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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리 Jan 06. 2021

스토리젠터의 기록 <실전 프레젠테이션 이야기>

일하는 사람에서 브랜드가 되기까지

처음 채자영을 봤던 때가 떠올랐다. 전문 프리젠터라는 낯선 직업, 무대에서 더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구나.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생각했는데 우리는 지금 필로스토리를 공동창업해 운영하고 있고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니,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다. 이 사람과 함께 한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에도 '채자영'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다.


<실전 프레젠테이션 이야기>를 받았다. 이 책은 채자영이 페이스북에 #실전PT이야기 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위해 남겼던 기록의 조각들을 모은 책이다. 독립출판인데 400페이지나 될만큼 그 양이 방대하다. 8년이라는 시간이 묵직하게 무게로 전달된다. 다시 말하면 8년 동안 이렇게나 열심히 고민하고 생생하게 기록해온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브랜드의 시작,
내 언어로 내 일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


타인의 이야기는 늘 나를 긴장시킨다. 그런 이야기에 롤러코스터처럼 기분이 왔다갔다하는 내가 싫다. 스스로 '이야기 자존감'을 키워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중심을 지키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싶어서. (36p)


책의 첫 번째 장인 '본질(2013~)'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다시 쓰려는 흔적이었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이 파트 내내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정의하는 문장이 여러번 나온다. 나는 그게 정말 의미있게 느껴졌다.


이런 사진만 보면 타인의 말에 절대 휘둘릴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프리젠터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용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다(37p).", "프리젠테이션은 발표가 아니라 청중과 나누는 '대화'이다. 그리고 프리젠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을 먼저 놓지 않는 사람이다(68p).", "이것이 나만의 Flow이다. …장표와 장표 사이를 채우는 것. 앞뒤 장표 간에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것(75p)."


주어진 역할 너머 내가 나의 일을 무엇으로 해석할 것인가. 나의 정체성을 무엇이라 부르고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질문이 아닐까. 이 정의 또한 채자영의 정의일뿐 교과서는 아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그 역시 스스로의 경험에서 길어올린 언어로 자기만의 정의를 내려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의 기준을 무엇으로 두는가가 행복의 척도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전까지는 회사에서 정한 성과의 기준, 그러니까 수주(승리)를 했는가 못했는가였다면 이때부터는 나만의 프레젠테이션 성공 기준을 가지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역할, 프리젠터라는 일을 즐기기 위해서다. 최선을 다해 무대 위에 서는 것, 내가 할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그러니 나의 성공은 승리의 여부(결과)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청중과의 소통(과정)이다. (110p)


그러면서 수사학에 빠지기 시작한다. 수사학회 홍보이사로 활동했는데 올해는 아예 교육이사까지 하신다고 ㅋㅋㅋ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젠터'라는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한 채자영의 비결을 듣고 싶어한다. 나 또한 궁금했었는데 이 책에서 그 단서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조직과 사회의 평가와 기준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갖는 것. 나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 그게 타인의 관점에서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채자영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브랜드의 태도,
'자기다움'에 집중하고 표현하는 일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필로스토리는 언제나 '자기다움'과 '다양성'에 집중한다. 보여주기 위한 그럴듯한 컨셉이 아닌, 남들이 보기에 멋있게 보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 납득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본질을 발견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쏟는다.


가장 좋은 프레젠테이션은 개인의 매력이, 사람다운 매력이 드러나는 프레젠테이션이다. 말하기에 있어 롤모델은 없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매력 자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 그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가장 좋다. (250p)


그 철학은 아마도 이때부터였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말 잘하는 법', '프레젠테이션 스킬'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채자영은 스킬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라고,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고, 그렇게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답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스킬'이 아닌 '말'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다양한 사람들 고유의 매력을 발견하고 '브랜드'로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언뜻 보기에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우리가 찰떡궁합인 이유도 바로 그 부분에서였다. '오리지널리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 철학을 타인과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 나는 그걸 '예술'이라는 언어로, 채자영은 '이야기'라는 언어로 그것을 표현해왔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브랜드'라는 공통의 언어로 그 철학을 전하고 있다.



