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하며 발견한 것중 하나는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수영 영법도 제각각 모두 다르다는점이다. 똑같은 자유형을 해도, 팔을 올리는 각도나 손의 모양, 발차기의 정도, 숨쉬는 입 모양까지 어느하나 같은점이 없다. 같은 선생님께 배워도 막상 자유형을 시작하고 익숙해지다보면 자신만의 영법을 찾아가는듯하다.
어떤 분은 평형을 하시는데 수면위로 상반신의 배꼽까지 보이시는분도 있고(순간 물속에서 일어서신줄), 접형을 하시는데 수영장 모든물을 퍼내시겠다는 각오이신분도 있다. 아니, 저 속도로 가는데 가라앉지 않는다고? 과학의 힘을 뛰어넘는 분도 매번 뵌다.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만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는 물을 좋아하는 아이에서 몇살 더 먹은 비슷한 종족같고 그래서 보기좋다. 그래서 수영이 좋다.
어제는 물반, 사람반이었다. 나는 자유형으로 체온을 올린 뒤 걷기레인에서 물속을 걷고 있었다.
그때 덩치큰 남자 아이와 엄마가 물 속에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서둘러서 아이의 수영복 바지를 추스리며 올리고 있었다. 바지가 커서 흘러내렸나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물을 만나서 신나보였고, 아이가 웃으니 엄마도 미소짓고 있는듯 했다. 아이는 천진함을 지닌 얼굴이었지만 덩치는 청년에 가까웠다. 중고생 정도의 키와 퉁퉁한 몸매를 가졌다. 아이는 많은 사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냅다 다이빙해서 입수했다. 아이가 다른별에 사는 친구라는걸 아는건 순식간이었다.
얼마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작은키 다부진 마른 몸에 주걱턱을 가진 안전요원이 모자에게 다가갔다.
"어머님 잠시 이야기좀 나누실까요?" "아니요, 여기서말고 좀 다른데 가서요"
아이의 엄마는 처음 봤을떄부터 두 몸이 붙어 있는것처럼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고 말하는거 같았다. 안전요원은 엄마의 귓속에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분위기만으로 아이가 긴장해서 얼어있음이 물을 통해 전해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내리는걸 묵인할수는 없잖아요!"
앙칼진 목소리가 수영장을 갈랐다. 많은 사람들은 본능에 가깝게 여자를 바라보았다. 험한 인상이 된 여자는 쪼그래고 앉아서 물속에 있는 엄마와 설전을 벌였다. 둘 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듯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드문드문 들리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고개을 주억거리고 있었다. 걷기 레인에서 반환점을 돌았던 나는 그 장면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했고 심장에 시멘트블럭이 엊혀진것처럼 갑갑했다.
한참을 화를 내고 여자는 일어나서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같은 안전요원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듯했다. 수영장을 한바퀴 돌고 돌아와서 허리에 양손을 얹고 모자를 응시하기도 했다. 모자는 다른 시선들은 못느끼는것처럼 자분자분 자신들의 할일을 했다. 다섯살같은 커다란 청년은 아기하마처럼 물속에 잠수했다가 삼초 후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청년같은 아이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잘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거 같았다. 청년같은 아이는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보란듯이 수영 비슷한것을 해냈다. 귀여운 아기하마와 어미하마는 자유수영 타임이 끝날때까지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부지런히 수영을 했다.
심장이 조여오던 나는 스스로의 무력함과 비겁함에 고개를 숙이고 물만 보며 걸었다. 모르겠다. 내가 딱히 나설수 있는 노릇이 없었음에도 비겁함과 부끄러움이 가슴에 가득찼다. 내가 모자를 인식하기전, 어떤 일이 있었을 수있다. 하지만 청년같은 아이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아니였을까. 우리의 시선은 얼마나 다양성에 냉정한지,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건지 막막했다. 문득 아이를 임신했을때가 떠올랐다. 임신기간에는 매달 무슨검사 무슨검사를 하는데 임신 5개월쯤 기형아 검사를 하자고 했다.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검사 결과가 기형아로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잠시 대답을 고르던 의사가 말했다. 낳을지 마을지 결정하셔야겠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 손에는 그날 아이의 초음파 사진이 있었다. 사람의 형태를 당연히 갖추고 있는 작은 아기의 심장소리를 방금 듣고 왔는데. 무슨 말을 하는걸까..잔인하다는 생각도 들고 '선택'이라는 아이러니함에 혼란스러웠다. 고민끝에 아이 아빠와 나는 그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었다. 조금만 알아봐도, 다른 별에 사는 가족은 누구에게 올 수 있다는걸 알수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물만 보며 걷다 문득 고개를 드니 청년같던 아기하마와 엄마는 가고 없었다. 미안했다. 따뜻한 눈맞춤은 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건 결례가 아니지 않을까? 행동하지 못한 내가 아쉬웠다. 그리고 아기하마보다 더 많은 물을 튀기는 중년 아저씨를 스쳤다. 발장구로 물벼락을 선사하는 아이도 보았다. 우린 각자 만의 스타일로 수영한다. 아기하마의 수영복이 잠시 흘러내렸다면 그정도는 웃으며 눈감아줄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나부터 날선 시선을 거둬야겠다. 우린 각자의 별에 살고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