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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Sep 15. 2019

문화예술을 위한 경영에서 문화예술적 경영으로

제 3의 예술경영을 연구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기업과 문화예술'
수업이 변화한 이유



2019년 9월 3일, 무려 6년만에 ‘기업과 문화예술’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왔다. 그 사이 시대가 변화했고 예술의 흐름도 바뀌어 6년 사이에 ‘기업과 문화예술’ 수업의 방향성 또한 달라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의 ‘기업과 문화예술’은 최초에는 메세나를 연구하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즉, 문화예술을 위한 경영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과목인 것이다.


그러던 중, ‘예술이 기업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됨에 따라 이 수업은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문화예술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 문화예술을 통한 경영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변경된다. 문화마케팅, 체험마케팅, 공간경험, CEM 등의 키워드가 제시되는 시대상과 맞물리는 변화였다. 기업과 문화예술의 협업 양상에 대해 정리한 보고서를 계기로, 기업과 예술을 연계하는 아르꼼 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유럽에서 ‘예술적 개입’의 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는 아티스트들과 기획자들을 초청해 컨퍼런스를 주최하기도 했다. 나는 그 시기에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디자인하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거나, 단순한 취미활동 혹은 유희의 대상으로 예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현 시대에서 예술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가?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예술, 삶을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로 전환하는 예술, 그리하여 삶을 긍정으로 이끄는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의 개념을, 장르 기반이 아닌 태도 기반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본질에 부합한다면 어디까지를 예술로 규정할 수 있을까? 또 그 실천 방법은? 그런 상상들을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올해 특별한 강사가 연단에 서게 됐다. 바로, 록담 (백영선)이다. 그는 일상에 영감을 부여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문화매개자, 그리고 시대를 전환하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실천 사례들과 몸으로 겪어낸 생생한 이야기를 15주 동안 들려줄 예정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시간 속에서 문화예술적 경영(삶의 문화예술경영)을 연구하는 예술경영 연구자로서 기록하고 사유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내게 됐다.





예술, 예술가, 예술경영
개념 재정의하기



기업과 문화예술 두 번째 수업은 가벼운 빈 칸 채우기 놀이로 시작됐다.


○○○는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정의한다.
○○○는 한 가지에 광기 어릴 정도로 몰두한다.
○○○는 언제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남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는 비전에 집중해야 한다.


모두 어떤 책에서 발췌한 문장들이었다. 빈 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연스레 '예술가'라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원문에 삽입된 단어는 '창업가'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술가와 창업가의 성질이 비슷하며,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예술가'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잠깐, 흔들린다.


예술가는 (           )이 많다.
예술가는 (           )이 적다.
예술가에게 고마운 점은 (           )이다.


우리가 예술, 그리고 예술가의 역할과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꺼내보는 작업도 진행했다. 제 나름으로 정의내린 여러 개념들을 한 데 모아서 봤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부분 예술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예술가에 대한 정의가 매우 현실적이고 때론 냉소적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예술가는 짐이 많다', '예술가는 화가 많다', '예술가는 직업이 많다' 등등.)


하지만, 분명한 건 다들 예술의 '가치'를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실에 지쳤어도, 가끔 회의적이어도, 결국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순수하게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일상에서 지나칠 법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힘', '불편한 것을 마주하게 하는 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하는 힘', '문제를 해결하는 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힘' … 예술이 가진 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역시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장르화되고 범주화된 예술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서의

예술 탐구하기



'예술'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대부분은 특정한 장르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갤러리에 걸린 작품이든 무대 위의 퍼포먼스든 '완성된 작품'의 형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어떤 결과물로만 한정되는 것일까. 과정으로서의 예술, 태도로서의 예술, 생활 바깥이 아닌 생활 안의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예술은 동사다. 과정 또는 행위를 의미하던 단어들이 지금에 이르러서 그 결과물만을 뜻하는 의미로 굳어졌다. 공연장에나 전시장에 완성된 작품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이란 일련의 경험이나 실험처럼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짜 맞춰서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그것은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것을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터득한 기술을 일상의 삶에 적극 활용하는 과정이다. 즉 예술이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보다 확실하고 실질적인 방법인 셈이다. 예술이 동사가 되고 과정이 될 때 모든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삶의 예술'이 던지는 문제 제기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 박승현


영국의 문학이론가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예술을 '커뮤니케이션'이라 정의했다. 예술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다시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예술은 고독하고 재능 있는 개인의 창조물이 아니다. 독특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경험을 전달하고 공통의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인간관계를 조직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자아와 타인의 공감대를 표현하며 활동적 삶을 이어간다.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니꼴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는 예술의 개념을 지각과 정서들의 구축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예술적인 활동은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태와 양상, 그리고 기능이 변화하는 게임이지 불변하는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사회적 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하는 것과 이미 변화한 것, 변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예술은, 만남의 상태이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관계적 미학은, 예술의 '형태'를 논하는 이론이다.


전문예술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프로젝트에서도 대안적 예술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거리와 건물, 공원과 같은 사회적 공간을 예술의 무대로 삼아 지역주민들과 함께 예술활동을 벌이는 작업들이다. 국내에도 몇몇의 사랑스러운 창작자들이 그러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행하는 예술적 실천 활동은,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생산의 특별한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작업은 무대 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2016년 프로젝트 '입정동봄바람'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
- 오스카 와일드



일상생활 속에서 참여하며 공동의 의미를 발견하고 토론하고 창조해가는 강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서의 예술은, '자기목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자기목적적(Autotelic)이라는 단어는 '미래의 이익에 대한 기대 없이 단순히 그 자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상이 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경험이 자기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개인은 활동 자체를 위해 주의를 기울이지만, 자기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관심은 그 결과에 집중된다.


'행동의 결과(성과)'가 아닌

'경험의 질(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어떤 일이 생길까.


예술은 예술가의 작품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모두의 일상 생활 속에서 '플로우'를 일으키는 활동이다. '플로우'는 자신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심리학에서는 인생 주제(Life Themes)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각 개인의 인생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해주는 궁극적 목적과 관련된 일련의 목표들을 지칭한다. 우리는 '플로우'를 통해 자신이 무언가 하고 싶은 도전을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목표를 정한다.





예술경영의 모습을

다르게 상상하기



두 번째 수업의 마지막은, 예술경영에 대한 짧은 정의문이었다. 간결한 문장이지만, 이를 정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고 험했을 것이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학기의 수업에서는 다양한 '예술경영'의 유형들을 함께 탐구한다. 그리고 함께 상상한다. 단순히 예술의 생산과 소비를 매개하는 존재로서의 예술경영자가 아닌, 문화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형태로 마름질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술경영자를.


국내에서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예술의 개념과 실천 사례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로 인해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 같아서 기대 된다. 꾸준히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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