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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Feb 18. 2020

브랜드 스토리란 무엇인가?

필로스토리의 스토리 스쿨 | 브랜드 스토리 디깅클럽 ①

지난 주말, 친구들과 성수동에서 만났다. '성수동이라면 내 구역이지!' 우쭐한 마음으로 동네 도슨트를 하기 시작했다. '성수동이 예전에는 온통 배추밭이었대.', '수제화 거리라고는 하지만, 정작 공장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이 수제화 가게는 내피를 천연 가죽을 사용하고 있어서 착용감이 좋아. 이 곳의 사장님은 일명 싸롱화를 만들던 장인이셔.' … 친구들의 눈이 커졌다. '스토리 푸는 것 봐. 대박이다.' 스토리텔링 덕분이었을까. 평소엔 가지도 않던 가게들을 가고, 꽤 오랜 시간 거리를 걸으며 이 곳 저 곳을 구경했다. 


스토리는 중요하다. 스토리를 들으면 그 대상에 몰입하게 되고, 때론 애착을 느끼게 된다. 경험의 시대가 도래하며 스토리의 힘은 더더욱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 스토리라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기에, 다들 어렵게 느끼는 것 같다. 필로스토리가 예술의 영역이었던 '스토리'를 손에 잡히는 형태로 만들어보자며 창업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2월, 우리는 브랜드 스토리 디깅클럽을 시작했다. 브랜드의 관점으로 스토리에 대해서 탐구해보는 모임이다. 기록상점 이야기 작업실의 멤버들이 그 과정에 함께 하고 있다. 첫 번째 모임에서는 여러 책을 함께 읽으며 '브랜드 스토리란 무엇인가'를 탐구했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몇 가지 실마리들, 생각의 단초들을 여기에 기록해 본다. 




브랜드 스토리,
관계를 맺는 능력.



스토리는 그 자체의 고유한 방식으로 고객을 사로잡고 기쁘게 하며, 고객과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한다.

「린 브랜드」, 106p.


위 문장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스토리를 관계를 맺는 능력이라 정의한 것이다. '관계'는 「린 브랜드」의 핵심 키워드다. 이 책에서는 브랜드를 기업과 고객 사이의 '관계'로 규정하고, 브랜드를 개발하는 과정을 '관계를 성숙시키는 사이클'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스토리는 최초의 관계를 형성하는 '개발' 단계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요소로 꼽힌다. '가치는 실험과 반복, 그리고 혁신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제시된 '최소 가능 브랜드(MVB, Minimum Viable Brand)'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최소 실행 가능 브랜드 캔버스 (Minimum Viable Brand Canvas)


브랜드는 관계의 영역이다. 그리고 관계는 쌍방향이다. 만약 당신에게 어울리는 색깔이 빨간색이라고 목청껏 외쳐도 사람들이 파란색이라고 본다면, 아마 당신은 약간의 보라색, 사실상 파란색을 띠고 있을 것이다. 브랜드는 당신 그리고 당신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된 경험이다. 브랜드는 당신 혼자가 아니라 당신, 고객, 팀, 기업 사이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브랜드를 현실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브랜드가 의미하는 바를 임의대로 규정할 수 없다.

「린 브랜드」, 37~38p.


창업가를 비롯한 일을 하는 모두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 이유에 자신을 갖고, 사람들이 이 스토리에 공감해 자신의 일부로 느낄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 브랜드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고군분투하고 도전한다. 우여곡절을 겪고 좌충우돌하며 상처 입는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를 성취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이전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고, 그에게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린 브랜드」, 115p.


그런 의미에서 이 문장 또한 좋다. 브랜드 스토리가 기억하기 쉬운 슬로건이나 언어적 결과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 브랜드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험과 과정을 디자인하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겠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너의 공감 영역.



