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p.26)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6년째 하루 15분 정도 설명해주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어느덧 중학수학에 이르니 내게도 예습이 필요해졌다.
15분을 가르치려면 대략 15분 정도의 공부가 필요한데, 얼떨결에 하루 30분 수학 공부하는 여자가 됐다.
나는 원래 수학 머리가 없었다. 대충 분류해서 이과적이라고 하는 그 모든것에 서툴렀는데, 그 결핍을 문과적인 재능으로 덮어가며 근근이 살아왔다. 이해가 안되는 수학문제는 풀이과정을 세세히 암기했다가 다른 문제에 적용해서 풀어냈고, 주차할때면 어깨를 맞추고 핸들을 몇번돌리고 하는 식으로 세세한 공식에 의존했다.
그저 감으로, 직관적으로, 보이는대로 하는 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해없이 공식과 풀이과정만을 외운 자는 한계가 있었다. 약간의 변형에도 적용이 어려웠고, 어깨를 맞출 기준점이 없으면 주차는 실패였다. 레시피대로 아무리 완벽하게 계량해봐야 "적당히 먹을 만한 것"이 나올뿐, 엄마밥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매일
최소공배수에서, 평행주차에서, 제육볶음 앞에서,
공식을 외운자가 아닌 이해한 자만이
감으로, 직관으로, 보이는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거기에 더해 일도, 사람도, 사랑도, 시작하는 또는 멈추는 용기도 모두 같다는 것을.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서툰 내가 아들을 가르치는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서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어서다.
이건 이렇게하면 쉽더라,
이런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실 방법은 아주 여러가지야,
처음엔 다 어렵지,
나도 그랬어.
이런 말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모자란 이과적인 재능이 나를 꽤 괜찮은 수학선생으로 만들었다.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 없음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내 결여를 재능으로 느끼게 하는 관계가 찐사랑 아닐까.
찐사랑은 그 어떤 부채감도 없이 나를 나로 있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