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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Feb 08. 2024

60살 주택의 장례를 치른 날.

추운 겨울. 처음으로 철거 감리를 맡았다.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기존의 건축물을 부수는 철거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빈번해지자 서울시는 작은 건물을 철거를 할 때도 건축사의 감리를 필요로 했다. 내가 맡은 건물은 오래된 2층 집이었다. 1960년대 집장사에 의해 지어진 연와조 건물이었다. 이 집은 집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방치되다가 젊은 건축주 부부에게 땅이 팔리면서 다시 세상과 만났다. 건축주는 처음에는 리모델링을 원했지만 구조적 안전성을 확답할 수 없어 신축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집은 부서질 예정이었다.




철거 공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집을 탐험했다.

마당에 화장실이 따로 있고 문간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숙이나 월세 개념으로 세를 놓아 북적북적했을 거 같다. 재미있는 것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공간도 집안에 따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방공호가 따로 없다. 전쟁이 나도 버틸 수 있을거 같다. 영화 기생충이 생각난다. 이층은 여전히 볕이 아름다웠다. 늙어있고 쓰레기로 엉망인 집에 따스한 남쪽 오전 햇살이 그득 들어왔다. 좋으셨겠다 할머니.


'아깝다. 이 아름다운 공간이 사라지는구나. 이 집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살았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떠나고, 싸우고 사랑하고 대화하고 깔깔거리며 웃고 수많은 밥을 지어먹었을... 그런 집이 이젠 세상에서 사라진다. 여기 살았던, 이 집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 있을까.


나는 오래된 주택을 볼 때마다 '부모'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집은, 부모는 나를 살린다. 나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가르친다. 폭풍이 몰아치고 아무리 춥고 더워도 우선 집으로 들어오면, 부모 품으로 들어오면 안심이다. 낡고 볼품없는 품이라도 나에게는 세상 유일하고 독보적이고 따듯한 품이고 공간이다.


오래된 주택은 마지막까지 모든 걸 내어줬다.

우선 돈이 될만한 쇠붙이를 모조리 뜯어낸다. 미니 포클레인에 족집게 같은 집게발을 달고 샷시부터 문 손잡이까지 싹싹 알뜰히 끌어다 트럭에 싣는다.  더 이상 돈이 될 만한 게 없으면 그때부터는 사정없이 때려 부순다. 인정사정 없이 마구 부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층집이 사라졌다. 너무 빠르게 사라짐이 가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순간에 푹 삭 주저앉아 영원히 사라져버린 집을 생각했다. 삼일장 같던 3일간의 철거 기간동안 집은 사라지고 땅이 드러났다.

오래된 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집이 이 땅에서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아쉽다. 이렇게 무조건 때려 부숴야만 할까. 조금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 내 고민이 시작됐다.

삼일장을 치르며, 그 겨울 새벽에  오들오들 떨며 무너지는 집을 보며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집에 대한 존중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공간이 다시 태어날 수는 정말 없을지..거기서 시작된 고민이 두 번째 예창패 아이템이 되었다.


환경 폐기물도 줄이고 기존의 집 건축면적도 고스란히 물려받으면서, 안전하고 따뜻하고 심플하게 바꿀 수 없을지.


마당에서 별까지 온전히 내가 소유하는.

주택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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