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세계로 입장합니다

대공간이 주는 상쾌함

by 어느새



중력의 세계에서 살짝 비켜난 물의 세계가 좋다.

마치 다른 세상 같다.

푸른 수영장은 매번 볼 때마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또 재미있는 것은 수영복과 수영모를 입으면 사람에 대한 추측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화장도 할 수 없고 머리 스타일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고 비슷비슷한 수영복을 입고 있으면

‘저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실까?’ 가늠이 안 된다.

나이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이나 경제 정도도 예상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다 같이 쫀쫀한 수영복과 수영모로 최소한의 몸뚱이만 가리고 나머지는 훌훌 털어버리고 만나는 것이다. 그저 다 같이 수영 초보로 노란색 키판을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한다.

첨벙첨벙, 서로 물 튀겨 가며 수영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앳된 선생님 말씀에 귀를 쫑긋하고 기울인다. 수많은 레이어가 벗어지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듯 하다.


두 달쯤 지나 자유형의 마무리를 배울 때쯤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 머리로는 알겠는데 내 몸이 움직이는 건 딴판이다. "힘 빼세요, 다리 모으세요, 고개 너무 들지 마세요, 얼굴 떨어지지 않아요"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며 몸을 움직여 보지만 숨이 가빠 정신이 없다. 허우적대다 온 거 같은 기분이 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물에서 노는 건 좋은데, 숨을 쉬는 건 정말 어렵구나...'

이래저래 일이 있긴했지만, 강습에 대한 마음이 떠나려는 위기의 시절이라 일주일 만에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오늘도 안 가면 정말 관둘 거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런데 차마 관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끝까지 해서 수영하면서 숨을 쉬고 싶다.


ⓒ Emilio Garcia

수영을 배우면서 좋았던 것들을 생각했다.

'난 물속에서 땀나는 느낌이 좋아, 땀 냄새 없이 바로 씻기는 기분은 정말 상쾌해. 몸은 뜨거운데 물은 차가워 그 온도 차이를 느낄 때 좋아. 다른 운동은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 얼굴이 터질 거 같이 붉어지는데 확실히 물속에서는 덜 빨개져서 좋아, 난 수영장이라는 무주 대공간을 참 좋아하지, 수영 잘하시는 선배님들 스노클 세트 하시고 수영하시는 거 보면 제주 남방 돌고래떼 같았는데, 나도 그때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여기까지 생각하니 돌덩이처럼 무거운 몸이 체육관으로 향해졌다.


수영이란 운동은 생각보다 운동 전후 품이 많이 들어간다. 수영복, 수영모, 물안경과 목욕 도구와 마른 수건을 갈 때마다 챙겨야 한다. 운동 전에도 전신 샤워를 하고, 운동 후에도 꼼꼼히 샤워해야 한다.

쪼이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어야 하고 쫙 달라붙어 있는 수영복을 다시 벗어야 한다.

그게 귀찮아지는 날이 있다. 흥미 그래프는 정체되었는데 컨디션이 난조이거나 날씨라도 궂은날에는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면서 결석의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 Lavi Perchik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오늘도 수많은 회원이 수영장에 모여있다.

다 같이 구령이 맞춰 준비운동을 한다.

스트레칭하다 보면 '됐다, 오길 잘했네'라는 생각이 든다.

‘자각 없이 쉬던 숨을, 물속에서 조절해가며 쉰다는 건 누구나 처음에는 어렵겠지?‘

자신을 다독이며, 선생님의 말씀을 복기하며 발차기를 시작한다.


다행히도 세 달이 넘어가니 슬슬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수영을 다녀오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일상이 되고 있다. 더 이상 저번처럼 가기 싫어서 온갖 합리화를 끌어다 쓰지 않는다. 여전히 잘 못하지만, 물에 들어가는 게 좋으니깐 오늘도 그냥 간다.

이렇게 나의 루틴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나는 접영, 평영까지 마스터해서 아마추어 선수 대회에 나가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냥 느리고 힘 뺀 상태로 슬슬 자유형을 하는 꽃무늬 수영복 할머니만 되면 된다.

꾸준히 하는 운동이 있냐는 물음에 죽을 때까지 "수영이요" 하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꾸 힘을 빼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힘을 빼지?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여전히 물에서 노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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