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졸업식

책, 여덟단어

by 전퐁카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 조은, 언젠가는 중에서

(박웅현, 여덟단어, p.119)



돌구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에서 015B의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가 흘러나왔을때 1차 놀람. 졸업생들이 HOT 캔디에 맞춰 공연할 때 2차 놀람.

워...28년 전 내 졸업식이랑 똑같은데? 하참나 이러다 칠순잔치 때도 캔디틀고 어깨춤추겠네.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고, 캔디에 맞춰 춤추던 내 모습이 정말로 엊그제같았다. 미숙했으나 모든걸 다아는줄 알았고, 조급했으나 지루했었고, 수줍었으나 거침없던 시절이었다.


다 아는 줄, 알았던 내가 자라서 점점 더 뭐가뭔지 모르겠는 어른이 되고, 또다시 다 아는 줄 아는 아이를 낳고, 그 애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아이의 졸업을 축하하고 대견해하는 많은 부모들 사이에서 나만 또 어른스럽지 못하게 <나보다 더 큰 놈을 키워냈어> 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돌구는 아웃백을 가고싶어했고, 우리는 치즈가 가득 올라간 짭짤한 감자튀김이며 달짝지근한 양념으로 조린 립, 꾸덕꾸덕한 소스의 파스타를 먹었다. 그 메뉴 조차도 너무나 내 십대 시절 취향이었고, 아웃백의 분위기며 맛도 그때 그대로였으나 내 입맛 변해있었다.

달고 짜고 조미료 범벅의 맛을 와인으로 누르며,

왜 애들은 이런 걸 좋아할까. 왜 애들은 뿌링클을 먹을까. 왜 애들은 지가 다 아는줄 알까. 왜 그때는 그렇게, 버스만 기다렸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다.



돌구가 없었다면 나는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 엄마는 왕년에 에피쿠로스학파였어.

- 그게 뭔데?

-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사는 거 있어.


그러나 돌구가 없었다면 나는 재미있는 것 보다 더 좋은게 있다는 걸 모른채로 살았을테지. 오지 않는 버스나 기다리면서, 내가 뭐든 다 아는줄 알면서, 진짜 맛있는 게 어떤건지도 모르면서.


버스는 오지않고, 아니 언젠가는 올 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마 버스가 아닐것이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도 어떤 약속도 아니고 그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일이다. 인생은 묘한 구석이 있어서, 자꾸 걸어가다보면 지구반대편에서 만나기도 하고, 길을 잃은 어느 날에 낯선 곳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돌구가 무엇에 웃는지, 어떤 얼굴로 우는지 살펴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다행히도 목이 메진 않았다.


육아를 졸업했다.