌한 그이와 방실방실한 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인류는 멸종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정의의 여신 디케가 들고 있는 저울처럼 행복과 힘듦이 같은 무게였다. 두개가 동시 방영되니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함께’라는 것이 결국에는 나를 위로했다. ‘나만 힘든 거 아니야. 저 쪼꼬미도 열심히 사느라 저렇게 울어대는 거겠지. 그이도 회사에서 지치지만 버티는 거지.’ 나또한 종일 나갔다 들어온 사람은 하루치 역사의 현장보다 정리된 집을 볼 때 더 고맙고 미안해지며 갑자기 없던 에너지가 솟아서 아기와 즐겁고 신나게 놀 수 있음을 깨달았다.


 우린 결국 각자의 몫을 산다. 신랑 일을 내가 대신 해줄 수 없고 나의 일을 신랑이 해줄 수 없다. 아기 대신 아플 수 없다. 그렇게 상기하지 않으면 대신 아파할 수 없음에, 도와주지 못함에 안타까움이 커지고 나를 몰라줌에 서운함이 화로 변한다. 하지만 우린 오늘도 각자의 하루를 꿋꿋이 보내고 한 침대로 모여든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위로이다. 각자 무엇을 견뎌냈는지 알고 있으니 서로 토닥이며 잠이 든다. 

‘고생해서 오늘도...’







                                                                                                                                 Photo by Harry Gr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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