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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Dec 25. 2020

[독립기획라이프 연말정산] N개의 일과 정체성 편

올해는 정말 여러 개의 정체성으로(일명 N잡러) 일했던 해였다. 2019년에 다양한 영역들을 경험해보는 것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면, 2020년에는 다시 어딘가에 소속될 것이 아니라면 ─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했기에, 다양한 영역에서 나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독립기획라이프'를 만들어갔다.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작은 힌트가 될 것 같아서 올해 나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나의 1년 라이프를 정산해 본다.



N개의 일과 정체성 편



1. 필로스토리 스토리 디렉터


<퍼스널 브랜드 스토리> 프로젝트에 함께 한 기웅님과 : )


필로스토리는 2019년 4월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문 프리젠터로 커리어를 만들어온 자영언니와 자타공인 이야기 수집가인 내가 함께 창업한 스토리 개발 전문 그룹이다. 2019년에는 우리만의 프로세스와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주력했고, 올해는 역시 반복적인 마켓 테스트를 통해 우리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명확하게 구축하는 작업에 힘썼다.


현재 필로스토리는 주로 '스토리'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프로젝트(스토리 스쿨)와 브랜딩 프로젝트(스토리 브랜딩)를 진행하고 있다. 로컬 브랜드를 개발하고 싶은 지역, 명확한 언어로 브랜드의 철학과 정체성을 정리하고 표현하고 싶은 브랜드, '세일즈'가 아닌 '스토리'의 관점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싶은 브랜드, 자기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고자 하는 1인 기업 및 크리에이터 등의 파트너들과 함께 일했다.


직접 만든 스토리 개발 도구 스토리 툴킷을 활용한 브랜딩 워크숍을 진행한다. 올해는 부산과 안산 등 지역을 오가며 작업했다.


프레젠테이션 및 브랜드 경험 공간의 현장에서 핵심 스토리가 더 잘 드러나도록 디렉팅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브랜드 철학과 스토리를 개발하고 스토리 북으로 제작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비즈니스에 맞게 조금 더 고도화된 스토리 툴킷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우리가 개발한 신규 툴킷인 <브랜드 스토리 보드>를 배포했었는데,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했다. 이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하고, 크몽을 통해 퍼스널 브랜딩을 위한 스토리 툴킷을 PDF로 유통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야기'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해하는 파트너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 필로스토리가 궁금한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더 자세한 내용들을 볼 수 있다.




2. 기록상점 콘텐츠 크리에이터


연남동 기록상점 현장의 모습


필로스토리의 일이기는 하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함께 하고 있는 기록상점 프로젝트. 어반플레이와 함께 하고 있는 기록상점은 스토리텔러를 위한 창작·교류공간을 지향한다. 누구나 스토리텔러가 되어 자기만의 스토리를 콘텐츠로 만들고 표현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활발하던 기록상점의 모습


올해 초까지만 해도 스토리텔러들의 공동작업실을 만들고 활발하게 커뮤니티 운영을 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운영 방향이 바뀌었다. 그 와중에도 독립출판 프로젝트, <아는동네> 출판 및 브랜딩 프로젝트, 스토리텔링의 비결을 탐구하는 <스토리디깅클럽>, 필로스토리와 동양가배관의 콘텐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 경험 프로젝트 <기록의 방>, 스토리 툴킷 전시 및 판매를 하는 필로스토리 쇼룸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소규모로 오픈하고 운영했다. 현재는 필로스토리의 자체 프로젝트인 스토리 스쿨과 연계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또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예약제로 운영했던 <기록의 방>


<아는동네>와의 협업으로 진행된 <도시의 기록러> 프로젝트


기록상점 1층에 전시한 스토리 툴킷



3. 독립 예술 프로듀서


연극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로봇>

마하키친 팝업식당
밭놀이 퍼포먼스 <그레잇테이블>

아티스트 커뮤니티 <꼬불꼬불 레지던시>


한 관객님이 남겨 주신 <관객과의 대화> 현장 :)


