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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Jan 23. 2020

우리가 연남동에
기록상점을 열게 된 사연

필로스토리의 기록상점 운영일기 | 첫 번째 이야기

요즘 필로스토리는 연남동에서 기록상점이라는 공간을 오픈하고 운영하고 있다. 기록상점은 어반플레이에서 '쉐어빌리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 '쉐어빌리지'의 개념이 참 재미있다. 크리에이터의 콘텐츠와 지역의 유휴공간을 연결해 혁신적인 로컬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인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지역과 크리에이터가 함께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고, 커뮤니티 중심의 동네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참 흥미로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쉐어빌리지'의 협업 크리에이터가 될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연남동의 한 공동주택에 기록상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공간의 쓰임을 계획하고, 구석구석 온기를 불어 넣는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기록상점을 만들고 오픈하는 일은 정말 빠르게 진행됐다. 우리가 기록상점과 함께 하게 된 사연과 그 과정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참 많았는데, 눈코뜰 새 없이 달려 오느라 이제서야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2019년 8월
{ 이야기의 탄생 : 스토리 살롱 }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스토리 살롱이었다.


성수동의 장인들과 아티스트들이 만들어 낸 물건들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내고 마켓으로까지 연계시켰던 ‘메이드 인 성수’ 프로젝트가 끝나고 필로스토리가 시작한 첫 번째 일은 필로스토리 오리지널 프로젝트 ‘이야기의 탄생’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꺼내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공간이 없어 거리를 유랑하던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결에 맞는 공간이 필요했고, 로컬 크리에이터 라운지 연남장에서 '스토리 살롱'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보신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다. "일단 연남동 투어부터 하시죠."




2019년 9월
{ 연남동 투어 }


기록상점의 첫 인상


그렇게 시작된 연남동 투어. 오픈을 앞두고 한창 공사 중인 '연희대공원'과, 식음료 분야 창작자를 위한 '연희회관'까지 함께 둘러봤다. 그리고 그 날 아직 비어 있던 기록상점과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어반플레이에서는 이야기가 모이고 축적되는 개념의 공간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러한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할 크리에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뒤이어 함께 이 공간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을 주셨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2019년 10월
{ 기록상점 기획 착수 }



당시 사무실이 없었던 우리는 ‘오늘은 어디서 만날까?’라는 대화로 매일 아침을 열곤 했다. ‘언젠가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적는 것이 일상이었다. '창고라도 좋으니 남는 공간 있으면 우리 좀 넣어주세요.' 농담 섞인 진담을 하고 다녔다. '이야기의 탄생'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우리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우리의 색깔을 담은 공간을 함께 만들고 오픈할 수 있다니.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카페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비어 있는 공간을 캔버스 삼아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
{ 기록상점 공사 }

오픈 일주일 전의 풍경


공사 현장은 설렜다. 도면과 스크린 위에서 춤추던 그림들이 실물이 되어 눈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쁘게 일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고생하십니다!', '너무 예뻐요!'를 외치며 팔짝 팔짝 뛰어 다녔고, 마치 우리의 집을 짓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오픈일도 정했다. 오픈 파티도 계획했다. 그러나 오픈 전 날, 늦은 밤까지도 현장의 손길은 바삐 움직였다. "우리 오픈할 수 있을까요?" 어반플레이의 공간과 디자인을 총괄하는 동길 디렉터님이 분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떻게든 해야죠." 어반플레이와 필로스토리. 다른 회사이지만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 느낌이 신선했다. 그리고 오픈 날이 되었다.




2019년 11월 30일
{ 기록상점 오픈 }


오프닝 파티 현장


비어 있던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섰다. 어반플레이와 필로스토리의 인사말과 공간 도슨트 프로그램으로 오프닝 파티가 시작됐다. '이야기의 탄생 : 스토리 살롱'으로 인연을 맺은 크리에이터 기은님이 토크를 진행해 주셨고, 사실주의베이컨의 윤서 언니가 이 날을 위해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주었다. 기록상점 오프닝 기념전시 '생활기록부RECORD YOUR LIFE'에도 여러 사람들의 흔적이 담겼다. 자신만의 키워드로 생활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일상 속 기록물들을 소중하게 모아 전시했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했던 '이야기의 탄생 : 스토리 툴킷'의 판매전도 열었다. 행사나 이벤트는 수도 없이 열어 봤지만 호스트가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 공간을 계속해서 가꾸고 유지해 나간다는 건, 또 다른 감각이었다.





2019년 12월
{ 이야기 작업실의 시작 }


12월 이야기 작업실을 함께 해 준 고마운 사람들


그렇게 우리의 연남동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필로스토리는 기록상점 3층의 살롱 공간을 전담하게 됐고, 우리는 이 곳에 이야기 작업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야기를 읽고 쓰는 일을 하는 필로스토리의 작업실이자, 자신만의 이야기로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공동 작업실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이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뭐였어?' 우리는 스스로의 욕망을 되돌아보며 이 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쭉 적어 봤다. 그리고 12월 한 달 동안 그 작업들을 아주 작고 가볍게 모두 시도해 봤다. 


