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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Dec 31. 2020

예술경영 입문하기

한예종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놀랐던 것은 학교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의 반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점이었다.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예술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내가 알아 온 삶의 방식과 규칙 같은 것들 것들이 무용해지는 경험이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동네에서 20년을 넘게 살았고,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나의 삶은 그 모양과 방식이 비슷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다양한 사례 그리고 감각들과 충돌하며 나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주고받는 수다(‘그 공연 봤어?’)를 단서 삼아 닥치는 대로 공연들을 보러 다녔다. 전통예술, 현대무용, 순수연극, 거리예술, 다원예술, 커뮤니티 아트… 서울에만도 이렇게 많은 예술가와 예술장르, 예술공간이 존재했다니. ‘우리나라에는 문화예술을 향유할 만한 곳이 없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있었지만 내가 몰랐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예술 세계를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져 들었다.



꼬불꼬불 버스를 타고 불난집에 찾아가 신기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돼지 머리에 현금을 꽂아넣고 절도 하고 양말을 들고 영상을 틀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재미있는 퍼포먼스도 보았다. 집에 오는 길에 버스가 끊겨 동동거리다가 히치하이킹을 했다. 전철역 앞에서 맥도날드 초코콘을 사먹고 집에 왔다. 재밌었다.

2013년 11월의 일기


이런 예술공간, 그리고 예술 콘텐츠가 있다는 건 대체 누가 알려 주는 걸까? 왜 예술가들은 홍보를 자기 페이스북에만 올리는 걸까? 예술 홍보물에 쓰여 있는 말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러한 질문에서 친근한 언어로 예술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1인 미디어를 운영하기도 하고, 예술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는 사교클럽을 기획하기도 했다. 


"최근 공연, 전시 등 문화행사 정보를 알리는 1인 미디어를 시작했습니다. 주말의 문화생활, 데이트코스 등이 고민이었던 분들께서는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 또한 본인이 참가하는 공연 및 전시 정보를 알려 주시면 검토 후 게재하고 있으니 예술인 분들은 저에게 제보 부탁드립니다. 그 외 개인 취향 제보도 환영."

(2013년 10월부터 약 2년간, ‘조금 이상하고, 흥미롭고, 독특하고, 크지 않은 공연·전시·행사를 소개하겠다’는 취지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며 약 500여명의 구독자를 확보하였다.)


그러면서  ‘나’와 ‘우리’의 창조적 삶을 구성하는 실천 방법으로서 예술경영을 탐구해 나가기 시작했고, 예술이 관계하는 사회의 특성과 관계방식에 따라 예술경영을 분류한 ‘문화예술을 위한 경영(Management for Culture & Arts)’, ‘문화예술을 통한 경영(Management through Culture & Arts)’, ‘문화예술적 경영(Cultural & Artistic Management)’ 개념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학교 수업을 통해 세 가지 예술경영모델의 개념과 사례들을 공부해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예술경영자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금씩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첫번째 예술경영,
예술을 위한 경영
     


예술을 위한 경영은 1960년대부터 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운영에 경영학이 발전시켜 온 이론과 전략을 활용하는 의도에서 도입되었다.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문화예술이라는 고유한 산업에 특화된 경영 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 예술경영학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예술과 경영이 결합하기 시작하였다. 문화예술을 위한 국제적인 예술마켓, 예술경영 인력을 위한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등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활동 또한 예술을 위한 경영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예술학교에서 입학하면서 이러한 유형의 예술경영을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기획제작 및 시연>이라는 과목이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기존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공연기획’의 개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예술을 위한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작환경을 이해하는 일과 예술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첫 번째 기획안을 제출했을 때, 내가 제출한 기획안이 공연 기획이 아닌 홍보 컨셉 기획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러한 형태의 기획을 공연 기획이라 믿고 여기까지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업을 함께 들었던 학우들은 서사창작과, 무대미술과 등 다양한 전공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기획안을 보고 들으며 ‘나는 공연 기획을 할 수 없겠구나’라는 좌절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언급하는 연출가나 작가, 희곡 원작, 무대를 만드는 기술이나 예산 같은 것들을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성한 예산서를 보며 무대미술과 언니는 ‘이 돈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 수 없다’고 놀렸다. 하지만 언니의 기획안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모객에 대한 계획이나 현실적인 예산 운용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자라는 예산은 어디에서 충당할 예정이냐’고 묻자 언니는 으쓱하며 ‘내 주머니?’라고 대답했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창작 외엔 대체로 관심이 없구나’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연극원 예술사 학생들의 연극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예술사 학생들과 달리 전문사 학생들은 이러한 실습이 교과 과정에 없었고, 나는 교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기획자 모집 공고글을 보고는 연락을 해서 끼워 달라고 졸라 함께 하게 되었다.



