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도, 교환학생도, 큰 흥미를 갖지 않았던 내가 '여행을 가야겠다'라고 생각한 건 졸업 직전이었다. 당시 나는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색채 구현력이 뛰어난 휴대폰을 광고하기 위해 '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컬러리스트 '장 필립 랑클로'와 함께 무색의 도시공간에 컬러를 입히는 프로젝트였다. 불문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내가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메일과 국제전화를 주고받으며 프로젝트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은 긴장됐지만 재미있었다. 내가 배우던 불어가 그저 '공부'가 아닌 '소통'을 위한 언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TVC 촬영은 그가 사는 파리에서 진행됐다. 나? 꼬꼬마였던 나는 당연히 못 갔다. 사무실에 앉아 필름에 담아온 파리의 풍경을 보며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행'에 대한 열망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파리로 가는 표부터 끊었다. 돌아오는 건 최대한 늦게. 나의 마지막 여름방학이자 첫 여행이었다.
파리 유학생의 15구 스튜디오를 서블렛으로 빌려 두 달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11시간을 날아 파리에 도착했을 때, 버스에는 '살바도르 달리'와 '피카소' 전시회 팜플렛이 아무렇지 않게 꽂혀 있었다. 피카소? 그 피카소? 그게 이렇게 일상적으로 꽂혀 있단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다 그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파리 시내였다. 은은한 버터색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게트를 손에 들고 걷는 사람들, 거리에 앉아 체스를 두고 있는 노인들이 보였다. 어쩐지 현실 같지 않아 눈을 깜박거렸다.
실제로 가본 파리는 영화나 소설, 시를 통해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아닌, 동네의 가게들과 일상의 풍경들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내 방식으로 도시를 읽어내고 감각을 흡수하기 바빴다. 그 뒤로도 돈과 시간만 생기면 파리로 가서 그곳의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했다.
산보가 산보자의 자아 정체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산보를 하면서 무엇을 보는지만큼이나 중요하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137p
나는 왜 그렇게 파리에 빠져들었을까? 파리는 나를 바꾼 도시였고 나를 알게 한 도시였다. 홀로 떠난 여행에서 나는 그 어떤 시선에도 매이지 않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도시를 읽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나에게 가장 영감을 주었던 네 개의 경험에 대해서, 그 경험이 나의 '예술하기'에 미쳤던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날 아침, 배가 너무 고파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빵집이 정말 많았다. 한 동네에 이렇게 많은 빵집이 있다는 것, 그 와중에 체인점은 거의 없고 가게마다 각자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브리오슈, 에클레어, 뺑 오 쇼콜라, 잠봉뵈르… 빵집마다 잘 하는 빵이 달라 번갈아가며 사먹는 맛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동네 주민들이 항상 줄을 서는 한 빵집은 갈 때마다 벌이 정말 많았다. 벌들이 빵 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에 또 놀랐다. (여전히 미스테리다.) ─ 균일화된 프랜차이즈의 도시, 서울에서 온 나는 '이렇게 다 다를 수도 있구나'라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의 취미는 종이 지도책을 들고 걸어서 20개의 구를 오가는 것이었다. 지도책을 펼쳐 내가 걸은 길에 색을 칠하고 다녀온 장소를 표시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파리는 서울보다 작은 도시인데도, '구(arrondissement)'별로 개성이 확실했다. 그래서 걷는 재미가 있었다. 동네마다 색깔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나와 같은 여행객도 알아볼 정도로 브랜드가 또렷하다는 것이 좋았다.
파리에서 사는 동안, 나는 일상의 감각을 배웠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맛있는 브리오슈를 만드는 블랑제리, 독특한 수제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곳, 개성 있는 작은 서점, 메뉴판에는 없는 메뉴를 웃으며 내어주는 바 … 지역의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동네 가게들이 존재한다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충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머무르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았다.
"갤러리보다도 빵집이 더 문화공간이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언급인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문화예술의 개념보다는 좀 더 라이프스타일의 문화에 집중하고 있어서 한 말 같아요.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행복감을 준다는 게 뭔가라고 했을 때, 내가 1년에 한 번도 문 두드리기 어려운 갤러리, 일반인들이 들어가기 어려운 갤러리보다는, 내가 매일 가서 빵을 살 수 있는 곳, 빵 냄새가 사회적 안정감을 줘요. 그런 오래된 빵집이 계속 10년, 20년, 내가 초등학교 때 갔던 빵집이 성인되어서도 있다는 거는 그걸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지역 문화적으로 엄청난 행복이라는 거예요. … 지역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는 국가 경쟁력에서 대개 큰 역할이라고 보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관광 콘텐츠가 된다고 보거든요."