가장 좋은 스토리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고객의 니즈에서 시작한다. 당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 즉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사람에게서 시작하지 않는다. 필요를 채워 이익을 얻으려는 당신이 아니라, 필요가 있는 고객으로부터 출발한 당신에게서 나온다. "나는 항상 베이글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혹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만의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설립하는 데 열정을 쏟아 왔어요."라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이런 종류의 스토리는 누구와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린 브랜드」, 110~111p.


재미있는 이야기는 개연성과 필연성 외에도 '보편성Universality'이 필요하다. 보편성은 상식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는데, 개연성을 갖지 못한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보편성이 결핍되어 있다. 

「팔리는 콘텐츠의 비밀」, 25p.


브랜드 스토리 디깅클럽 첫 날, 이 미묘한 차이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다. '나'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인지, '너'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답은 둘 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서 출발한 진실한 이야기 중에서, '너'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활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여주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창업가의 브랜딩」, 166p.)'는 조언을 눈여겨 보자. 


'예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예술의 본질이 '커뮤니케이션'이라 믿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예술가란 누구보다도 타인의 세계에 깊숙히 빠져들 줄 알고, 공감을 일으킬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대화와 사례를 통해,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브랜딩 및 비즈니스의 흐름이 예술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는 걸 느끼고 있던 차다.


왜 수많은 뮤지션 중에서 오직 방탄만이 전 세계 아미의 열광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고 있는가? 음악적 탁월성과 진정성, 소통은 방탄과 아미가 만나는 데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들 조건만으로는 아미와의 만남으로 이뤄진 방탄의 성공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탄이 지향하는 방향과 아미가 희망하는 방향 간의 조응 내지 공명이 방탄의 현재를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BTS 예술혁명」, 13~14p.


예술적인 활동은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태와 양상, 그리고 기능이 변화하는 게임이지 불변하는 하나의 본질이 아니다. … 2차 세계 대전 말에 비약적으로 일어난 도시화의 일반화는 놀라운 사회적 교류의 증가와 개인들의 이동성 증대를 가져왔다. … 예술 작품이 이 도시적 맥락 안에서 오랫동안 귀족적 사치로 여겨질 수 있었다면, 작품의 기능과 그 전시 방식의 변화는 예술적 경험에 있어 증가하는 도시화를 증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이상 현대미술 작품을 쭉 돌아봐야 할 하나의 공간으로 생각할 수 없다. 작품은 이제 경험해야 할 지속적인 시간으로서, 제한 없는 대화를 위한 통로로서 드러난다. 

… 예술은 이제 인간들 사이의 관계의 영역에 몰두한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점점 더 명확하게 그의 작업이 관객들 사이에서 만들게 될 관계들이나 사회성의 모델을 발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 집회, 만남, 시위,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유형의 협력, 게임, 파티, 연회의 장소, 요약하자면 만남과 관계를 만드는 방식들 전체가 오늘날 그 자체로서 탐구될 수 있는 미학적 대상의 전형이다. 

「관계의 미학」,  1~49p. 


좋은 스토리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참여의 여지를 열어 놓는다. 브랜드 스토리 또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관계 맺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브랜드 스토리를 고정불변의 완성된 콘텐츠가 아닌 유동적인 관계망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관계 기반의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존재 가치와 이유를 찾고, 이를 지키는 것이다. 왜(WHY)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며 스스로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스토리를 말하는 방법,

꾸준한 실행, 진실된 축적


창업의 이유 또는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스토리를 겉만 반지르르하게 만드는 마케팅용 포장지로 생각하지 마라. 스토리는 고객과 당신을 연결하는 강력한 도구다. 확대 해석하지 말고, 과장하지 말고, 횡설수설하지 마라. 창업 스토리는 진정성을 담아 현실적으로 호감 가는 방법으로 당신이 이 일을 하고자 하는 포부를 전달할 수 있을 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 접점이 바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참여하는 출발점이 된다.

자신을 항상 스토리텔링의 도구라고 생각해야 한다. 크건 작건, 모든 '일'에는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당신만의 독특함을 담고 있어,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잠재력이 있다. 스토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린 브랜드」, 116p.