2019년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1호>에 이어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로봇>을 올렸다. 이번 프로젝트의 특별한 점은, 티켓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서 판매했다는 것. 티켓 판매뿐 아니라 굿즈 제작까지 소소하게 시도해봤는데, 목표 금액을 훌쩍 넘긴 금액으로 마감했다. 덕분에 조금 더 안정된 창작 환경을 만들고 프로덕션을 운영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삼일로창고극장 티켓 부스에서의 모습


마하키친의 팝업 식당에 살짝 끼기도 했다. 마하키친의 채식 팝업 현장에 들어갈 메뉴판을 만들고, 스토리 콘텐츠를 만들고, 현장 운영을 도왔다. 그런 순간에 내 욕구는 꽤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가 작업을 펼치는 순간에 그 이야기가 더 잘 드러나게 하고 싶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보고 같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마하키친의 제안으로 합류하게 된 밭놀이 퍼포먼스 <그레잇테이블>에서는 '공동창작'을 지향하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나는 스토리텔링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노션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스토리를 정리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 눈에 프로젝트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화했다.



잘 놀고 잘 먹는 것이 목표였던 <그레잇테이블> 현장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던 것 같다. 이제는 크리에이터로 콘텐츠를 창작하는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한데, 나의 관성은 매개자로서의 역할에 쏠리는 것 같다. 잘하는 일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불친절한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어떤 프로젝트든 '나'의 역할을 스스로 명확하게 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나의 혼란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말아야겠다.


<꼬불꼬불 레지던시>라는 이름으로 세 창작자들의 커뮤니티를 실험했던 것 또한 의미있었다. 창작자들에게는 안전한 창작 환경이 필요하고, 실패할 현장이 필요하다. 느슨하지만 안전한 연대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 안에서 키워진 콘텐츠를 시장에서 유통해 보고 싶었다. 사부작 사부작 작업한 것이지만 ─ 꼬불꼬불 레지던시의 이름으로 기록상점, 플레이스 캠프 제주, 모두의 학교로 이어지는 콘텐츠 작업을 시도하며 가능성을 찾았다. 내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이 흐름을 이어가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내가 문화예술 판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영역을 오가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이종간의 연계, 관객 지향적인 시선, 스토리텔링의 역량, 비즈니스 감각인 것 같다. 더불어 창작자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또한 내가 가진 큰 강점이라는 걸 알았다.


내년에는 독립예술 프로듀서로서 영역을 더 확장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과 연계해서 파트너십을 만들어 보고 싶다. 좋은 창작자들이 힘을 잃지 않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들과 함께 나도 오래 일하고 싶다.



4.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동양가배관 브랜딩 디렉터



올해 2월, 기록상점에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동양가배관이 입점하면서부터 브랜딩 파트너로 함께 했다. 아주 작은 브랜드라 많은 것을 시도하기는 어려웠지만, 홈페이지와 SNS, 스마트스토어 등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및 콘텐츠 구축 작업, 기록상점을 기반으로 한 경험 콘텐츠 기획 작업을 했다.



상품 기획 및 디자인 작업도 함께 했는데 이 부분은 내가 전문가가 아닌 지라 한계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지금은 전문 디자이너와 연계해서 다시 작업하려 하고 있다. 이 경험으로 배운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내려놓고 전문가와 연계하는 것이 옳다는 것.



나에게 가장 의미가 컸던 작업은 동양가배관의 경험 콘텐츠 작업이었다. 올해는 마하키친과 함께 한 <제철간식 페어링 프로젝트>, 재즈 그룹 Treble&Bass와 함께 한 <JAZZ FROM COFFEE 프로젝트>, 김민혜 작가의 <야묘도추> 작업과의 연계를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이중적 정체성으로 작업한 것 같다. 동양가배관의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는 동시에, 좋은 창작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펼치는 판을 만드는 일.


