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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Jan 01. 2021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데
무슨 일을 해야 하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건

이도 저도 아닌 걸까?


그렇게 다양한 예술경영의 형태를 공부하는 건 너무 재미있었지만 문제는, 나는 전부 다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렇다. 나는 정말 모든 것에 흥미가 있었다. 연극도 좋았고, 전통예술도 좋았고, 현대무용도 좋았다. 사실 모든 장르와 모든 창작자가 다 좋았다. 1인 미디어를 운영할만큼 무언가를 알리고 전달하는 일도 좋았다. 그럼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사실 학교를 입학하고 나면 나처럼 방황하고 있는 영혼들이 모일 줄만 알았다. 그래서 함께 이상한 일들을 벌이면서 실컷 방황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예종의 전문사 과정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재교육 및 네트워킹 차원의 과정에 가까웠고, 다들 자기만의 분야와 역할이 확실해 보였다. 조바심이 났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정한 예술 장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통예술이면 전통예술, 클래식이면 클래식, 자기만의 '전문성'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쪽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작품에 대한 평론이나 소개글만 봐도 너무 어려웠다. 


페이지를 가득 메운 미학 용어들을 보면 머리가 아팠다. 예술이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전문예술 지식을 갖춘 학교 안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자신감을 잃어갔다. 어릴 때부터 예술을 배운 사람들의 전문성을 따라갈 재간이 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곳 저곳에 지원서를 넣어봤다. 전통예술단체의 기획자, 미술관의 예술교육팀, 극장의 공연기획팀, 홍보회사의 IMC팀까지.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처럼 지원한 곳도 다양했다. 결과적으로는 다 실패였다. 예술단체에서는 '비즈니스에 더 적합한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했고, 비즈니스 조직에서는 '너무 예술적이라 조직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럼 난 어디서 일하라고?



해리야,

넌 하고 싶은 게 뭐니?


이리저리 헤매던 어느날, 어느날 교수님이 나를 부르셨다. 과제 제출을 계속 미루고 있던 상황이라 그 때문인 줄 알고 머릿속으로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선생님은 "해리야, 너 어떤 걸 하고 싶니?"라는 뜻밖의 질문을 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보이는데 나만큼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서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는... 사실, 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요."하고 답을 하다가 그만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나를 보러 와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선생님의 방에 찾아가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왔다. 어떤 말들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선생님은 섣불리 판단하거나 조언하지 않고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때로 유의미한 질문을 건네 주실 뿐이었고 내 선택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셨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천천히 들어주는 어른은 처음이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코끝이 찡하다. 정말 감사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


첫째,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게 없어서'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는 있나?',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이 일이 될 수가 있나?'라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실제로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부딪쳤지만 그쪽에서 나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내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라는 불안감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웠다.


둘째, '하고 싶은 것'은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법을 몰랐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를 수 있고, 나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다. 여러 선택지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선택을 미뤘다.


셋째, 그 당시 나는 내 선택에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에게 '하고 싶은 것', 내 마음을 물어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왜 갑자기 예술경영을 선택한 거야?', '그 분야에서 어떤 커리어를 가질 수 있는지 알고 선택한 거야?', '평균 연봉은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 그런 것들을 물어봤다. 나는 그 질문들에 답을 낼 수 없었고 그래서 불안했다. 모르니까, 알고 싶어서 선택한 길인데,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왜 그렇게 불안해했을까.


그렇게 '부족하다'는 생각에 빠져 내가 가진 것들을 보지 못하던 시간들을 지나, 나는 조금씩 '나'에 대한 힌트와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잘하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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