예술 기획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서울아트마켓(PAMS)의 자원활동가로도 활동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티켓 부스에 앉아 보았고, 공연의 장르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외국에서 건너온 아티스트들과 교류하였고, 오디션과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며 무대 뒤의 삶을 알게 되었다.     



벨기에 무용단 울프마베즈 한국 오디션 현장. 걷기, 뛰기, 구르기, 몸으로 바람 표현하기, 즉흥무용 등 다양한 동작들을 요구하고 있다. 제 3자 입장에서는 그저 신기하고 재밌을 따름. 이 중 누군가는 발탁되어 함께 벨기에로 간다고 한다.     

2013년 10월의 일기




두번째 예술경영,
예술을 통한 경영
     


예술을 통한 경영은 예술적 가치와 특징을 활용하여 새로운 기업 이미지와 성과들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문화 마케팅, 문화 산업, 예술 교육, 문화 정보화, 기업의 예술경영 등의 분야가 그 예다. 이는 결국 문화예술 활동이 기업 활동과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의 <기업과 문화예술> 수업을 통해서 ‘예술을 통한 경영’의 개념을 깊게 배워볼 수 있었다. 마침 문화예술을 통한 창조경영 활성화 지원사업 <아르꼼ARCOM>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기업 내 문화예술교육을 도입한 ‘교육 프로그램’,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반한 조직원 대상 ‘문화예술동호회’, 조직의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문화공간조성’, 조직문화의 변화를 통해 조직 전반의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문화’ 등 다양한 국내 실천 사례들을 통해 일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가능성을 꿈꾸듯 탐구하였다.


<기업혁신, 예술에서 길을 찾다(2013)> 포럼 현장 (사진출처 arcom.kr)


유럽에서 해당 분야 관계자들을 초청해 진행한 국제 포럼 <기업혁신, 예술에서 길을 찾다(2013)>를 통해 새로운 개념과 사례를 접하기도 했다. 나는 당시 포럼의 운영을 보조하며 런던 예술대학 혁신 인사이트 허브 센터의 총괄 디렉터이자 이탈리아 바칠리카다 대학 이노베이션 경영학과 교수인 지오바니 쉬우마(Giovanni Schiuma), 베를린사회문화연구소의 아리안 베르토인 안탈(Ariane Berthoin Antal), 스웨덴 TILLT의 전략적 제휴 디렉터 피아 아레블라드(Pia Areblad) 등 유럽의 이론가 및 현장의 활동가들과 직접 교류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오바니 쉬우마는 ‘예술 기반 이니셔티브(Arts_Based Initiative)’라는 개념을 통해 조직의 가치 창출 능력을 증대시키고 비즈니스 성과를 높이는 미학적 기술로서의 예술을 강조하였다. 그는 21세기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소로 ‘6E(Experience, Emotion, Energy, Ethics, Enviroment)’를 제시하였고, 무형적 가치(경험, 감성 등)와 소프트한 자원(상상력, 창의력, 협업능력 등)을 촉진시키는 예술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아리안 베르토인 안탈은 예술가나 예술 단체가 기업, 기관 등의 조직에 투입되어 예술가와 조직원 간의 상호 작용 및 학습의 과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차원의 조직 개발을 일으키고, 또한 그 자체가 예술적 작업으로서의 미학적 성취를 얻는 과정을 ‘예술적 개입(Artistic Intervention)’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브랜드 구축이나 상품 개발을 위한 예술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이나 예술가에 대한 일방적 지원을 일컫는 스폰서쉽과는 다른 개념이다. 예술과 조직, 어느 한쪽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과 조직이 전혀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창조적 충돌(Creative Clash)의 과정을 통해 학습하고 공동 발전하는데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조직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창조적 충돌(Creative Clash)의 사례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당시 스웨덴의 TILLT는 예술가가 10개월 동안 기업의 조직원과 상호작용하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아이리스(AIRIS)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 작업을 통해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맥락과 사회의 영역(Social Arena)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예술가와 조직원이 빈 시간(Ample Time)을 같이 보내며, 생각을 공유하고 각자의 일에 관련해 다양한 관점으로 대화를 나누도록 의도하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업과 예술이 만나는 형태를 단순히 조직원을 대상으로 문화 행사를 하는 식의 단순한 결합 정도로 상상했던 나에게 큰 전환점을 선사해 주었다. 예술가의 창의성과 예술적 능력을 기반으로 창조적 프로젝트를 전개하되, 단순히 기업을 위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숫자로 평가할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조직원들이 기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고, 조직의 프로세스를 부드럽게 만들고, 조직원들이 스스로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기회를 만드는 등의 문화예술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예술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은 모두 기업과 예술 양쪽을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매개하는 매개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나는 이런 과정을 주도하고 실험을 거듭하는 매개자의 역할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예술적 개입 프로젝트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예술경영,
예술적 경영 
(삶의 예술경영)     


