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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Jan 23. 2021

사업과 브랜딩은 무엇이 다를까

조직에서 나와 독립적으로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쩌다 보니 스토리 개발 전문 그룹 필로스토리도 운영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사업을 하는 사람, 자기만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 예술가, 크리에이터 등 자기만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그들의 비즈니스 상담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사업과 브랜드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어 글로도 옮겨 본다.




사업은,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


얼마 전, 친구에게 꽃을 선물하려고 꽃집에 들어갔다. 그 꽃집은 아주 불친절했고, 식사를 하면서 나를 응대했다. 높은 가격을 지불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몇 송이의 꽃을 건성으로 묶어 건네주었고, 나는 꽃집에서 나와 리본을 다시 예쁘게 묶어 보려고 하다가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 약속시간에는 이미 늦었고, 울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때 눈앞에 다른 꽃집이 보였다. 서둘러 들어가 몇 송이의 꽃을 더 샀다. 꽃집 주인은 기존에 내가 샀던 꽃까지 함께 예쁘게 포장해 주었다. (심지어 앞서 산 그 꽃보다 몇배는 저렴했다.) 카드까지 서비스로 건네 주었는데 그 때 내가 그 주인에게 느꼈던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저는 비즈니스의 본질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 40p.


비즈니스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와닿았던 정의가 바로 이것, '문제 해결'이다. 나 혼자서 풀 수 없는 문제를 누군가가 함께 해결해주었을 때 사람은 그 상대에게 매우 큰 애정을 갖게 된다. 문제 해결의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어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세상에 없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예술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큰 영감을 받기도 한다.




사업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게 해주는 일


최근 매거진 어반라이크의 <Working from home 집에서 일하기>를 읽었다. 다루는 주제도 좋았고 만듦새가 유독 아름답기도 했지만, 1면에 에르메스 광고가 실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편집장님의 인스타그램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려면 자본이 필요하다'는 말, '이 일은 자아실현이자 '업'이고 자생력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의 결을 유지하면서도 현실과 균형을 맞추려는 유연한 태도가 멋졌다.


우리가 빠져든 모든 일이 수입을 내고 상당한 의미까지 느껴진다면 가히 환상적일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의미와 수익성이 중첩되는 지점을 찾기 원하지만, 다능인들은 사랑하는 수많은 대상들과 함께 늘 변화하는 생명체이므로 순전히 즐거움을 위해서 (또는 순전히 돈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고 해도 수치스러울 것은 없다. 우리는 수입을 내지 못하는 관심사들에 대해 평가절하하기 쉽다. 그러나 수익성을 가치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같은 맥락으로 단지 돈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괜찮다. 분명 우리는 자신이하는 일을 싫어해서는 안 되며, 사람들은 영혼을 채워주지 않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저마다 다른 정도의 참을성을 가진다. …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수익을 낼 필요가 없듯이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낄 정도면 충분하다.

<모든 것이 되는 법>, 65~66p.


이 문장을 보고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수입을 내지 못하는 관심사들을 존중하듯,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도 존중해 줘야 한다는 말이 영감이 되었다. 그러면서 '돈', 그리고 '사업'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닫게 되었다.


사업을 한다는 건,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종종 '돈'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사업' 또는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진짜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업'이라는 말을 피하거나 다른 언어로 치환하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쩐지 의미와 가치와는 상관없이 돈만 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정말 멋진 방식으로 사업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의 틀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업의 본질은 부정할 수 없이 '돈을 버는 것'이고,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외면해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돈을 버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를 돕고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칭찬해줄만한 일이자 가치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이지,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브랜딩할 것도 없다.


사업을 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각자의 선택과 행보를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필로스토리의 경우는 어땠을까? 공동창업자 두 명 모두, 타인의 목소리에 휘둘리기보다 나의 목소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었고, 뭔가 나다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우리가 잘하는 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바로 '필로스토리다움'을 깊게 탐구하고 뾰족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자'는 것이 초기의 가장 큰 목표였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 <스토리 툴킷>을 만들고 '우리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스토리 살롱>을 열었으며, 어반플레이와 함께 스토리텔러들을 위한 공간 <기록상점>까지 운영하게 됐다. 즉, 1년여의 시간을 우리의 색을 만드는 일에 더 집중했고 많은 사람들이 '필로스토리다움'을 기억해 주었다. 자연스럽게 '브랜드'가 되어갔다.



하지만 초기 1년은, 놀라울 정도로 돈을 벌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브랜딩할 것도 없다'는 문장을 보고 머리가 띵 울리는 기분이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관과 의미, 콘텐츠를 가진 브랜드라 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 1년은 우리만의 색깔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반응할만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사업화'하려고 노력했다.


