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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Feb 09. 2021

회사 다니면서 공연도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계에서 기획자로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성장'이었다. 일을 더 잘하고 싶었고, 돈도 부족하지 않게 벌고 싶었다. 그래서 홍보 전문 회사로 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더 이상 문화예술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힘들다고 느꼈던 것은 문화예술계의 '일하는 환경'이지 '문화예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잘 보면 저 뒤에 나 있다. 회사 다니면서 부득 부득 공연도 한다고 무리하다가 입술이 다 터졌던.


회사를 다니면서도 창작의 현장에 있고 싶었고, 계속해서 문화기획자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틈을 내 창작자들과 교류했고 여러 프로젝트를 꾸미곤 했다. 지금 와서는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말이 생겼지만 그때는 그런 활동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최근의 내 삶에 꽤나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고 야근을 했다. 새벽 한 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졸다 깨다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이 라이프 스타일이 딱히 건강하지는 않은 듯 한데, 이걸 견디게 하는 힘은 뭘까. 거칠게 말해보자면 '나의 삶에서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최근 나는 나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 사용한다.회사 일에 조금, 공연 일에 조금, 작은 축제 기획에 조금, 학교에 조금.

다른 사람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나라는 인간은 이러한 방식이 잘 맞는 것 같다. 각각의 일들이 상호 간에 자극을 주기도 하고, 안정을 주기도 하면서 적당히 잘 굴러간다. 물론 특정 부분에서 소홀해지기도 하지만, 그 역시도 괜찮은 것이, 나에게 이 일이 전부라면 조금 소홀해졌을 때 스트레스가 상당할 텐데 (이래봬도 완벽주의) 많은 일들 중 하나이다보니 데미지가 덜하달까. 어쨌거나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5년, 블로그에 쓴 일기


극단 문과 함께 한옥에서 열었던 공연 <노래의 힘>


내가 잘하는 싶은 일, 좋아하는 일, 현실적인 일들이 서로 순환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그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직급이 높아지면서 회사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커졌고, 부담도 점점 늘었다. 창작자 동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을 해야 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의 체력을 아껴야 하는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사무실에 있어야 하니, 자연스럽게 일의 기회도 점점 줄었다. 간간이 비평수업도 듣고, 축제의 자원활동가로도 지원했지만, 역시나 성실하게 활동하기가 어려웠다. 퇴근하고 나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기에 바빴다. 결국 나는 문화예술 일을 포기했다.


창작의 현장과는 멀어졌지만,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문화예술과 연결되기 위해 애썼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서만큼은 좋은 창작자들을 소개하고 싶었고, 문화예술 프로젝트 비딩이라면 무조건 손을 들고 혼자서라도 밤을 새워가며 제안서를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토록 좋아했던 문화예술 콘텐츠의 한복판에서 내가 전혀 즐겁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충격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예술은, 나에게 '주체의 경험' 그리고 '다양성'을 의미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생산자로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감각, 새로운 가능성과 만날 수 있는 기회들 말이다. 그래서 문화예술 일을 포기한다는 건, 내게는 '주체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관객으로만 남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꼭 첫사랑을 잃은 사람처럼 시들시들 우울해졌다. 서울거리예술축제가 열리던 날,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꽃을 보며 '한때는 나도 저 현장에 있었는데…'하며 청승을 떨었다.


나에게 예술은 뭐였을까? 뭐였기에 이런 기분이 들까? 한 달에 공연 한 편도 보지 않게 되었는데, 내가 예술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 나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아니야, 좋아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꽃꽂이, 목공, 그림, 음악, 여행 … 다양한 취미에 빠져 들기도 했지만 또 금방 질렸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걸까?' 어쩐지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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