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리 Feb 20. 2021

내가 주체가 되는 삶, 예술적 삶에 대한 힌트

예술, 다양성,

창조적 삶을 향한 에너지


예술학교에 입학한 후 많은 예술 지식을 배울 수 있었고, 내 취향의 예술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생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예술 작업과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매일 편견이 깨졌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경험하며,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내면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나는 비슷한 모양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탐구해볼 기회가 부족했다. 주변에서 말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한때는 대학에 가기만 하면, 취업을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숙제는 끝이 없었고 경쟁은 치열했으며, 그 모든 것을 해낸다고 해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다. 답답했다.


그래서 예술이 좋았다. 예술 작업은 언제나 나에게 특정한 질문을 던져 줬다. 그 질문에 답을 구하며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어떤 시도를 하고, 기존의 틀을 재정의하고 재해석하는 일이 좋았다. 정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나에게 예술이란, 극장이나 갤러리에 있는 작품을 향유하는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영감이고 에너지였다. 다른 이들의 작업(삶)을 보며 그들과는 다른 나만의 작업(삶)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결과물과 전문 예술 중심의

예술 시스템을 인지하다.


그러나 막상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자, 예술 시스템 속에서 만난 예술은 내가 좋아했던 예술과는 조금 달랐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한 예술은 '다양성'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계는 꽤 폐쇄적인 세계였다. 게다가 부정할 수 없이 예술은 너무 어려웠다. 작품 평론이나 소개글만 봐도 그랬다. 생소한 미학 용어들이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예술이 ‘경험’이나 ‘실천’으로 느껴지기보다는 ‘학습’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 예술계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던 어느 날, ‘좋은 예술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친구에게 묘하게 과시적인 태도를 보이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경계심이 들었다. 내가 나의 예술 취향을 차별적인 상징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만약 내가 한예종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면, 예술계의 친구들과 교류하지 않았더라면, 그들 덕분에 다양한 작품들을 경험하고, 예술의 현장에 오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예술과 꽤 먼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예술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묘하게 나와 내 친구들, 가족들이 살아가는 삶,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의 ‘일상의 삶’과도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삶의 예술에 대한 힌트


'나에게 예술은 뭘까?'

'왜 나는 예술경영을 공부하기 시작했을까?'


이 고민이 오랫동안 내 안을 맴돌았다. 예술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예술을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전문 예술을 배우거나 경험해 본 적 없었던 내가 예술경영을 선택하고 탐구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예술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경영하는 일, 브랜드와 문화예술 콘텐츠를 연결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시작점을 곰곰이 짚어 나가다 보니, '창조적 삶'에 대한 열망이 나를 예술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고, 다양한 문화와 교류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고 싶었다. 나의 삶을 창조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은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닮아 있고, 나는 그 안에서 예술성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생각에 가 닿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흔히 '예술'이라 하면 예술공간에 있는 '작품'을 떠올리고,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가 좋아한 예술의 본질은 ‘결과’나 '작품'이 아닌 ‘과정’과 '태도'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단 한 번도 예술을 놓은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특정한 예술 장르나 조직을 위한 헌신이 아니었다. 나는 기존에 없던 삶과 일을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가기 위한 동료가 필요했고 진실한 대화가 필요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술을 찾았다. 그리고 그건 지금 이 시대가 예술에 요구하는 가치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적 상상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시대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에 대해 진실하게 성찰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사람들은 예술적인 태도로 '나'와의 관계를 새롭게 맺고, 다른 '나'를 구축하기 위한 창조적 노력을 기울인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능력을 향상하는 '자기 계발'과는 결이 다른, '자기 배려'적인 행위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정말 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러한 작업의 동료들을, 예술계 바깥에서 더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작가의 이전글 회사 다니면서 공연도 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