그건 결국 '개인'인 내가 어떻게 독립적으로 나의 일과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됐다.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비즈니스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부터였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첫 단계,

나는 누구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자기만의 '브랜드'가 확실하면서도 '사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브랜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건 자신이 가진 자산을 일정한 형태로 뭉쳐 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상품'의 형태로 바꾸는 일, 비즈니스적 연결의 감각인 것 같다.


그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고, 처음에는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우리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라며 만나서는 서로가 빙빙 도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자리들도 많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하지 않을 때,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의 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 그런 일이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에게 컨설팅을 요청해 온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도 바로 그 포인트였다. 특히 무형의 콘텐츠를 다루는 창작자들의 경우 더 그랬다. '문화예술'이나 '아이디어'라는 것이 손에 잡히는 '물성'이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할 수 있는지, 어떤 고객이 자신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을지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만난 창작자들은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에만 집중해왔기에, 낯선 생각의 프레임으로 '비즈니스화'를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시장 감각을 익히는 것을 일종의 금기처럼 여긴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권하는 작업은, 타겟 고객(연결되고 싶은 사람들)의 리스트를 명확하게 써보는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업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당황한다. 쓰더라도 아주 모호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인물을 떠올리며, 소설 속 인물을 묘사하듯 디테일하게 쓰는 것이 좋다.


리스트업을 해봤다면, 그 다음에는 나의 역량에 기반해 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명확한 솔루션을 구상하고 역시 리스트로 써본다. 그리고 솔루션에 이름을 지어주고 가격도 붙여본다. '나랑 같이 일하자'라고 말했을 때 상대가 '그래서 내가 너랑 뭘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같이 일할 수 있는데?'라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종종 '음식점'으로 치환해서 상상해본다. 메뉴와 메뉴판이 없는 가게에서 음식을 사먹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철학을 가진 가게, 멋있어 보이는 가게라고 해도 주방까지 들어와서 '전 당신이 너무 좋아요. 꼭 여기에서 음식을 먹고 싶어요. 제가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충분히 생각해보고 답해주실 수 있을때까지 배고파도 기다릴게요.'라고 다가와줄 열정적인 고객이 존재하리란 상상은 그야말로 판타지가 아닐까.


그래서 이런 브랜딩 툴킷을 만들기도 했다.


▼ 위 툴킷은 아래 링크에서 제공하고 있다.




브랜딩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스스로

잘 알아주는 것에서 출발한다.


앞서 '브랜드'가 꼭 '사업'이 되지는 않는 경우를 이야기했다면, 반대로 '사업'을 매우 잘 하고 있고 돈도 잘 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랜딩은 잘 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다. 그리고 '브랜딩'에 대한 오해도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멋있고 화려한 디자인, 멋진 문장,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독특한 컨셉, 그런 것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울타리를 세울 줄 아는 브랜드를 존경한다. '정체성의 경계선'을 그을 줄 아는 자는 강하고 현명하다. 자신이 상대해야 하고, 상대하고 싶은 고객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이 선을 긋는 행위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에게만 상품을 판매하겠다는 배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오히려 제품의 본질을 공유하고, 고객과 더 적극적으로 관계 맺기 위해 똑 부러진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의 내적 장애를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더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손을 잡는 브랜딩>, 45p.


이 문장을 보고 '울타리를 세운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기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브랜딩 역시, '자기다움'을 스스로가 먼저 발견하고 인정해주는 것, 그것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접점에서 지속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계속해서 일의 기회들이 이어지다보면 '나' 자신의 인정보다 '타인'의 인정이 앞설 때가 있다. 그렇게 양적인 성장을 오랫동안 이어오다보면, 스스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되고 '나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쉽게 답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분명히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을 스스로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나다움'을 발견하고 또렷하게 세우지 못하면 '차별화'가 어렵고, 가격 경쟁으로 승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브랜딩이란,

내 안에서 발견한 언어로

나를 표현하고 연결되는 일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 중 가장 좋아하고,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나는 내 일을 어떤 철학으로 하고 있나요? 어떤 것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나요?"

"나의 고객들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가요? 그 사람들은 나의 어떤 부분을 가장 좋아해 주나요?"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본질적인 질문들이 필요하다. 바깥의 요구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질문이다. 내 일의 본질을 어떤 태도로 소개하고 알리느냐에 따라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창작이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일이라면, 사업은 타인의 마음을 깊게 이해하고 그들의 욕망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리고 브랜딩은 그 사이에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스스로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 사이에서 현명하게 균형을 맞추며 나아가는 일 같다. 필로스토리에서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이 일을 돕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다운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고유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리하여 세상이 더욱 다채로워지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예술경영이기도 하다.



 당신의 브랜드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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