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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Dec 28. 2020

예술이 뭔데?

예술이 뭔데?



이 질문은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고 예술경영이라는 전공을 선택한 순간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자, 스스로에게도 가장 많이 물어봤던 질문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예술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자기 등장한 '예술'이라는 수식어가 곤혹스러웠다.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거나("그런데 그거 해서 얼마 벌어? 현실 도피하는 거 아니야?") 동경했다("꿈을 찾아서 모든 걸 버리다니 정말 멋져."). 그 사이에서 나는 불안했다. 어쩌다 내가 예술을 하게 된 거지? 왜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는 거지? 아니, 저도 몰라서 알려고 왔다고요. 그런데 왜 모르면 안될 거 같지? 예술을 하겠다는 말이 돈 벌기 싫다는 건 아닌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니 정말 예술이 뭐지? 왜 하필 내가 여기에 와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거지? 선생님, 대체 저를 왜 뽑으신거죠? (정말 교수님 찾아가서 이 질문을 하며 울기도 했다. 개진상 제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2년제인 학교를 8년이나 다녔다. 졸업논문을 못 썼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는 논문 주제가 내 삶의 주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걸 찾아야만 내 삶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고집스레 매달렸다. 결국 그래서 뭘 썼냐고?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내가 탐험한 다양한 세계들과 그 속에서의 내 역할에 대해서 정리했다.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지만,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 나처럼 예술의 경계에서 자신에게 맞는 언어와 시스템을 찾지 못해 혼란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눈치 보지 마. 너를 굳이 세상의 언어로 바꿔서 설명하려고 애쓰지 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웃어넘겨. '너는 그렇구나'하고 어깨를 툭툭 쳐 주고 너 자신을 위해 이유를 찾아. 너의 이야기에 재미있겠다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널 지치지 않게 하는 일들을 만들며 즐거워해. 너만의 예술을 해. 사람들이 그게 예술이야? 그게 예술이면 이것도 예술이야? 라며 시비를 걸어와도 신경쓰지 마. 너만의 언어로 너를 말해."


논문을 내고 꼭 1년이 지났다. 그만큼의 생각과 경험이 쌓였다. 논문을 쓰면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새롭게 시도해보기도 했고, 내 생각과 철학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하자 내 작업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내 논문을 보고 찾아와 대화를 청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나와 파트너로 함께 일하고 있는 자영 언니는 '네 논문 재밌어. 책으로 내 봐. 논문에 있는 글을 그냥 옮기기만 하면 된다니까!'라고 1년째 말하고 있다. 얼마 전 지도 교수님께 연말 인사를 보냈다. 선생님은 '내년엔 책 하나 쓰세요.'라고 답장하셨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라고 보내자 '꼭 쓰세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다들 책을 내보라는데 논문을 처음 쓰려고 할 때처럼 알쏭달쏭 미로에 빠진 기분이다.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어떤 주제로 무엇을 어떻게 써야될까? 그래서 브런치에 첫 글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본다. 논문에 썼던 글을 옮겨서 다시 쓰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덧붙여 써 보려고 한다. 어쩌다 예술을 사랑해 업으로까지 하게 된 한 사람이 기존의 예술 시스템 속에서 느낀 혼란과 방황, 나만의 예술과 나만의 이유를 찾기 위해 끈질기게 질문하고 답해온 여정의 기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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