[동양가배관X마하키친] 봄과 여름의 제철간식 프로젝트


좋아하던 창작자들과 함께 다른 곳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오리지널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했다는 점이 기뻤고 즐거웠다. 그 사이에서 매개자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시 발견했던 것 역시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방산시장의 한복 기술자들과 함께 자수 작업으로 풀어내는 김민혜 작가와 <야묘도추> 행잉


동양가배관은 내가 함께 이름을 짓고 비전을 구상한 브랜드이기도 한데, 기록상점에 입점하면서부터 이곳을 오가는 창작자들과 시너지를 일으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뿌듯했다.


동양가배관 쇼룸에 놓인 자개 문짝은 좋아하는 공예 작가님의 소장품을 나눔 받은 것이다. 줍줍의 현장.




그나저나 동양가배관
커피는 정말 맛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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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동구 생활문화활동가


서울문화재단의 생활문화활동가로 활동했다. 성동문화재단과 함께 성동구의 생활문화에 대해 논의하고, 지역 기반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매개하는 역할이었는데, 1년에 가까운 장기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내가 오랫동안 관심 두던 영역의 일이었기 때문에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사업 전략을 쫀쫀하게 기획했다. '수행자'가 아닌 '기획자'로서 일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성동구립도서관 1층 회의실


'리더십'이라는 무거운 역할을 받아 들이며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했는데 부침도 컸지만 다 마치고 나니 뿌듯하다. 공공의 영역에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해본 첫번째 경험이기도 했다. 끝날 무렵에는 '내년에는 안해야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또 스멀스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성수동 곳곳을 누볐던 2020년. 이상하게 성수동에서는 자꾸 이런 옷을 입게 되네.
든든했던 파트너들 정말 너무너무 고마운 존재들 : )


생활문화 영역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되는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과 연계해서 협업 구조를 짜고, 성동구에서 그동안 적극적으로 연계하지 못했던 '성수동'의 문화주체들을 발굴하고 연계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성과는 그간 아카이빙하지 못했던 지난 4년간의 사업 스토리를 발굴하고 아카이빙하는 아카이브 북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진짜 그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





6. 콘텐츠 크리에이터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정체성이었고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나만의 이야기와 콘텐츠를 전하는 자리에 설 기회들도 생겨났다. 제안을 받는 순간들이 재미있었는데, 타인이 나를 바라보거나 해석하는 관점을 볼 수 있어서인 것 같다. 그게 내가 원하는 방향일 때에는 퍽 즐겁다.


원주에 문화기획 강연을 갔을 때 : ) 넘 신기해서 셀카도 찍었다 (ㅋㅋ)


올해 필로스토리로서 받은 제안(브랜딩 및 스토리텔링)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받은 제안들을 살펴 보면 문화예술기획, 브랜드, 커리어, 사회혁신, 로컬콘텐츠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 자리들이었다. 가끔 '이런 주제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런 자리에 누가 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아예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올해 초 진행했던 예술경영 북클럽, 오늘 비치와 함께 오픈한 예술학교 프로젝트 <슬로피 호퍼Sloppy Hopper>가 그 예가 되겠다.



아이패드와 아이펜슬이 생기면서부터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나에게 맞는 새로운 이야기 방식을 찾은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게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그림을 통해 전하면 나 자신도 보는 사람들도 조금 힘을 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진지한 이야기에 초딩 그림체의 조합이 특징이다 (ㅋㅋ)


#해리툰 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그림들 : )



이렇게 회고해 보니 정말... 별 거 다했다. 어떻게 다했지? 다양한 정체성으로 일을 하다 보니 혼란을 느낄 때도 많았고 그로 인해 새롭게 고민하게 되거나 배우게 된 것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내년에 강화하고 싶은 정체성도 발견하게 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포트폴리오도 만들게 됐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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