기록상점은 매일 느낌이 달랐다. 때로는 햇살과 웃음이 쏟아지는 대화 공간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차분하게 내면을 들여다 보는 심야 작업실이 되기도 했다. 무언가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는 창조적인 사람들이 기록상점으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서로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신이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험했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 광경들을 바라 보며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했다.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스토리 마켓 }

따뜻하고 행복했던 크리스마스 스토리 마켓


그러한 상상의 결과로 2019년 크리스마스에는 모두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스토리 마켓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이 소식이 기사로 게재되기도 했다.



우리는 기록상점이 모두가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내어 놓는 사이클을 작고 빠르게 반복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설퍼도 좋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도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의 작업에 기꺼운 관객이 되어 주면 어떨까. 너무 크고 부담스러운 무대가 아닌 작은 무대들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동료와 관객, 무대들이 개인의 작업을 지속하게 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주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날을 기점으로 이야기 작업실의 멤버가 된 사람들이 많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계획하기도 했으며, 2층에서 팝업을 진행했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동양가배관은 기록상점에 입점하게 됐다. (고로 2월부터는 기록상점에서 좋은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거.) 신기한 영향들을 서로 주고 받는다.


꿈 같은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정말로 꿈 같았다. 층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오래도록 시간을 보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느리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하루.

크리스마스 스토리 마켓. 물건보다는 사람이, 그리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마켓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이 금방 떠나지 않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좋았고, 셀러들이 서로 만나 눈을 반짝이며 교류하는 모습이 좋았고, 우리 함께 또 무언가 해보자며 상상하게 되어 좋았다.

“다들 케이크 먹으러 내려오세요!” 다 같이 나누어 먹었던 커다란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우르르 모여들어 행복해하던 얼굴들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기록상점은 11월 30일, 어반플레이와 필로스토리가 함께 오픈한 공간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꿈꿨던 많은 것들을 아주 가볍게 실행해 봤고 여러 가능성들을 봤다. 2020년에는 이 씨앗들을 잘 키워 나가 봐야지. 지금까지 그랬듯,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영 언니와 함께.

2019년 12월 25일의 일기.




2020년 1월
{ 이야기 작업실 멤버십 오픈 }



12월에 진행한 실험을 바탕으로 2020년에는 이야기 작업실 멤버십을 오픈했다. 1월부터 3월까지 30여명의 멤버들과 함께 한다. 우리는 이야기 작업실의 공간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협업을 모색한다. 


멤버십 오픈 네트워킹 파티 :)


기록상점 멤버십 오프닝 파티에서는 '당신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당신은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스토리텔러들의 창작&교류 공간을 지향하는 기록상점의 성격 덕분인지, 다들 자신만의 무언가를 구상하고, 또 발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재미있는 건 이 날 이후부터 멤버들 간 꼬물꼬물 협업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나 이런 것 구상하고 있는데, 어때?'라며 필로스토리가 있는 컨시어지 룸에 찾아온다. 우리는 '재미있겠는데? 이걸 이렇게 해 보면 어때? 이 때 오픈할까?'하며 실행으로 연결한다.




2020년 1월
{ 이야기 작업실 SEASON 1 시작 }



이야기 작업실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다. 스토리 디렉팅 그룹 필로스토리의 <이야기의 탄생 : 스토리 워크숍>와 라이프 아카이브 프로젝트 <MY RECORD BOX> , 치유 작가 리을의 <Letter for Me>, Treble&Bass의 <나의 이야기가 음악이 된다면> 네 개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시그니처 프로그램은 나의 이야기를 특정한 결과물로 만들어볼 수 있는 콘텐츠 창작의 경험을 제공하는 기록상점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영감을 불어 넣어 주는 호스트가 함께 하며, 2~3회의 긴 호흡으로 진행된다.




2020년 1월 23일
{ 2월 시그니처 프로그램 오픈 }


그리고 오늘, 이야기 작업실의 2월 시그니처 프로그램을 오픈했다. 멤버가 아니어도 참가가 가능하다. 2월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은 총 6개. 멤버들과의 수다에서 탄생하게 된 프로그램도 있다. 기록상점 예약 페이지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또 이 외에도 우리가 좋아한 브랜드, 우리가 좋아한 작가와 함께 하는 재미있는 원데이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밀린 이야기를 한 번에 몰아서 쓰느라 적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앞으로는 매주 한 편씩 기록상점 운영일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려고 한다. 기록상점에서는 매일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필로스토리가 기록하는 기록상점 운영일기. 기대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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