예술적 경영은 예술 분야를 위해 경영을 도구로 활용하는 ‘예술을 위한 경영’ 분야나 예술이라는 가치를 활용해 다양한 분야의 성과를 높이는 ‘예술을 통한 경영’을 넘어 예술 자체가 지향점이 되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유형이다. 예술적 경영에서 ‘예술’이란 예술지향적인 예술이나 도구적인 예술이 아니라 일상 삶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공동체적 관계와 연대의 가치를 창출시키는 예술을 의미한다.


현장의 사례가 부족해 세 가지 개념 중 가장 모호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예술적 경영’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예술교육’ 수업이었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예술의 본질, 예술과 삶의 관계성에 대해서 탐구하였다.


2020년 기준 링컨 센터의 프로그램 사례들


특히 이 수업을 통해 접했던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과 이에 기반한 맥신 그린의 심미적 교육(aesthetic Education) 개념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존 듀이는 우리가 당연히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박물관, 미술관 속의 전시물을 '격리'된 예술이라 말하며, 일상적 경험을 예술적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링컨 센터 인스티튜트의 상주 철학자이기도 한 맥신 그린은 ‘널리 깨어 있음(wide-awakeness)’을 통해 자기 삶의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교육 개념으로 ‘심미적 교육’을 제시하였다. 이 개념에서는 예술 작품과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경험’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한 자리에 고정적으로 앉은 채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만을 받아들이는 예술 감상이 아닌, 작품에 몸과 마음, 감정을 개입시키고 통합함으로써 배양되고 자극받는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을 지향한다.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내가 경험했던 한 장면 또한 이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해외초청작을 관람하러 갔는데, 공연이 끝난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은 자꾸만 정답을 맞추려 했다.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연출가에게 확인 받고 싶어했다. 연출가는 오히려 나는 당신이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고,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 관객은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관객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과 내 친구들의 모습을 봤다. 스스로 내린 나만의 ‘답’이 아닌 ‘정답’을 갈구하는 모습이 애달팠다. 왜 우리는 자유로운 예술의 현장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할까? 예술을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맥신 그린이 언급한 ‘대화적인 관계’에 특히 주목하였고, 예술을 수월성과 성취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을 경계하는 그의 태도에 공감하였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들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예술의 본질적 기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더불어 막연하게나마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삶과 예술적인 삶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계 내에서의 경쟁이 예술계 바깥의 취업 시장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치열하다는 것, 다양하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예술계 안에 위계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인지하게 되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쓰는 것과 취업 원서를 쓰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업적으로 예술가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또는 스스로도 예술가라 인지하거나 칭하고 있지 않지만) 예술적인 사람들, 내 삶에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예술경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역할을 하며 살고 싶은지, 내가 사랑한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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