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육아

책, 내향 육아

by 전퐁카

심심함과 여백을 사랑한다. 온순한 일상에 쌓이는 착실한 무게감을 즐거워한다.

(이연진, 내향 육아, p.162)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로 호캉스를 다녀왔다. 3성급의 작은 호텔에는 수영장도 사우나도 없고, 물론 조식서비스도 없다. 그럼 무엇이 있나?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 없음을 샀다고 해야할까.


얼마전 아들은 고오급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고오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제일 큰 이유는 내가 스테이크를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육류를 즐기지 않는데다가 덜익힌 고기는 더 싫었다.


비건지향이라든가, 유기농식재료를 고집한다든가 하는 내 취향에는 사실 긴세월 쌓아온 철학, 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지만 신념,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플렉서블하지만, 아무튼 단순히 선호, 라고 표현하기엔 모자란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런 취향을 가졌고 당연하게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반갑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구에게도 특히 자식에게만큼은 그 취향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 어린탓에 나에게 너무나 많은 영향을 받고있을뿐더러, 내가 아무리 친구같이 군다해도 우리는 수직적인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애를 먹여살리는 동안은 어쩔수없이 지속될 힘의 관계인 것이다. 갑이 권유하는 모든것들은 그것이 실상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상대를 위한것이든, 그 반대이든 을에게 무력감을 느끼게한다. 즉, 잔소리라는 말이다. 는 그애가 잔소리를 통해 좋은 것을 접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스테이크를, 기왕이면 고오급 식당에서 사줘야겠다 생각하며 검색해보니 어느 호텔 꼭대기층에 전망도 좋고 나름 분위기도 괜찮은 곳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호텔과 식당을 예약했다. 당에는 야경이 보이는 특별히 좋은 자리를 부탁해두었다. 아이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너무 비싼 것 같다고, 먹고싶다고 말은 했지만 굳이 이렇게 비싼 걸 먹고싶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호텔은 고오급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고 정갈했다. 베란다에 설치된 조그만 히노끼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차가운 오렌지주스도 한잔 준비했다.

- 밖을 보면서 목욕할 수 있어. 주스도 마시면서.


나는 왜인지 조금 웃음이 났지만, 아들이 원했던 <고오급>을 내 나름으로 해석했다.


아이가 목욕하는 동안 나는 주방도, 설거지도, 밀린 빨래도, 쓸고닦을 바닥도 없는 그 공간에서 와인을 한병마셨다. 아무것도, 아무말도 없우 고오급이군. 창 밖은 그린벨트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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