"…사람들이 정말 살기 좋은 동네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해요. 내가 사는 주변에 단골가게 5개가 있으면 살기 좋은 동네이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리고 길거리를 한두 시간 돌며서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4~5명 되면 그게 대개 살기 좋은 동네라는 거예요.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게 엄청난 사회적 안정감을 주잖아요. 내가 커피 마시고 싶을 때 가는 카페는 커피 맛이 좀 덜하더라도 사장님이 내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는 그 단골가게, 단골가게 유무가 이 사람이 이 지역에 사는 데 있어서 대개 큰 역할을 하는 거지요."
대담 홍주석X박승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활예술>, 330~331p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동네의 다양한 상점들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지역문화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현재 내가 연남동에서 기록상점을 기반으며 '기록'과 '스토리'를 테마로 하는 콘텐츠를 창작하고, 성동구의 생활문화를 연구하고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이 때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재미있다.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벼룩시장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호기심으로 한번 들러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푹 빠져들어 주말마다 가게 되었다. 벼룩시장에서는 온갖 물건들을 다 팔고 있었다. '이런 걸 대체 누가 사?'라는 생각이 들만큼 사소한 물건들이 다 나와 있었는데, 사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건 그 자체보다 그 물건들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너무나 진지했다.
또 가만히 살펴보니 셀러마다 전문 분야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열쇠만 팔았고, 어떤 사람은 오래된 잡지 속의 그림들, 우표, 도자기, 인형… 그러한 풍경은 벼룩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도시 곳곳에 아주 사소한 취향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가게들이 많았다. 이런 가게들이 어떻게 유지가 되는걸까? 그 비결이 궁금했고 취향 시장이 단단하게 자리 잡힌 것이 부럽기도 했다.
이들이 일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이라는 물질을 추구해서 창업한 것이 아니라, '자기표현의 행복'을 위해서 창업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도 돈을 잘 벌기를 원한다. 다만, 자신의 행복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 단순히 업종으로만 분류해서는 이러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레스토랑, 서점, 빵집, 카페에 가서 보면 자신만의 가치를 담아 독립 브랜드를 만들고 콘텐츠를 담아 전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자신의 가치와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 창의적인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내는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볼 수 있다.
<밀레니얼의 반격>, 111p
역사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의 본질은 이렇게 나와 물질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물질을 나의 삶의 어디에 두는지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물질과 독립된 삶을 제안하는 탈물질주의는 개성, 자기표현,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윤리를 중시한다. 탈물질주의자가 탈물질주의 가치에 따라 살기 위해 예술, 자연, 공동체, 사회성, 창의성, 이동성 등의 경제적 수단을 선택한다. 그러나 탈물질주의가 그 자체로 하나의 통합된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탈물질의 삶의 방식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가 나와 물질의 관계, 즉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명확하게 규정한다.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7p
'저 가게는 또 뭐야'하며 웃음이 나오는 골목들을 누비며 이런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저걸 누가 사? 라고 말할만큼 사소하고 이상해 보이는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 마음은, 물질('돈')과 조금 다르게 관계 맺고 싶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에선가 서점을 보면 그 나라의 '현재'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파리에는 빵집만큼이나 서점이 많았는데, 역시나 자기만의 뚜렷한 주제를 가진 서점들이 대부분이었다. 동화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던 나는 서점마다 들어가서 어린이 서적 코너를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카테고리였다. 어린이 서적 코너에 영화, 미술, 연극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었다. 예술, 철학, 문학 카테고리도 있다. 하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고 흥미로운 내용에 예쁜 삽화까지 삽입된 수준 높은 책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의 서점이 어떤지 살펴보면, 분류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한 다양한 액티비티를 어린이들이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한 아트북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놀랐다. 놀이법과 함께 초현실주의자들에 대한 소개도 곁들이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이런 책들을 보면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예술이 (심지어 초현실주의 개념까지) 자연스레 체득될 것 같았다. 나는 너무나 어려운 이론서로 초현실주의를 배웠기에 더 놀랐다.
