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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Mar 11. 2020

브랜드 스토리 요소로서의 오리지널리티

필로스토리의 스토리 스쿨 | 브랜드 스토리 디깅클럽 ②

브랜드 스토리 디깅클럽 두 번째 시간, 이 날은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다. 각자의 기억에 남은 특별한 브랜드 스토리, 자신이 만들고 있는 (혹은 언젠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모든 브랜드 스토리는 '사람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됐다.


인물, 즉 캐릭터가 주어진 배경 속에서 사건을 만들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스토리다. 그래서 스토리의 3요소가 ‘인물, 배경, 사건’이다. 스토리텔링은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의 3요소인 인물, 배경, 사건을 통해서 그림이 그려지게 한다. … 브랜드 스토리텔링은 브랜드에 인물, 배경, 사건을 집어넣어 구체화하는 것이다.

브랜드 스토리 10가지 기법


하지만 모든 인물의 스토리가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끌리는 인물(캐릭터)에게는 분명 그에게만 존재하는, 생생한 오리지널리티(고유성)이 있다.


브랜드 정체성이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특성화된 요소들로 인해 독특하다고 인지되는 브랜드 역량’이다.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 38p.


브랜드 스토리라는 것은, 그 브랜드(또는 인물)가 가진 고유한 성질을 얼마나 잘 발견하여 커뮤니케이션하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 스토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을 잘 '발견'하고 '정리'하는 것에 가깝다.





오리지널리티의 포착,

끝까지 추적하기



그렇다면 어떤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구별짓는 고유성(오리지널리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오리지널리티가 만들어지는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발견하고 정리할 수 있을까? 나는 작가들의 작법에서 그 단서를 찾아 보기로 했다.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스프레드시트로 표를 하나 만들어 소설을 쓸 때마다 사용한다. 비중이 있는 인물이면 그의 외모부터 습관, 취향까지 다양한 항목에 구체적으로 답해본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57-58p.


위 글을 읽고 나니 생각나는 최근에 보았던 송은이 인터뷰도 떠올라 옮겨 본다. 송은이는 다른 사람의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해 그에게 꼭 맞는 판을 잘 깔아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참 좋았다.


-저도 직업상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자주 찾아요. 하지만 타인의 장점은 내게 필요한 만큼만 보다가 멈추기 마련인데 송은이씨는 끝까지 남의 매력을 파고들어 어디다 어떻게 쓸지까지 끝장을 보시는 것 같아요. 보통 자신 외에는 그렇게 들여다보기 어려울 텐데요. 김한희 매니저의 노래 실력을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보여준 것도 작정한 것 아닐까 짐작했어요.

=작정했죠. 한희 매니저가 부른 소절이 더 많고, 맞아요. 음역도 한희 위주로 잡았어요. 저도 예능 시작했을 때는 일등하고 싶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상당히 일찍 숙이처럼 웃기는 재능보다 옆에서 웃기게 해주는 쪽에 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처음 깨달았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어요. 이것도 재능인가. 그러다가 내가 토스해준 멘트로 웃겼으니 저애가 나한테 고마운 마음을 가질까? 고마워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시기가 잠시 있었고요. (웃음) 시간이 더 흐르니 그 자체가 즐거워지는 경지가 됐어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 변화예요. 주제 파악을 정확히 했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웃기게 만드는 일이 더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됐어요. 사람을 적당히 보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게 뭔지 생각해요. 하하, 임상실험을 하는 거죠. 실험당하는 걸 그들이 모르죠. (웃음)

김혜리. "송은이 인터뷰 - 작당모의의 명인"(씨네21)



어떠한 대상의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한다는 건, 오랫동안 끈질기게 그 대상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것이 아닐까. 김영하 작가에게 그러한 추적의 도구(스프레드시트)가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궁금해 검색을 해 보았지만 그건 나오지 않았고, 시나리오 작가들이 활용하는 몇 가지 툴킷들을 발견했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덕분에 오리지널리티의 발견을 위한 툴킷 구상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오리지널리티의 조건,
시간의 축적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꾸준히 작업을 쌓아 나가면서 스스로를 '버전 업'해야 한다. 즉, 견뎌야 한다. 이 생각에 가장 영감을 준 문장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발견했다. 그는 '오리지낼리티는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일 때에는 좀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이라 말하며,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제시한다.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form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 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제 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하여, 97-98p.


이 문장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시간'에 대한 언급이었다. 어느 시기에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표현자가 불쑥 튀어나와 세간의 강한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단순히 '한 방'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으며, 시간의 검증을 거쳐야만 오리지널리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의 축적'이라는 것은 '지속력'과 '자기혁신력'을 담보한다.


최근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라는 책에 폭 빠져 들었다. '사적인 서점'이라는 자신만의 일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결국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과 같았다. 사회가 만든 일자리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나에게도 큰 위로와 영감을 선사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삶 속에서 나는 언제나 쉽게 지치고 쉽게 실망했다.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계획한 대로 성실히 살아간다고 해서 원하는 목표가 모두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인생에는 변수가 많기 떄문이다. 그러니 그저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고,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바라던 모습이 된다는 걸 일본 서점 여행이 알려 주었다. 그 깨달음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바꾸었다.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178-179p.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결국,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일을 발견해 꾸준히 해 나가면서 몸집을 불려 나가는 것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순간 순간의 나를 인정하면서,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면서, 목표나 결과에 매여 너무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가게를 만든 시점에서 완성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자세가 제일 중요합니다. 바로 결과를 바라지 않은 채,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동기라든가, 노력 자체를 즐거우한다든가, 좋아하는 것을 점점 갱신해 나간다든가, 그러한 자세가 가장 중요해요.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축적해온 시간이 가게의 내용물이 되어가는 일은 분명히 재미있습니다.

우치누마 신타로. <앞으로의 책방 독본>, 261p.





오리지널리티의 발견전달,

마이너스의 기술


나 자신의 체험에 따라 생각한 것인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엇을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정보 과다라고 할까 짐이 너무 많다고 할까, 주어진 세세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자기표현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런 콘텐츠들이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엔진의 작동 정지 같은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니 어떻게도 뛰어볼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우선 필요없는 콘텐츠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정보 계통을 깨끗하게 해두면 머릿속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지, 혹은 전혀 불필요한지를 어떻게 판별해나가면 되는가. 이것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자면,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약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제 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하여, 106p.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루키는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에 주목해 보라고 말한다. 외부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지나치게 검열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하는 아주 중요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너무 깊숙하게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달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자잘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 중 어떤 것은 우리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개의 사건들에 일일이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다. 현실은 줄거리가 없다. … 이야기는 다르다. 현실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만 질서가 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듯, 작가들은 현실에서 어지러운 잡음을 제거한 뒤 이를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작가는 이야기를 적절히 통제하여 독자들이 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201p.




오리지널리티의 완성,

관계 맺기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오리지널이 아닌가, 그 판단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독자와 '합당한 만큼 경과한 시간'의 공동 작업에 일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제 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하여, 100p.


나는 이 부분이 참 재미있었다. 매력적인 이야기는, 작가만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독자의 공동 작업, 즉 관계맺기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때로는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의 말이나 반응, 태도에서 나의 고유성을 발견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리지널리티라는 본질에 꽂혀 이렇게 글이 길어졌다. 결국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사람, 나의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하고 싶은 사람, 누군가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 주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영감이 되리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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