거창한 비전 만들기를 멈추고 스토리를 말하는 방법을 배워라. 스토리를 구조와 과정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만들어라. 스토리가 살아 숨 쉬고, 성장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재창조되게 하라. 진정한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여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비전이 아니라 스토리가 필요하다.

「린 브랜드」, 122p.


모든 스토리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업이나 브랜드가 과거에서 현재까지 쌓아온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처럼 스토리는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다양한 경험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과거 및 현재의 이야깃거리 중에서 사람들이 공감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스토리를 찾아내고 또 꾸준히 만들어가야 한다.

「창업가의 브랜딩」, 104~105p.


그러니까 스토리는 결국 철학이다. 그리고 이는 단숨에 이루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꾸준히 실행하고, 진실된 태도로 그것을 기록하고 축적하는 것, 이를 매개로 소통하며 스스로의 고유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스토리, 자기 인생의 철학을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의 결과물인 제품과 서비스가 사람들과 소통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린 브랜드」, 117p.)는 문장 또한 눈여겨 볼 수 있을 것 같다. 진실하게 축적된 이야기라면, 그 브랜드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같은 철학이 녹아 있을테니까. 


“구로자와 아키라나 스탠리 큐브릭 등 거장 감독들도 자신을 학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혼자 보기 위해서 찍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므로 그저 묵묵히 견디며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야만 합니다.”



'나다움'의 발견,

자기객관화의 기술.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은 자기객관화를 통해 '나다움(고유성)'을 발견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보유한 스토리 중 어떤 것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인지,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나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 아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연습? 자기객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게 뭐고 뭘 했을 때 질리지 않을 수 있고, 나는 결혼이 적합한 사람이니 얼른 결혼해야 하고, 그렇게 자기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겉으로는 다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나만 볼 수 있는 단점과 부끄러운 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을텐데 그것까지 낱낱이 들여다보는 연습을 자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창업을 하고 나서도, 삶에 대해서도 대단히 만족도가 높아질 것 같습니다.

프릳츠커피컴퍼니 김병기 대표 인터뷰
「창업가의 브랜딩」, 99p.


나를 안다는 건 '부족함을 안다', '자족한다'는 것이죠.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거죠. 

결론적으로 나를 너무 의식하면 부자연스러워집니다. 나를 덜 의식해야 다른 사람과 섞여 살 수 있어요. 일도 마찬가지죠. 때로는 '그냥 해 보자'는 마음으로 사회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접점을 만들어 보려는 게 더 나은 자세예요.

예전에 《여행 도중에》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만남의 일부다"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원래 '나'는 자기 안쪽으로 파고드는 질문인데, 만남의 축적으로 '나'를 바라본 게 흥미로웠어요.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다움'을 찾지 않고 직업의 안정성에 의존한 채 계급사회의 계단을 올라가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거예요. 샐러리맨에 머물지 말고 농사, 자원봉사, 사회 공헌 등 다양한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래야 후회가 없어요. 텃밭 이야기도 했지만 머지않아 사회관계자본이 돈과 상품경제보다 중요한 시기가 올 거예요. 행복과 풍요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500만엔의 월급쟁이가 200만엔의 월급쟁이보다 행복할 거라는 단순 비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반드시 여러분의 '때'가 옵니다,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118~134p.


여기에서 내가 눈여겨 본 포인트는, '나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매개(도구)'다. '나다움'을 발견하고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나와는 다른 존재들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서는 '나다움'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이해하려면 나부터 독립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면 자기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 과정에서 나조차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 곳에 머물려 해서는 안 된다.”




어렵지만 꼭 정리해 보고 싶었던 생각들을 정리해볼 수 있었던 브랜드 스토리 디깅클럽 첫 번째 시간. 첫 번째 시간에는 '브랜드 스토리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봤고, 두 번째 시간에는 '브랜드 스토리의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한다. 아마 이 작업은 우리가 브랜드 스토리를 개발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실마리가 되어줄 것 같다. 필로스토리의 스토리 디깅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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