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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Dec 29. 2020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대학 시절 내내 공연이나 축제, 강연 등 이벤트 컨셉을 기획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판을 짜며 노는 아이였다. 친구의 생일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일, 가족 행사의 놀잇감을 준비하는 일에 유독 열을 올렸다. 그렇게 짜놓은 판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며 신나게 노는 것을 보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2년 동안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의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커뮤니티 이벤트를 기획했다.


친구들과 함께 '문화기획단 블렌드(blend)'를 만들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문화 현장을 함께 방문하고 교류하는 소풍 프로젝트, 도시의 유휴공간과 아티스트를 연계하는 공연 프로젝트 등 다양한 기획을 펼치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을지로의 마지막 단관극장, 바다극장에서 올드팝 연주와 함께 지나간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던 <오래된 이야기>라는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기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지만, 가장 아쉬웠던 건 모두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취업 시기가 가까워올수록 친구들은 '네가 하자고 해서 그냥 했던 것',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번 해 본 것' 등 다양한 이유로 활동에 뜸해졌다. 매번 함께할 플레이어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업으로 발전시킬만큼 수익이 발생하는 일도 아니었다. 1년쯤 후에는 결국 해체를 결정하게 되었다.


바다극장은 우리의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폐관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게 어떤 일일까 찾아보다 보니 심리, 광고, 마케팅, 문화기획과 같은 키워드들이 나왔다. 여러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한 강연에서 어느 유명한 축제 감독이 폭탄 머리를 하고 나타나 '집을 담보로 빚을 내서 축제를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겁이 덜컥 났다. 나는 그 정도의 용기는 없는 것 같았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 광고회사 중에 제일이라는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꿈의 회사였다. 일은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편이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들도 많았다. 어김없이 야근을 하던 어느날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계속 다니게 되면 행복할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갈수록 고민이 많아졌다. "회사에 있으면 내가 내일, 그리고 10년 뒤에 뭐하고 있을지가 그려지는 거 같아. 매일 매일이 틀에 박힌 것처럼 똑같은 게 너무 싫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투덜거렸다. 친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그 틀 안에 들어가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공부하는건데! 나는 그렇게 예측되는 삶이 좋아."


고3 시절을 지나 취준생의 시절이 오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100군데씩 지원서를 넣는다고 했다. 나 역시도 '이제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엄마와 아빠는 내가 당연히 대기업에 취업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고, 벌써부터 '초고속승진'과 '최연소 임원', '억대 연봉'과 같은 비전을 꿈꾸며 즐거워하고 계셨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과 그러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나도 사실은 저걸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헷갈렸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기대를 더 일찍 저버렸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서 답답한 마음을 안고 그 시간들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 조금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던 중 '네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학교가 있다. 그 곳에서 그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속이 시원해질지도 모른다.'는 한 친구의 말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예술경영을 알게 되었다. 어떤 종류의 고민과 생각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예술이라니, 나와는 너무 먼 단어처럼 느껴졌다.


전환점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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