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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Sep 30. 2019

기획자의 수집노트 : 오래된 열쇠

프랑스 파리 생투앙 벼룩시장

‘열쇠’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야기. 나에겐 단연코 <비밀의 화원>이다. 나무덩쿨 아래 자리한 비밀스러운 문, 그 너머에 숨겨진 아름다운 화원에 대한 이야기는 소녀의 환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덕에 나는 시골집에 갈 때마다 열쇠를 찾아내겠다며 온 마당을 파헤치고 다녔다. 이제는 번호를 누르거나 가져다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 ‘열쇠’는 여전히 나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것만 같은 은밀한 존재다.




이 열쇠를 발견했을 때 내가 그냥 돌아설 수 없었던 이유다. 작고 동글동글한 장식들이 촘촘히 장식된 조금 큰 열쇠와 물결처럼 부드럽게 굽이치는 모양새의 작은 열쇠.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을지 상상해보면 더욱 재미있다. 무엇을 열기 위한 열쇠였을까? 누가 만들었을까? 열쇠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비록 열쇠를 판매하던 상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글쎄, 아마도 작은 건 문을 여는 열쇠였을 거고, 큰 건 건물의 열쇠였을거야."라고 말할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파리의 생투앙 벼룩시장 한 켠, 오래된 열쇠들만 가득히 늘어놓은 어느 가게에서 발견한 물건들이었다. 나는 이이 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가게 주인은 들뜬 얼굴로 열쇠를 하나씩 짚으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장식이 화려한 열쇠는 구하기가 어려워. 조금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아름답지.”


그는 판매상이기 이전에 열쇠 수집가였다. 단 하나의 사소한 주제에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들 수 있다니. 사실 그건 내가 처음 파리에 반하게 된 이유이기도, 아직까지 그 마음을 잃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리에는 그런 사람들이 가득했으니까. '나는 어떤 주제에 이토록 골몰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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