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획라이프를 만들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
올해 수많은 파도가 지나갔고 나는 그 사이에서 자주 출렁였다. 이 글은 그간 나에게 어떤 출렁임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넘어왔는지를 돌아보는 글이다. 한참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3월 즈음에 써서 작가의 서랍에 넣어 두었던 글을 6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발행해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체성을 갈아입는 느낌이었다. 기록상점을 오픈한 후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역할,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을 모으고 그들의 오리지널리티가 더욱 잘 드러나는 현장을 만드는 기획자의 역할, 공간의 일상이 매끄럽게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운영자의 역할, 멤버들을 환대하고 지원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다. 게다가 필로스토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는 창업가로서의 역할, 독립적으로 맡은 브랜딩 프로젝트와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획자의 역할까지. 너무 헷갈렸다. 난 누구지? 분명히 내가 벌린 일이긴 한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더라?
그렇게 많은 역할을 동시에 우당탕탕 해내다 보니 당연히 일의 구멍도 아쉬운 점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또렷한 전문성을 쌓아나가는 것 같은데 내 분야는 뭘까, 희미하게 느껴졌다. 이유야 무엇이건 함께 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호흡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면 마음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런 일에 그리 의연하지가 못했다. 그래서일까. 부쩍 '일'과 '정체성'에 대한 문장들을 수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절대적으로 즐겁고 보람찬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의 재미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주관적인 문제다. 일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일의 가능성에 기회를 줄 생각을 해 보면 안 되는 것일까.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일이 지루하다”고 투덜대기 전에 ‘그럼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은?’이라며 고민을 해 보면 안 되는 것일까.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나 역시 사적인 서점을 열기 전까지 직업이란 사회가 만든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취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틀에 나를 넣는 일이라고 말이다. 사적인 서점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직업은 내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을 배웠다.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어느 날은 이 문장을 읽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많은 시간 동안 내가 나의 역할과 의미를 스스로 정하기보다 타인에게 물어왔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직업은 내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이제 스스로에게 진짜로 물어봐야 할 때라고 느꼈다. '너, 뭘 하고 싶냐'고.
그런데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자 마음이 꽤 답답해졌다. 사실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없었다. 가끔은 뭔가를 '해야겠다'는 열정이 타올랐지만 또 가끔은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을까' 시들었다. 명료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쯤, 이 문장이 마음에 다가왔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삶 속에서 나는 언제나 쉽게 지치고 쉽게 실망했다.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계획한 대로 성실히 살아간다고 해서 원하는 목표가 모두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인생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고,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바라던 모습이 된다는 걸 일본 서점 여행이 알려 주었다. 그 깨달음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바꾸었다.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지금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이 불안감에 대한 경계심이 솟았다. 회사를 다니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내가 가장 그리워했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불안해했던 시기였다.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던 내가 예술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었던 그때. 불투명한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그 순간에 온전히 나를 빠뜨리지 못했던 날들. 사무실에 앉아서 나는 그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었던 반짝임을, 나를 충만하게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더랬다.
자신의 손이 닿는 범위에서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 자신에 있는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창작을 하는 것이 하나의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쿠마 유미코. <힙한 생활 혁명>
핵심은 '나'의 '성장'이 아니라 내 눈 앞의 과업(무엇)과 그것을 해내는 방법(어떻게)에 집중하는 것이다.
제현주. <일하는 마음>
결과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태도는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만 잊는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 먼 미래를 바라 보기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하나하나를 바라보기로, 그 과정들을 진지하게 대하기로. 그 순간들이 쌓여서 나의 '일'을 만들어 낼 테니까.
내가 지난 1년을 '실험'적인 기간이라 명명하면서 ─ 나의 지금을 '현실'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과정'이라 말하며 사실은 외면해온 것이 아닌가, 라는 반성을 했다. ‘이건 내 진짜가 아니야’, ‘지금은 실험 중이니까, 이 과정을 거쳐서 언젠가 나의 진짜를 할거야’라는 안일한 마음 말이다. 지금 내 눈앞의 일들을 어떤 태도로 해 나갈 것인가, 그 과정을 나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런 태도로 일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단호하게 한 번 정해 보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단단하게 고정하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곤란하다. '나'라는 존재는 늘 바뀌기 마련이니까 스스로를 유연하게 대할 것.) 나는 음식 메뉴는 잘도 정하면서 나의 일에 있어서는 단호해지기가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그 중에 꼭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이어야 하는지, 사실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언어로,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쉽게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말해주지도 않은 채 나에게 이런 역할을 주었다고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분명하게 이야기할 것. 내가 이렇게 살고 싶다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최근에 정리한 나의 개인 포트폴리오도, 여러 사람과 함께 했던 <시시콜콜 포트폴리오 워크숍>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기획했던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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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나의 커리어 스토리는 그리 매끈하지 않다. 꼬불꼬불하고 우왕좌왕한다. 그렇게 서툰 방황 속에서 건져 올린 소소한 발견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빌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