2019년 11월, 연남동에 기록상점을 열고 수백명의 사람들과 만났다. 그 사람들이 설 수 있는 작은 무대를 만드는 일을 반복해왔다. 그러면서 우리도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채자영은 늘 쭈뼛쭈뼛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들어줬다. 채자영과 있으면 아주 사소한 것도 아주 재미있게 느껴지는 힘이 있었다. 기록상점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내 지인은 '모든 것을 다 수용해줄 것 같은 깊은 보조개'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ㅋㅋㅋ)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그녀는 '청중'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일부러 그러는건 아니고 실제로 웃음이 매우 많은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 아마도, 자신이 사람들의 첫번째 '우호적인 청중'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치열한 실전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꽃들은 천재지변이 있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몰입한다." 이것이 바로 나만의 비법이다. 어차피 편견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청중에게 신경쓰느라 나만의 플로우를 놓치기보다는 우호적인 청중, 우리가 준비한 발표내용에 몰입한다. 가식적이지 않아도 충돌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몰입한다면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묻어날 것이고, 청중은 이에 감동할 것이다. (343p)


'LOVE YOURSELF, FIND YOUR STORY'를 주구장창 말하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무대는 냉정하다. 수억원의 돈이 오가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의 현장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이 사회의 축소판이 아니었을까.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 나만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스스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내 일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 그건 단순히 프리젠터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브랜드의 확장,
경계에 갇히지 않고 영역을 넓히는 법


누군가에게 '프리젠터'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표'만 잘하는 혹은 '말'만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입찰 현장에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획과 전략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더욱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오랫동안 한 회사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을 다했다. 그리고 점점 나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56p)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면 더더욱 그 단어에 갇히기가 쉽다. 나 또한 그랬었다. 무언가 답답했다.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일을 매일 하고 있는데 기쁘지 않을 때의 그 답답함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그건 아마도 내가 나에게 주는 신호일 것이다. 다음 세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고. 그 단어에 너를 너무 얽매지 말라고.


이 책의 서문에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채자영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대화를 나누던 그 날이 생각난다. '프리젠터'라는 직업, '필로스토리'의 공동대표 너머 '채자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함께 필로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 경계에도 갇히지 말자고 종종 이야기한다. 우리 둘은 또 다른 사람들이니까, 각자가 가진 이야기와 매력을 놓을 필요는 없다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건 우리 둘이 같이 벌인 일인데도 그 일을 해석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둘이 만들어가는 길은 서로 다를 수밖에.


책날개엔 '다양한 일을 하지만 모든 것이 '세상에 마땅히 전해져야 할 이야기를 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스토리젠터(storysenter)'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늘 말과 이야기, 그 경계 어디쯤 서 있다.'라는 소개글이 적혔다. 이 짧은 한 문장이 적히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그 고민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맞서온 과정이 있다.


일의 본질은 깊게 행하되, 가능하다면 가장 넓게 확장하고 싶었다. 갈수 있는 만큼, 멀리 가보고 싶다. 그리고 가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나에겐 이것이야말로 '자유(freedom)'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 선택하고 싶은 것을 마음에 따라 선택하는 것. '이야기'라는 미지의 세계이자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402p)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존재다. 내가 '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언제쯤 나는 단단해질까'라고 고민하며 '완벽한 때'를 기다리기보다 고민하고 있는 나의 '과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지금'의 나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걸, 그런 사소한 과정의 누적이 결국 나를 만든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완벽함'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니까.' 완벽하지 않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을 너무 겁내지 말자고,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는, 세상이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로 가득해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메시지다. 그 덕에 나도 요즘 주춤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이 글도 순식간에 써서 발행해본다.


구매는 아래에서 가능하고 1,000권 찍었는데 매진 임박이다. 리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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