시집만 모아놓은 코너도 있었다. 심지어 로베르 데스노스의 시도 동화책 코너에 놓여 있었다. 데스노스의 시는 늘 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될 줄이야. 이 책으로 데스노스를 만나는 어린이라면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철학 코너. Les sentiments, c'est quoi? (감정, 그게 뭐지?) 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그 옆으로는 Le monde, les autres et moi(세계, 다른 사람들과 나), Le beau et l'art, c'est quoi?(아름다움과 예술, 그게 뭐지?), vivre ensembles, c'est quoi?(함께 산다는 것, 그게 뭐지?), le bonheur, c'est quoi?(행복, 그게 뭐지?) 등등의 제목들이 보인다.
프랑스의 어린이 서적은 '이런 것을 공부하고 배워라'라는 위계적인 느낌보다는 '이런 것도 있는데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 더 컸다. 책이라는 영역에 있어 사고가 확장된 기분이었다. 이런 종류의, 이런 형태의, 이런 내용의 책을 만들수도 있구나.
단순히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예술을 학습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는 개성을 찾는다. 개성을 지닌 사람은 타인을 시기하지 않는다. 욕심이 아니라 관심을 따른다. 여러 개성들이 만나 세상을 이룬다. 그럴 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도 건강해진다. 삶은 어떻게 살라고 정해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야 하는 숙제다.
<예술적 상상력>, 42p
작품을 진정으로 감상하는 행위는 생산에 버금가는 '하나의 경험'이다. 작품을 생산한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작품 자체에 자기 나름의 '일정한 질서'를 부여해야 하고, 이러한 '재창조'의 행위가 없다면 그것은 작품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활예술>, 37p
내가 가지고 있던 예술교육에 대한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예술을 가지고 놀면서 그 속에서 자기만의 생각과 질문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 신선했다. 예술의 역할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왜 나는 예술을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을까? 왜 나와는 먼 것으로 느꼈을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책들을 보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파리의 문화적 환경이 부러워졌고, 조금 다른 상상과 시도를 해보고 싶어졌다.
퐁피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한 곳은 전시장보다도 1층의 숍이었다. 숍에는 예쁘고 독특한 굿즈들도 많았지만, 미술을 잘 즐기기 위한 '감상법'을 아주 디테일하고 다양하게 제안하는 가이드북들도 많았다. 그곳에서 '감상법'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배웠다.
그동안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는만큼 보인다', '알아야 보인다'는 말들을 들으며 압박감을 느꼈고, 그래서 더 외면하기도 했다. 그런데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지식과 정보보다, 나에게 다가오는 감정과 어떻게 만나는지 '주체'의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는 미술 감상 교육 대신 미술사 교육, 미술이론 교육을 받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작품을 볼 때 자기 안에 피어오르는 인상, 감정,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고 나누는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과거 권위 있는 이론가, 학자들이 정리한 지식 체계를 습득하는 능력을 갖도록 교육받은 셈입니다. 거기에 시험이라는 평가까지 거쳐야 했고, 게다가 구술형 시험도 아니고 다지선다형 보기 중 정답 하나만 골라야 했으니 미술을 떠올리면 '틀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즉각 따라오는 게 무리도 아닙니다.
요컨대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의 권위는 학교가 가지고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이 경험하는 공교육 교과 과정은 우리에게 미술을 다지선다형 보기 속에서 알아맞혀야 할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세계로 소개했습니다. 지식을 암기하지 못하면 통과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 언제나 옳은 대답을 해야 하는 세계로 각인시킨 것이죠. 이를 상쇄하는 대안교육, 가정교육, 사적 경험이 있지 않은 한 미술에 대한 최초의 경험은 이렇게 굳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각자의 미술관>, 32p
그 무렵부터 나는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작품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재미있는 일이었다. 특히 현대미술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의 출발점을 보는 것도, 그걸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표현 방식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때로는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나의 일에 적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두 달을 보내고 돌아오니, '다양성'과 '주체성' 그리고 '삶'이라는 키워드가 계속해서 마음을 맴돌았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에 취업하고, 많은 돈을 벌고, 집을 사고… 모두가 '좋다'라고 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탐구해보고 싶어졌다.
파리에서 경험한 빵집과 서점, 개성 있는 자기만의 숍과 철학이 뚜렷한 갤러리…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매개하는 일상의 문화공간들이 그리웠다. 내 삶에도, 지금 여기에도, 그런 공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좋아하는 일도 그런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막막하기만 했고 꿈과 현실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친구가 이야기해 주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마감이 이틀 앞이었다. 왠지 이곳에 가면 새로운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